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님은 이미 알고 있다 - PROJECT ARISTOTLE
저번 글(수평적 조직문화 테스트)을 쓰던 중에 입사 동기들과의 술자리에서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조직문화가 주제가 되었다. (난 술을 안마시기 때문에 술자리에서도 맨정신이다)
질문을 하나 받았는데,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남의 것이 좋아 보인다고 무조건 베끼는 자세는 좋지 않다
➜ 한국은 예전부터 수직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그 문화로 과거에 많이 성장해왔다
➜ 수평적인 문화는 주로 미국, 특히 실리콘밸리의 문화이다
➜ 실리콘밸리가 좋아 보인다고 문화까지 베끼는 것은 좋지 않다
결론: 수평적 문화가 꼭 수직적 문화보다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남의 것이기 때문에 ➜ 좋다 or 안 좋다는 논리는 잘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수직적인 조직문화보다 좋은 걸까 아니면 나쁜 걸까? 정답이 있는 걸까? 좋다면 무슨 근거로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애초에 왜 조직이 존재해야 하는가부터 다시 생각해보자.
이전 글들을 보며 눈치챘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조직의 존재 이유*는 두 가지이다.
1. 일이 되게 한다
팀으로써 의사결정을 내리고 실행함으로써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보다 큰 일을 이룬다.
2. 조직원이 전인적(기술+인격)으로 성장한다
일을 통해 전문성을 기르고, 사람 간의 관계를 통해 인격적으로 성장한다.
그렇다면 조직문화도 두 가지 컨텍스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번 일의 컨텍스트 하에서 문화는 조직에서 의사결정이 내려지고 일이 진행되고 성과에 따라 평가 및 보상받는 방식과 연관되어 있다. 이 측면에서의 문화는 수직적이 좋을지 수평적이 좋을지 일반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데, 모든 조직이 처해진 상황도 다르고 무슨 일을 하기 위해 모인 조직인지도 다르기 때문이다.
수직적 문화에서는 의사결정의 속도가 빠르고 일사불란한 실행이 이루어질 수 있다. 여러 명이 같이 고민하는 것보다 경험이 쌓인 전문가의 직관이 더 적합할 수 있는 분야, 혹은 세세한 의사결정 자체보다 실행의 속도와 퀄리티가 더 중요한 분야에서는 수직적 문화가 더 나을 수 있다. 반면 일의 진행 측면에서 수직적 문화의 가장 큰 리스크는 머리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때 이를 견제할 장치가 있느냐이다. 이 문제는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으므로 더 강조가 필요 없을 것 같다.
수평적 문화에서는 여러 명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면서 소수의 실수를 방지할 수 있고, 실행자가 의사결정에 참여했으므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실행할 수 있다. 다만 의사결정 자체가 지연될 수 있고, 결정이 다수결로 흘러갈 여지가 있으며, 의사결정에 대해 누가 책임지는지 모호할 수 있다. 따라서 의사결정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어떤 사안에 대해 누가 directly responsible 한지를 명확히 할 수 있는 시스템적 보완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에서 투표 프로세스가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일이 되게 하는 관점에서는 수직/수평적 조직문화의 장단점이 있을 수 있는 반면, 나는 2번 조직원의 성장 컨텍스트 하에서는 무조건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낫다고 생각한다. 이 컨텍스트 하에서 문화는 조직의 구성원과 구성원 사이에서 업무 내/외적 관계 및 소통이 일어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컨텍스트 하에서는 수평적 조직문화가 낫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모든 사람이 input(feedback!)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급이 어떻게 되건, 경력이 얼마나 길던 인격적으로 완벽한 인간은 없다. (회사뿐 아니라 교회에도 없다!) 그래서 정신의 성숙(이전 글: 당신을 성장시켜 주는 조직 참고)을 위해 feedback이 필요한데, 수직적 문화에서는 이 feedback이 한 방향으로만 이루어진다.
즉, 상사만 부하에게 feedback을 줄 뿐, 상사는 자신이 인격적으로 부족한 부분에 대해 feedback을 받지 못하고, 따라서 부족한 부분을 고칠 기회 - 다시 말해 성장할 기회 - 를 놓치게 된다.
군대도 말년병장이 되면 그렇게 편한 데가 없다. 흔히 조직문화가 수직적이면 상사가 편하고 수평적이면 부하가 편할 거라 생각하지만, 역설적으로 상사들의 인격적 성장 기회를 보장해 주기 위해서 수평적인 소통 문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여기까지 글을 쓴 후에, 재밌는 프로젝트를 발견하게 되었다.
