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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민 Nov 06. 2015

고독의 발견

새벽거인을 시작하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시작..  


우리 주변은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의 귀는 이런 소음에 무차별 공격을 당하고 있다. 물론 새벽에도 일어나서 1분만 지나면 곧 소음을 들을 수 있다. 자동차 소리, 시계 소리, 간혹 개 짖는 소리도 들린다. 만약 당신이 도시에 살고 있다면 좀처럼 절대 침묵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 호주의 시골에서 새벽에 일어나 밖으로 나와 본 적이 있었다. 벌레 울음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절대 침묵, 그것은 우주의 고요함이었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은하수가 놓여 있는 검푸른 하늘은 그렇게 웅장하고 고요할 수가 없었다. 내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살아있다는 아름다움이었다.

헨리 데이빗 소로는 대도시를 떠나 월든 연못가에 정착하면서 이런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했다고 한다. "내가 숲 속으로 온 것은 신중하게 살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죽을 때, 삶을 잃은 내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나도 이 시대의 스피드가 요구하는 대로 보다 더 빨리, 그리고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이 시대의 문화인 스피드에 우리는 중독돼 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과 판단 없이도 시스템으로 메뉴얼화 된 습관에 무의식적으로 적응해가며 익숙하게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 그러한 삶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나는 침묵의 시간을 얻기 위해 새벽에 일어난다. 일상에서는 전혀 침묵을 할 수 없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침묵에 적응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는 훈련을 했다. 텅 빈 사무실에 먼저 나와서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조용한 시간을 가진다. 처음에는 5분을 견디기 어려웠지만 점점 그 시간을 늘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내면의 심연까지 내려갔을 때 나는 비로소 인터넷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영혼'이었다.


일상이 기적이 되는 시간의 비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주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새벽 거인들이다.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10명을 꼽아본다면  그중에 9명은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 가지의 가설을 세울 수 있다. 하나는 모든 위인들은 새벽에 일어난다는 것과 또 하나는 새벽에 위인들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내가 새벽 나라로 처음 여행을 간 것은 전에 다녔던 직장의 경영자 때문이다. 새벽 거인이었던 그는 항상 4시면 출근을 해서 기도실에서 기도하고 그리고 책과 신문을  스크랩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회사 당직 근무 때 그를 우연히 만나서 인사를 했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도 그 새벽 거인을 따라서 새벽부터 회사를 나오기 시작했다. 특별한 감정적인 이유는 없었고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경영자의 습관을 가져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3개월이 지나서야 5시에 일어나는 것이 쉬워졌고 마음만 먹는다면 4시에도 일어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회장실과 붙어 있는 방에서 근무를 했다. 그때 나와 같이 일했던 사람은  10명가량이었다.  그중 한 명은 회장보다 더 일찍 출근했다. (당시 회장은 새벽 4시 30분~5시에 출근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회사에 와서 인터넷이나 신문을 보는 것으로 새벽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 회장은 출근하다가 신문을 뒤적거리는 그 친구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새벽에 일찍 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새벽에 오는 목적이 중요합니다. 새벽에는 한 가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건너 건너 들었을 때 나는 마치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것처럼 흥분되기 시작했다. '새벽에는 목적이 있는 한 가지의 일을 하는 것이다'라는 말 안에는 새벽을 다스리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새벽에 하는 목적이 뚜렷한 한 가지 일이 일상의 기적을 만들어 내는 비밀의 열쇠라는 말은 나의 가슴에 깊이 박히게 되었다.

거인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물론 새벽부터 회의를 하거나 인터넷을 하지는 않았다. 주로 혼자 있었기 때문에 책을 읽기도 하고 명상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조용한 시간 동안 단순히 녹차를 마시면서 즐기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꿈에 대한 각오를 다지기 위해 마치 무사가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칼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칼날을 세우는 것과 같은 일을 했다. 주로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한 책들을 보았고 '생각'의 범위를 넘어 '기도와 명상'으로 내면의 깊이를 조절했다.


고독, 새로운 시간의 발견

벤자민 프랭클린은 '시간은 돈이다'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카네기는 '시간은 보물'이라고 표현했다. 벤자민 프랭클린과 카네기가 이와 같이 시간을 돈이라고 말하며 그 귀중함을 이야기한 것은 그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살았고 또 대표적인 자본주의의 옹호세력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 월급체계를 만들어냈고, 뭐든지 시간제로 요금을 받는 것이 오늘날의 규칙과 문화로 정착되었다.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글자 그대로 '돈'이 주인인 사회이다. 즉 돈을 가진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바로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생존의 시스템이다. 자본주의의 대표적 옹호세력이며 변호사였던 플랭클린이 '시간은 돈이다'라고 말한 것은 단순히 시간의 중요성만을 강조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그는 '시간'과 돈'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핵심이라는 것을 간파하고 있다.

돈으로 시간을 사고, 시간을 만든다. 젊어서 열심히 일해 돈을 벌어놓은 이들은 노후에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젊음의 시간을 투자해 돈을 벌었기 때문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것은 부자들만 알고 있던 '돈'의 법칙을 아주 쉽게 이야기해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갖고 싶어 했던 큰 집과 좋은 자동차가 재산이 아니라 부채라는 이야기는 많은 월급쟁이들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도 종국에 부자 아빠가 되어서 갖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시간'이다. 한가로운 여가 시간과 여행이 책의 저자가 갖고자 하는 것이었고, 그는 시간을 사기 위해 돈에 대해 공부하고 실천했던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시간이 돈을 만들고, 또 돈이 시간을 만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게임의 룰을 잘못 인식하거나 지나치게 가볍게 여겨서 자신의 시간을 그대로 허비하거나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 어떤 사람은 일의 노예가 되었고, 또 어떤 사람은 인터넷의 노예가 되었다. 또 공부의 노예가, 사람의 노예가 된 이도, 섹스의 노예가, TV의 노예가 된 이도 있다. 자신이 가장 많이 쏟는 시간에 대해서  되돌아보자.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일의 주인이 나인지 아니면 그 일인지를 되짚어 보자.


"실례지만 지금 몇 년이나 남으셨나요?"

"약 25년 남았습니다."

이것은 나이에 대해서 물어보는 대화 내용이다. 나이에 대해서 이렇게 묻는 문화가 생겼다면 모두 시한부 인생의 참혹한 기분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정해야만 하는 것은 이렇게 묻는 것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시간은 생명이다'


자신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일반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들어가면 정신없이 그리고 무자비하게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진 것은 시간 밖에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오염되어서 아무런 고통 없이 젊음의 시간을 날려 버린다. 물론 학교나 직장은 개인의 시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 만약 내가 최고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돈 이상의 것으로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어느 누가 마더 테레사의 시간당 노동에 대한 대가를 매길 수 있을 것인가? 얼마나 줄 수 있을 것인가? 세상의 어떤 사람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이룬 일에 대한 연봉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누가 간디가 이룬 업적을 효율성의 잣대를 가지고 임금으로 환산할 수 있을 것인가? 새벽 거인들의 일상 시간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어떤 가치를 우리에게 준다.


일상에서 가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돈으로도 다른 시간으로도 판단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일로 시간을 창조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간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핸드폰에 표시되어 있는 건전지처럼, 자동차 계기판에 있는 연료 잔량 표시등처럼 항상 남은 양에 대해서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그리고 얼마나 사용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인생은 재충전이나 재주입을 할 수 없는 1회용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간이 주는 충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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