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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학 Dec 13. 2016

스타트업은 언제부터 조직문화를 고민해야 할까?

스타트업 책들에는 나오지 않는, 그러나 너무나도 중요한 사람관리 이슈

스타트업 업계 사람들은 이미 많이 읽었겠지만 빌 올렛이 쓴 '스타트업 바이블'이란 책이 있다. 어떤 곳에서는 스타트업 필독서로 소개하기도 한다.


처음 스타트업이 고객을 만나 시장성을 조사하고 사업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을 24단계에 걸쳐 차근차근해나갈 수 있도록 마치 매뉴얼 내지 하나의 프로세스처럼 설명해 놓았다. 그중에서 고객의 페르소나를 정의하고 직접 만나서 고객의 소리를 듣는 부분은 실제 창업 초기의 스타트업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보드게임 하듯이 예쁘게도 그려 놓으셨다 (출처: 스타트업바이블)


그런데 24단계 중에서 조직문화는 몇 단계에서 고민하라고 되어 있을까?


놀랍게도 답은 없다. 이 책은 스타트업의 조직문화에 대해 아주 짧게만 언급하는데, 24단계를 모두 마치고 사업 확장 단계에 이르면 고민해야 할 과제 리스트에 '기업 문화 구축'이라고 한 마디 나온다. 책 뒤에 보면 부록으로 glossary가 있는데 조직문화는 아예 키워드 목록에도 없다. 물론 이 책 자체가 원래 창업가의 모호한 아이디어에서 처음 MVP를 만들어가는 창업 극초반을 다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쉽다.


스타트업 바닥에서 거의 경전처럼 여겨지는 '린 스타트업'에서는 어떨까?


마찬가지다. 1부 비전, 2부 조종까지는 린 스타트업의 여러 가지 방법론과 프로세스 들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3부 성장에 들어와서야 '유연하면서 빠른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급박하고 예상할 수 없는 변화를 다룰 수 있는 조직적인 구조, 문화, 훈련이 필요하다', '상호 신뢰와 권한 부여 환경이 필요하다' 같은 문장이 듬성듬성 등장한다.


이번엔 한국 책을 보자. 개인적으로 정말 현장 인사이트의 결정체라고 생각하는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수업'에서는 어떨까?


책의 마지막 챕터에 창업가의 인격, 가치관의 중요성에 대한 언급을 하고 마지막으로 윤리 의식을 강조하며 책을 마무리하긴 하지만 책 본문 중에는 조직문화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사실 권도균 대표님은 예전에 페북으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조그만 스타트업을 놓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 창업자들을 자주 만나요. 회사 내부의 문화, 외부에 보여지는 모습, 먼 미래에 하고 싶은 일들, 심지어 왜 그런 걸 하는지 알수없는 고집들로 줄줄이 사슬 묶인채 사업은 허덕거리고 있죠. "닥치고 성장" 그리고 그 성장이 창업가들이 이루어야 할 가장 크고 근본적인 가치일 뿐 아니라 대부분 회사의 많은 문제를 치료하는 해결책이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페북 포스팅은 워낙 짧기 때문에 어떤 창업자를 만나시고 어떤 맥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스타트업의 생존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부차적인 것들을 고민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는 창업자들이 안타까워 보이셨나 싶다.





물론 스타트업은 생존 그 자체가 첫 번째 우선순위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감히 이 의견들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우선 왜 미국 책들은 사업이 중요하고 조직문화는 좀 더 나중에 고민해도 괜찮다고 할까? 내 생각엔 근본적으로 미국과 한국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학생들도 이미 선생님과 수평적으로 자유롭게 소통하며, 자기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기본에 깔려있다. 즉, 살아온 대로만 해도 이미 스타트업스러움이 디폴트로 깔려 있으며, 거기에 우리 회사만의 어떤 특색을 입힐지만 고민하면 된다.


반면 한국은 주입식 교육과 상대가 한 살만 많아도 반말을 쓰면 처맞는 분위기에서 자라, 수직적 조직문화의 결정체인 군대를 거치고, 심지어 상당수는 대기업의 조직문화까지 경험해 본채로 스타트업에 온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어릴 때 아버지가 술 먹고 집에 와서 꼬장 부리는 게 너무 싫었어서 난 절대 술 안 마실 거예요'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알코올 중독자가 될 확률이 높은 것처럼, '난 대기업의 군대 같은 문화가 너무 싫어서 스타트업에 왔어요'라고 하지만 곧 직급이 팀장, 이사, 혹은 씨뭐시기가 되면서 '모두 내 말을 따르라'가 되기 쉽다.