우선 NYT의 Charles Duhigg가 쓴 아티클이다.
What Google Learned From Its Quest to Build the Perfect Team
(참고로 Charles Duhigg는 베스트셀러였던 '습관의 힘'과 '1등의 습관'을 쓴 사람이다)
기사를 간단히 요약해 보자면,
Google은 어떤 조건을 갖춘 팀이 훌륭한 팀이 되는지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변수들과 팀 성과와의 상관관계를 찾는 연구를 2012년에 시작하고 Project Aristotle이라 명명했다. 통계학자, 사회학자, 조직심리학자 등으로 구성된 이 프로젝트 팀은 Google 내 180여 개 팀의 특성들과 팀 성과의 상관관계를 찾아보는 통계분석을 통해 어떤 특성이 팀 성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지 찾고자 했다.
이들은 단순히 학벌이나 경력 같은 정보뿐 아니라 팀원끼리 업무 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지,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지, 팀원들이 전반적으로 외향적인지/내향적인지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을 넣고 분석해 보았는데 전혀 패턴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는 어떤 사람들을 모아서 팀으로 구성하는지와 팀 성과와는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이 프로젝트 팀은 사회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강조하던 'Group Norm'이라는 개념에 꽂히게 되는데, 이것은 여러 명의 사람들이 어떤 집단으로 상호작용하게 될 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암묵적인 집단 상호 규범을 의미한다. 프로젝트 팀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팀의 '조직문화'나 '암묵적 규칙'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들었고 이 group norm이 팀의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문제는 어떤 group norm이 팀 성과에 도움이 되는지를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1년여의 연구 끝에 프로젝트 팀은 두 가지 바람직한 group norm을 찾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1. 좋은 팀에서는 팀의 모든 멤버가 거의 같은 비중의 발언권이 있었다.
팀이 맡은 과업마다 그 과업을 맡은 사람의 발언 비중이 좀 더 클 수는 있겠지만, 결국 팀 전체로 보면 모든 사람이 거의 같은 비중으로 발언하는 팀이 훨씬 더 성과가 좋았다.
2. 좋은 팀의 팀원들은 사회적 민감도(social sensitivity)가 높았다.
좋은 팀의 팀원들은 평균적으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 톤이나 표정, 제스처 같은 비언어적 신호(nonverbal que)에서 감정을 캐치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이 결과는 내게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1번은 곧 수평적 조직문화를 가진 팀이 그렇지 않은 팀보다 뛰어난 성과를 내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뜻이며, 2번은 인격적으로 성숙한 팀원들이 있는 팀이 결국 성과도 더 뛰어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처음 주장했던 조직의 두 가지 목적 '일이 되게 한다'와 '조직원이 전인적으로 성장한다'가 서로 다른 두 가지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순환적인 목표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 팀의 리더였던 Julia Rozovsky는 Google의 블로그에서 이를 '성공적인 Google 팀의 다섯 가지 요소'로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가장 중요한 1번 심리적 안정감이다. 표현이 재미있는데, 서로 앞에서 'take risks' 하고 'be vulnerable' 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당신을 성장시켜 주는 조직'에서 소개했던 DDO(Deliberately Developmental Organization)의 모습이다. 내 약점을 숨기고 있어 보이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기반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피드백을 끊임없이 주고받으며 스킬과 인격적인 측면 모두 성장할 수 있는 조직. 이런 심리적 안정감이 조직의 성과에 얼마나 중요한지는 이전 글 '왜 일하는가?'에서 소개했던 사이먼 사이넥도 강조하는 내용이다. (TED: Why good leaders make you feel safe) 조직에서 심리적 안정감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사이먼 사이넥의 주장뿐 아니라 평가체계와도 연결 지어서 다음에 꼭 정리해 보려 한다.
종합해 본다면, 성과를 위해서나 조직원의 인격적 성장을 위해서나 수평적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목적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이다.
조직문화 안의 여러 주제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고, 또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점점 더 많은 연구와 자료들이 연결되는 것을 느끼며, 언젠가 브런치에 이슈 별로 글을 쓰는 수준이 아니라 더 큰 틀에서 정리해보고 싶다. 한편으로는 내가 생각하는 문화를 가진 조직을 언젠가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도 더 커지는 것 같다.
(*주: 조직의 존재 이유이지 꼭 회사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 조직 ⊃ 회사. 회사의 존재 이유라고 하면 으레 '주주가치' 같은 답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에 이번 글은 '회사'가 아니라 '조직'이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