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영학 May 07. 2017

공과 사 그 애매한 경계

개인적인 일, 공식적인 일, 그리고 work-life balance

약 십 년 전 컨설턴트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나는 일도 일이지만 '직장인이란 대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배워나가고 있었다. 물론 졸업 전에 인턴 생활을 8개월 정도 했지만, 왠지 진짜 월급을 받는 '직장인'은 뭔가 있을 것 같았다.


그 당시 우리 팀 PM님에 대해 내려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었다. 대충 요약하면, 매우 바쁜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서 PM님도 매일 늦게까지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을 하셨는데, 프로젝트가 끝나고 알고 보니 프로젝트 기간 중에 PM님 사모님이 출산을 하셨다더라 (그런데 팀원은 그걸 아무도 몰랐음)라는 이야기이다. 컨설팅을 하다 보니 동료들과 '컨설턴트가 갖춰야 하는 professionalism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가끔 밥이나 술자리에서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때 이야기한 professionalism의 몇 가지 조건 중 하나가 '공과 사의 완전한 분리'가 아니었나 싶다.


반면에 두 번째 직장에서 모신 상사 분은 정반대의 스타일이셨다. 그분은 아파트 1층에 사셨는데, 베란다 쪽에서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있었고, 울타리가 둘러져있어 작은 풀밭을 개인적으로 쓸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분은 그곳에 파라솔과 바비큐 굽는 장비들을 가져다 두었고, 그분 집에는 주말마다 주재원들과 한인 교회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곤 하였다. 우리 팀도 상무님 댁에 여러 번 놀러 갔었는데 나중엔 딸 하은이가 상무님과 친해져서 겂없이(?) 상무님을 우리 집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회사 사람과 어디까지 친해져도 되는가?" 혹은 "회사 사람들에게 개인사를 어디까지 공개해야 할까?"에 대해 한번쯤은 고민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문제뿐 아니라 직장생활에서의 전반적인 공과 사의 경계에 대해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다. 물론 정답 같은 것은 없고, 개인적인 생각들이다.



Decurion의 체크인


'An Everyone Culture'에 소개되는 세 가지 사례 중 하나인 Decurion에는 '체크인'이라는 의식이 있다. 모든 회의나 회사 이벤트 전에 행해지는 의식인데,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직장에서 전인격적으로 존재하기 위해 하고 싶은 무슨 말이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다 (강제는 아니며,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만 이야기해도 된다).


체크인은 자기 이름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물론 팀원의 이름을 모르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내가 지금 회사의 직원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개인으로써 이야기하는 것임을 드러내기 위해 이름을 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미팅에 대한 흥분감이나 기대감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지난 주말에 집에 찾아왔던 친척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자녀 교육과 관련된 고민이 될 수도 있다. 참가 인원이 많은 미팅의 경우 이 체크인 과정에만 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미팅이 끝나면 마찬가지로 '체크아웃' 시간이 있는데, 그 미팅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앞으로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 등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한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Decurion 사람들은 (공이든 사든) 자신에게 어떤 일들이 있었고, 그래서 어떤 감정상태라는 것을 주변과 소통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조직들처럼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고, 그래서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숨기고 다닐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내가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서 지금 짜증 나는 상태다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내가 짜증을 낼 테니 당신은 그 짜증을 받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감정 상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과, 그 감정을 그대로 표출해도 되는 것은 물론 다른 문제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도 될까? 나는 공직생활을 하신 경상도 출신 아버지에게 '조직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면 안 된다'라고 늘 들어왔다. Decurion이 이런 제도를 만든 이유는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여기는' Decurion의 공리(axioms)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람들의 내면의 경험을 직장 밖의 일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조차 직장 안의 일로 여기는 것이 그곳의 조직문화이다. 회사 일은 공적인 일이고, 개인 일은 사적인 일이니 개인적인 것이 회사 일이 될 수 없다는 가정을 Decurion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체크인'과 '체크아웃'은 아마존에 인수된 유명한 온라인 신발 유통업체 자포스에서도 똑같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누구나 직장생활을 해보면 모든 일은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우리는 어디서든 전인격적으로 존재한다. 회사에 출근하면서 '공적인 나'만 데리고 오고 '개인적인 나'는 집에 두고 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우리는 회사에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봤자 누군가의 공격 대상이 될 뿐이라는 것을 배웠을 뿐이며, 커리어의 발전과 성공이 회사에서 자신의 사적인 면을 감추는 능력에 달려있다는 관점에 빠져있을 뿐이다.



