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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an 10. 2022

청소와 행복의 삼사분면

귀찮아도 치우는 이유

일요일 오후가 되면 나는 청소를 시작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 걸레로 구석구석을 닦는다. 평일 틈틈이 청소기를 돌림에도 어디선가 불청객이 찾아와 몸을 숨기고 자신만의 영역을 형성한다.


집 바닥이 하얀색이라서 그런지 조금만 느슨해져도 더러움이 비집고 나타난다. 특히 머리카락은 보기 싫게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이제 없겠지 안도하면 어디선가 나타나 손을 흔든다. 이내 모두 치울수 없음을 인정하다. 아이들 방과 신발장까지 마치고 나면 본격적인 먼지 제거에 돌입한다.


물걸레를 준비해서 안방 침대 주변부터 공략한다. 평소 자는 것 외에는 크게 사용하지 않음에도 수북하다. 얼마 되지 않아서 걸레는 까맣게 물든다. 그리곤 창문과 창틀에 다가간다. 특히 창틀은 손이 잘 닿지 않는 공간이라 넘어가기 쉬운데,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를 고스란히 마주하느라 겹겹이 쌓인 곳이 많았다. 그래서 이 구간을 지날 때면 몇 번이고 걸레를 빨아야 하는지 모른다.


안방을 마치면 거실로 향한다. 거실 테이블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공간이라 세심함이 필요했다. 특히 의자 밑에는 청소기를 돌렸음에도 과자 부스러기, 지우개 찌꺼기 등등 온갖 생활 흔적이 남아있다.


몸을 웅크리고 밑으로 들어가 좁은 공간에서 하는 걸레질은 만만치 않았다. 가끔 머리를 부딪치기도 하고, 갑자기 습격하는 녀석들에 잔기침이 나기도 했다. 의자 받침대 사이, 테이블 반대면 등 사각 지역까지 마치고서야 겨우 탈출한다. 이쯤 되면 슬슬 이마 사이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정수기에서 시원한 물 한 잔에 더위를 식힌다.


거실 책장은 손이 많이 가는 곳이다. 책에 묻는 손때가 떨어지기라도 한 듯 사면에 먼지가 가득하다. 원래는 둘째 담당이었는데 어느샌가 나에게로 넘어왔다. 그래도 본인 방 청소는 스스로 하는 것이 어딘가.  


책을 좋아하는 사심이 청소에도 고스란히 담긴다. 굳이 안 해도 됨에도 책의 모서리까지 꼼꼼히 챙긴다. 마치 이 공간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핑계라고 되듯이. 책장에는 우리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손잡이 주변은 10원짜리 동전 크기의 검은 지문이 보인다. 아무리 걸레로 닦아 보아도 지워지지 않는다. 내 손, 아내 손, 아이들 손이 닿고 닿아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만들었다. 결국 왼쪽 주머니에서 매직 블록을 꺼낸다. 다시 하얗게 변한 곳이 왠지 아쉬워진다. 이상하게도.


복도는 그나마 수월한데 왼쪽 벽에 나란히 위치한 공기청정기와 쓰레기통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특히 공기 청정기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있다. 그건 치열한 싸움의 증거이다. 쓰레기통에 묻은 흔적을 지우고 있으면 묘한 생각이 든다. '쓰레기통을 깨끗이 만들기 위해 열심히 닦을 필요가 있을까. 그건 존재 이유를 부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뭐 이런 쓸데없는 잡념이지만 쓰레기통은 깨끗해지면 안 된다는 편견이 그 안에 숨어있다.


이제 주방이다. 사실 이곳은 거대한 냉장고 외에는 손이 갈 곳이 거의 없다. 아내가 워낙 깨끗이 유지하기 때문이다. 냉장고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손잡이 주변에 음식 얼룩이 많았다. 아마도 하루 중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곳이기에 수시로 음식을 꺼내고, 넣으며 흔적이 남았다. 의자를 놓고 냉장고 위 면에 쌓인 묵은 때를 닦아내면 끝이 난다.


냉장고 청소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낸다. 반짝거리는 냉장고를 바라보며 무언가 뿌듯함을 느낀다. 주방의 왕을 한껏 멋지게 치장했다.


아이들 방은 스스로 하게 규칙을 정했지만 몇 군데는 손이 간다. 특히 둘째의 인형 바구니가 칸칸이 놓인 장은 작업하기 까다롭다. 곳곳에 장난감들이 병정처럼 길을 가로막기에 들고, 치우고, 원 위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특히 뒤에서 혹여나 망가뜨릴까 레이저를 쏘는 뜨거움도 견뎌야 한다.


둘째 방을 지나 첫째 방으로 향한다. 이 녀석은 치우기 싫어 어지르지 않는다. 언뜻 보면 깨끗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장된 곳이 많다. 책장과 책상을 닦고, 옷장 안에 엉망으로 걸어둔 옷장을 정리하곤 서둘러 나온다. 오래 머무를수록 사춘기의 예민함이 부딪친다.


청소의 긴 여정이 끝났다. 점심을 먹고 시작했는데, 벌써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중요한 의식을 치른 것처럼 이제야 마음의 평온이 찾아온다. 아주 잠시 유지될 찬란한 공간을 마주하며 이럴 땐 커피가 필요해하며 포트에 물을 끓인다.


테이블에 앉아 고소한 커피향이 주는 행복에 스며들며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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