그리고 미국은 근본적으로 조직에서 개개인의 전문성이 더 중요시되며, 마치 모듈처럼 직원 간의 관계보다 시스템과 프로세스 안에서 각자 자기 맡은 부분만 충실히 하면 일이 돌아가게 조직을 설계한다. 그 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 문화인데, 미국의 직무기술서는 굉장히 세세하게 이 사람이 해야 할 job 혹은 task에 대해 정리가 되어있는 반면 직무 외적으로 이 사람에게 기대되는 role(리더십, 팀워크, 부하직원에 대한 교육 등)은 거의 언급이 되어있지 않다.


즉, 미국은 누군가가 자기가 회사와 입사 계약을 맺을 때 수행하기로 했었던 일들만 완성하면 그 사람의 나머지 부분이 어떻든 태클을 걸 수 없다. 혹자는 제대로 된 직무기술서가 없는 것이 마치 우리나라의 경영 시스템이 더 뒤떨어진 증거라고 생각하지만, 내 생각엔 그것은 문화의 차이일 뿐이다. 미국에서도 직무(job) 위주로 채용과 평가가 돌아가고 직무 외적으로 회사에서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역할(role)을 제대로 강조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한계에 대해 비판하는 책들이 나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런 책들은 주로 비즈니스 측면에서 회사가 초창기에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을 다루고 있다. 즉, 회사를 만들고 운영하는 전체를 100으로 본다면, 이런 책들은 그중에 아무리 많아도 5~60 정도에 해당하는 부분을 커버하는 방법론 책이다. 단적으로 이런 책들은 초기 창업 멤버들을 어떻게 찾고 선별해야 하는지, 직원들에 대한 평가와 보상은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등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특히 다른 조직에서 관리자 경험이 없는 창업자가 마치 레시피를 보고 요리를 만들 듯이 '여러 책들에 나오는 방법론들을 하나하나 따라 하면 제대로 된 스타트업을 만들 수 있겠지' 하는 식으로 접근하다간 일이 아니라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조직에서 배운 식으로 스타트업을 경영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조직 경험이 있으면 창업했을 때 실제로 무슨 고민들이 벌어질지에 대해 좀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준비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창업자가 어느 순간 우리 조직문화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고 하자. 자, 범인은 누구일까?


범인이 창업자 본인이면 굉장히 골치 아파지니 논외로 하고, 범인은 아마도 이제 갓 입사한 대졸 인턴이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 어렵게 모셔온, 지분까지 줘버려서 내보낼 수도 없는 팀장/경영자급일 것이다.


대부분 우리나라의 채용은, 아니 심지어 대학교 면접도 이렇게 이루어진다. 먼저 실무진에서 1차 면접으로 이 사람의 전문성에 대해 평가한다. 이전에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들을 했었는지, 자격증은 뭐가 있고 어떤 도구들을 쓸 줄 아는지 본다. 좀 더 꼼꼼한 회사들은 이 사람이 앞으로 하게 될 일을 과제로 내주고, 며칠의 시간을 준 뒤 어떻게 해오는지까지 검증한다. 대부분 여기서 떨어진다. 특히 경력직은 실무진에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한 명이 실무면접을 통과해서 2차 면접으로 올라간다.


2차 면접은 경영진의 인성면접이다. 그런데 일단 어렵게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은 실무진이 이 사람이 엄청 필요하다고 미리 언급해 놓는다. 인성면접이긴 한데 비전, 성격, 간혹 스트레스 테스트 정도 물어보고 나면 서로 물어볼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최근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드래곤볼', 존경하는 인물은 '서태지'라고 대답하지만 않으면 합격하는 게 인성면접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 것이다. (아재 개그 같지만 내가 대학 입학할 때 우리끼리 그러고 놀곤 했다...)



전문성 조차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으면 할 말이 없다. 그건 무조건 채용 프로세스의 잘못이다. 전문성은 상대적으로 검증하기 쉽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능력은 있는데 회사 조직문화와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 들어왔을 때 발생한다. 직원이 몇 되지도 않는 스타트업에서 모든 것에 위아래를 따지거나, 다른 사람과의 기본적인 인간관계나 소통에 문제가 있으면 전문성이 아무리 뛰어나도 소용이 없다.


이런 사람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 것은 결국 창업자가 회사의 조직문화에 대해서 미리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조직문화란 거창하게 정리된 문서가 아니라, 적어도 창업자가 생각하는 '우리 회사에 이런 사람은 절대 없었으면 좋겠다'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다. 