베버의 '관료제' vs 바너드의 '경영관리론'


우리가 지금 익숙한 조직 구조 - 대부분의 회사들의 조직도에서 볼 수 있는 계층적 모습 - 는 상당 부분 막스 베버Max Weber의 '관료제'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지금은 관료주의, 권위주의 같은 부작용과, 창의성, 유연성이 부족한 이유로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조직들이 관료제로 돌아가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베버가 정의한 '관료'는 법에 의해 공식적으로 맡게 된 업무를, 법이 명시하는 절차에 따라 안정적으로 수행해 나가는 사람이다. 그런 관료들이 모여서 업무 수행 절차와 보고 체계를 가지고 일하는 것이 관료제로 운영되는 조직의 모습이다. 관료제는 인간의 논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감정 같은 비논리적 요소는 조직에서 배제되어야 했다.


반면, 체스터 바너드Chester Barnard는 조직을 '서로 다른 생각, 관점, 배경을 가진 독립적 인간들의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가치는 늘 충돌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조직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보다 경영자가 조직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가 생각한 '경영'이란 조직의 목표와 개인의 가치를 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과정이었다.


바너드에게 있어서 감정 혹은 비논리성은 인간이기에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요소였고, 이러한 비논리성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보고 이를 적극 활용할 것을 조언했다. 어떻게 보면 위에서 언급한 Decurion이나 자포스는 자신의 감정과 회사 밖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도 직장 내에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비논리성을 조직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활용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팀원 간의 공감이 중요한 이유 : Google의 Aristotle Project


이전에 쓴 수평적 조직문화가 꼭 좋은 걸까? 에서 구글의 Project Aristotle을 언급한 적 있다.


구글은 어떤 조건을 갖춘 팀이 훌륭한 팀이 되는지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변수들과 팀 성과와의 상관관계를 찾는 연구를 2012년에 시작하고 ‘프로젝트 아리스토텔레스(Project Aristotle)’라 명명했다. 통계학자, 사회학자, 조직심리학자 등으로 구성된 이 프로젝트팀은 구글 내 180여 개 팀의 특성들과 팀 성과의 상관관계를 찾아보는 통계분석을 통해 어떤 특성이 팀 성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지 찾고자 했다.

이들은 단순히 학벌이나 경력 같은 정보뿐 아니라 팀원끼리 업무 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지,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지, 팀원들이 전반적으로 외향적인지/내향적인지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을 넣고 분석해 보았는데 전혀 패턴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는 어떤 사람들을 모아서 팀으로 구성하는지와 팀 성과와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이 프로젝트팀은 사회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강조하던 ‘집단 규범(Group Norm)’이라는 개념에 꽂히게 되는데, 이것은 여러 명의 사람이 어떤 집단으로 상호작용하게 될 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암묵적인 집단 상호 규범을 의미한다. 프로젝트팀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팀의 ‘조직문화’나 ‘암묵적 규칙’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들었고 이 집단 규범이 팀의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문제는 어떤 집단 규범이 팀 성과에 도움이 되는지를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1년여의 연구 끝에 프로젝트팀은 두 가지 바람직한 집단 규범을 찾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1. 좋은 팀에서는 팀의 모든 멤버가 거의 같은 비중의 발언권이 있었다. 팀이 맡은 과업마다 그 과업을 맡은 사람의 발언 비중이 좀 더 클 수는 있겠지만, 결국 팀 전체로 보면 모든 사람이 거의 같은 비중으로 발언하는 팀이 훨씬 더 성과가 좋았다.

