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rbandaddy Jan 03. 2019

아내의 핀 포인트 육아 레슨

협력 : 너는 혼자가 아니다_01

“육아해보니 어떠세요?” 


휴직 초기에 지인들에게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냄비 속의 개구리 얘기 아시죠? 냄비 속에 개구리를 넣고 끓이면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는 것을 모른 채 개구리가 죽는다고 하잖아요. 뱃속에서부터 함께 지낸 엄마가 서서히 온도가 올라가는 냄비에 들어있는 개구리라면, 아빠 육아는 뭐랄까, 끓는 물에 풍덩 넣어지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하하”
“제 나름대로는 회사 다니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을 함께 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서 아이를 보니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더라고요”


아이와 함께 성장하며 힘들지만 몸에 육아가 자연스럽게 배어들었던 아내와는 다르게 나는 육아를 단시간에 배워야 했다. 육아휴직 첫 달은 카오스였다. 처음 일 배우는 것과 비슷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름 기세 등등했던 내 자아가 철저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일을 배우는 것과 육아를 배우는 것은 극명히 달랐다. 아이는 내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설 때까지 옆에서 가만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필시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육아의 어떤 부분이 어려운 것일까?라는 질문에 내 나름대로의 답을 내리자면 ‘각각의 프로세스를 따로 떼어 생각하면 힘들지 않은데, 프로세스를 진행하는데 2가지 조건이 항상 수반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여러 프로세스를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해야 하며 두 번째, 진행하는 동안 아이가 잠자코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이와 놀아 주면서 점심 준비를 해야 하고 또 빨래와 간식 준비를 해야 하는데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다림을 배워가는 아이는 아직 자신의 것이 항상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보채며, 자신의 본능 (배고픔, 배변, 아빠와 놀고 싶은 마음)에 충실할 뿐이다. 


또 하나의 답은 ‘내 뒤에는 아무도 없다는 심적인 부담감’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최종 의사결정권자이자 최종 보호자이다. 나는 아내와 가족의 '믿는 구석'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이를 보는 데 있어 더 많은 권한을 가지게 되면서 그에 따른 책임이 부과되고 주변 가족들의 대우 역시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장에서 흡사 팀원에서 CEO로 보직이 변경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단시간 내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에 서툴렀던 나의 모습에 답답해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봐 준 아내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겠다. 사사 건건 지적하거나 잔소리를 늘어놓았다면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관계가 정립되니 막히거나 버거운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아내에게 털어놓는다. 그럼 아내는 본인이 겪었던 일이라 충분한 공감을 하며 경험에서 비롯한 의미 있는 조언도 해준다. 유아식을 먹일 때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리게 되고, 다 먹이고 나면 바로 식사 준비해야 할 시간과 간식시간이 오니 하루 종일 밥만 먹이는 것 같다고 푸념하니 먹이는 시간을 30분에서 40분 정도로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던 아내의 조언이 떠오른다. 아이의 성향과 남편의 성향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아내이기 때문에 핀 포인트 레슨이 가능해진다.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할 수 있는 존재임을 느끼는 순간 자신의 자존감은 올라가고 아낌없이 돕게 된다. 아내에게 조언을 요청하는 순간 아내의 입에 미소가 희미하게 번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내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자존감을 높여줄 수 있는 기회까지, 아내에게 조언을 요청할 때 부수적으로 얻는 효과마저 상당하다.


어느 정도 육아에 적응을 하고 나면 아내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나의 경우 휴직 중/후반 경이었는데 이때부터 파트너십의 역동성이 일어나게 된다. 아이의 육아법과 관련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아이에게 적합한 대안을 찾는다. 시중에 유통되는 정보들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우리 상황에 적합한 것들을 대화를 통해 선별하게 된다. 이전에는 일방적 요청과 그것을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면 이제는 적어도 서로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아내는 항상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다. 묻는 것에 대해 주저하지 말자. 세세한 사안들을 공유하고 질문할 때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아내를 존중하는 모습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이 돌아오게 된다. 아내가 차곡차곡 쌓아온 것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전 01화 첫 번째 육아휴직을 마무리하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