보통 채용을 하는 실무자(초반엔 창업자 본인일 수도) 입장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직무기술서 같이 '우리 회사에 지금 어떤 포지션이 필요하다, 그 포지션은 이런 업무를 할 것이고, 이런 스킬이 있어야 한다' 같은 측면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채용 실무자가 그런 것을 우선 따지더라도 창업자는 우리 회사에 들어올 사람의 인격에 대한 최소한의 조건을 생각해야 하고, 그 조건을 갖추는지를 면접 과정에서 검증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즉, 내가 생각하는 스타트업이 조직문화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시점은, 이를수록 좋긴 하지만 적어도 평소에 알던 지인이 아니라 정말 사업을 위해 필요한 타인을 채용해야 하는 시점 이전이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조차 같이 일을 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적어도 완전히 모르던 사람을 그 사람의 전문성 때문에 뽑아야 하는 시점이 오면 전문성의 채용기준뿐 아니라 문화에 대한 채용기준도 반드시 같이 세워놔야 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스타트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이고 조직문화는 부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초반에 몇 안 되는 조직원으로 엉뚱한 사람을 영입하면 생존확률이 급격하게 낮아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은 생존과 직결되는 고민이다.






고민에 힌트를 좀 주자면, 다른 회사들이 정리한 조직문화를 보면서 공감되는 부분을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남의 회사 문구를 그대로 따오는 것은 의미가 없고, 팀에서 다시 우리 조직의 언어로 다시 만들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미 유명해진 배달의 민족 송파구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문구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굉장히 고민한 티가 난다.




리멤버 앱을 운영하는 드라마앤컴퍼니의 'DRAMA WAY'다. 매우 공대생스럽게 정리되어 있다. (심지어 파일 이름이 formula.jpg ...) 


이런 문구들을 처음부터 다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문구로 압축해서 정리하지 못했더라도 최소한의 고민은 머릿속에 있어야 사람을 뽑고 나서 후회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는 뜻이다.



권도균 대표님 페북 포스팅을 보면 가끔 '대기업에서 삼고초려해서 모셔 왔으나 정작 같이 일 해보니 빛 좋은 개살구'인 인물이 등장한다. (내가 언젠가 혹시 그렇게 되지 않을까 뜨끔하다) 역시나 어떤 맥락에서 쓰신 글일지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의 스킬이 문제일지 fit의 문제일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사족 같지만 지원자가 우리 회사의 조직문화에 어울리는지 검증할만한 몇 가지 팁이다.


레퍼런스 체크를 꼭 하자


SNS 같은 곳에서 몰래 하려고 하지 말고 지원자에게 본인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 있는 사람을 몇 명 추천받아 연락해본다. 이미 대기업에서는 대부분 이렇게 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당연히 지원자 입장에서는 자기에게 좋은 말만 해줄 사람을 추천할 것 같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걸린다. 즉, 지원자가 친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사실은 이 사람에 대해 좋게 평가하지 않은 것이다. 이 방법이 완벽하진 않지만 최악은 피할 수 있다.



면접 보러 왔을 때 우리 건물 경비 아저씨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자


혹은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도 좋다. 사정상 회사가 아니라 카페에서 면접을 본다면 지원자가 주문을 어떻게 하는지, 아르바이트생을 어떻게 대하는지 본다. 만약 조직이 조금 규모가 있고 면접관 본인이 아닌 다른 실무자(막내)가 지원자와 연락해서 면접 일정이나 장소를 소통했었다면 지원자가 그 막내를 어떻게 대하는지 본다. 실무 면접 때 과제가 주어진다면, 그 과제에 필요한 자료를 지원자가 직접 담당자에게 요청해서 받게 해본다. 


어떻게든 지원자가 면접관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interaction 하게 만들고 지원자의 태도를 관찰한다. 누구나 면접관은 본인의 윗사람, 혹은 평가자라고 생각해서 조심하지만, 나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나 아랫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대할 때 무의식적으로 본성이 드러난다.



대놓고 물어본다


가끔은 대놓고 물어보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본인 인간관계의 약점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볼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 회사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면접관에게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물어봐도 된다. 지원자가 혹시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다면 한두 시간이라도 회사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게 하고 그리고 우리 회사의 조직문화가 어떤 것 같은지, 회사 문화와 자기 자신이 맞는 것 같은지 솔직하게 물어보라. 합격하고 싶어서 거짓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회사를 다녀본 경력직이라면 보상을 떠나서 문화가 안 맞는 조직에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서로에게 고역인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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