2. 좋은 팀의 팀원들은 사회적 민감도(social sensitivity)가 높았다. 좋은 팀의 팀원들은 평균적으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 톤이나 표정, 제스처 같은 비언어적 신호(nonverbal que)에서 감정을 캐치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구글에서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팀원들의 사회적 민감도를 측정한 방법이 재미있다. 사람들의 눈만 보이는 사진을 보여준 후, 이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맞추게 하는 것이다.


<출처: 구글 검색>


잠깐 말을 바꾸자. 재미없다. 당신은 몇 개나 맞출 수 있겠는가? 안타깝게도 나는 많이 맞출 자신이 없다. 이 내용을 알게 되고 내가 처음 떠올린 생각은,


팀원 간의 공감이 중요하다면, 비언어적 신호를 캐치하는 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바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조직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였다. 그리고 우리가 인간인 이상,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는 지식과 스킬, 회사의 업무에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과거 개인적 경험, 그리고 회사 밖에서 겪는 일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회사 외적인 일들을 철저히 숨기는 것이 아니라(당신이 주말에 어디서 뭘 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팀원의 개인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감해주는 조직이 결과적으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엔 전제조건이 있다. 


Aristotle Project 팀의 리더였던 Julia Rozovsky는 Google의 블로그에서 연구결과를 '성공적인 Google 팀의 다섯 가지 요소'로 정리하면서 첫째로 '심리적 안정감'으로 꼽는다. 

심리적 안정감:
팀원들은 서로 앞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취약점을 드러내도(be vulnerable) 괜찮다는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즉, 개인적 경험이나 느끼는 감정을 다른 팀원에게 공유할 때, 그런 내용 중 일부가 자신의 약점이 되어 공격받을 수 있다고 느끼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이 프로젝트의 결론대로라면 그 팀은 '성공적인 Google 팀'이 되기 위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것이 된다.


당신의 조직은 어떤 분위기인가? 당신이 회사 밖에서 어떤 일을 겪었고, 어떤 고민이 있는지를 팀원들과 나눌 수 있는 분위기인가? 그리고 그런 내용이 혹시 나중에 인사평가 같은 자리에서 언급되며 당신의 평가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가? 


사실 이 글의 도입부에 했던 질문 "회사 사람들에게 개인사를 어디까지 공개해야 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혹시 이미 '개인사를 공개하기 어려운' 조직에서 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개인적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든지,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책잡힌 사람을 봤다든지. 만약 그저 '아무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길래'가 원인이라면, 먼저 시작해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개인사를 나누고, 공감하는 것이 팀의 성과에도 도움이 된다지 않는가.



잡히지 않는 신기루, Work-life Balance 


요새 공과 사의 구분을 좀 더 그럴듯하게 부르는 방법이 work-life balance이다. (물론 엄밀한 의미는 좀 다르겠지만...) 그런데 이 단어를 대부분 '회사에서 보통 몇 시에 퇴근할 수 있는가?'의 의미로 사용한다. 


위에서 언급한 Decurion의 경우 이러한 work-life balance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만약 회사에서 보내는 모든 시간이 work이고 life는 퇴근해야만 누릴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 모두는 최소한의 법적 근무시간만 지키더라도 이미 끔찍한 work-life balance 하에서 사는 것이 된다. 진정한 work-life balance는 그저 퇴근을 빨리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의 일이 life의 일부가 될 수 있을 때, 즉 공식적인 업무가 동시에 개인적인 의미를 가지는 일이 될 때만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너드가 경영자의 역할을 개인의 가치와 조직의 목표를 일치시키는 것이라 한 것처럼, 자기 스스로 그 문제를 고민해보고 혼자 해결할 수 없다면 상사와 같이 터놓고 이야기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마다 분위기가 다 다르겠지만, 출근할 때마다 감정을 숨긴 존재로 사는 것보다 직장에서도 전인격적인 존재로 살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좋지 않을까.





* 베버와 바너드에 관한 내용은 '인재경영을 바라보는 두 시선' (정권택 외)을 참고하였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 사회에서 '다르다'의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