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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학 Aug 31. 2017

나 없이는 회사 안 돌아간다는 사람

과연 능력자일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자기가 없으면 회사가 망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간혹 그런 생각을 실제로 입 밖으로 내뱉어 주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기도 한다.


물론 어느 조직에나 역량이 뛰어난 핵심인재가 있다. 어차피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회사 안에서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직급이 높은 사람 중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가장 일을 많이 하고 있는 실무진일 가능성이 크다.


분업화된 요즘의 조직에서는 같은 팀이더라도 옆에 앉은 사람이 구체적으로 무슨 업무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도 많고, 그 일을 어떻게 하는 건지, 어떤 정보들이 필요한지 등은 더더욱 알기 어렵다. 팀장 또한 관리자가 되면서 실무에서 손을 놓아버려서 팀원이 갑자기 사정이 생겨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자기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고 은근히 어필하는 사람들은 보통 다음과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

(나는 일이 많으니) 일을 줄여주거나 사람을 더 뽑아달라

(나는 일을 잘하니)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보너스도 많이 받고 싶다

혹시라도 나를 타 부서로 이동시키거나 내보낼 생각하지 말라


일을 잘하고 실력 있는 사람이 회사에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자기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자기 없이 회사가 안 돌아가게’ 만들어놓는 사람들이다. 조직에 대한 일종의 사보타주(sabotage)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행동유형을 보인다.



일을 하는데 꼭 필요한 정보를 자기만 알고 있다


어떤 업무든지 일을 하는데 꼭 필요한 정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업직이라면 자기가 관리하던 고객정보가 있을 것이고, 누가 언제 어떤 것을 구매했었는지 기록이 있을 것이다. 규모가 있는 회사라면 이런 것들이 시스템으로 관리되고 있을 테지만, 작은 곳일수록 개인이 엑셀이나 이메일 주소록으로 관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영업뿐 아니라 기획자가 시장 정보 출처를 팀원들과 공유하지 않는다든지, 홍보담당이 기자들과의 네트워크를 공유하지 않는다든지 여러 사례들이 있을 수 있다. 모두 자신의 존재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정보를 자기만 알고 있는 것인데, 특히 인맥에 관한 부분은 회사 입장에서 강제로 공유하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경우가 많다.



노하우를 공유하지 않는다


위와 유사한 케이스인데, 일을 하는 노하우를 공유하지 않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같은 업종의 여러 브랜드를 운영하는 회사가 있다고 하자. 만약 어떤 점장이 매장관리를 탁월하게 한다면 그 사람의 노하우를 다른 브랜드에도 전파해주면 회사 전체 실적이 개선될 수 있는데, 이런 노하우를 꽁꽁 숨기는 것이다. 해당 브랜드 입장에서는 계속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다른 브랜드를 경쟁사처럼 경계하는 것인데, 부서 간의 경쟁을 일부러 유도하는 회사에서는 이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인수인계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앞의 케이스들은 어쨌든 일을 계속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적어도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동안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팀을 이동하거나 퇴사하는 상황에서 인수인계를 안 하는 것은 이야기가 다른데, 그 사람이 사라지자마자 곧 문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수인계는 개인의 성향 문제도 있고 회사의 분위기 문제도 있다. 의외로 많은 회사들이 누군가가 이동하거나 퇴사한다고 하면 인수인계보다 어떻게 하면 마지막 순간까지 일을 더 시킬 수 있을지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당장 하루 이틀 더 부려먹을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이 떠난 후에는 곧 인수인계 제대로 안 챙긴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한다


특히 얼마 안 되는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임원들 사이에서 흔한 일이다. 상무까지만 달고 1~2년도 안되어 회사를 그만두는 임원이 부지기수다. 물론 그 레벨이 되면 경쟁도 훨씬 치열해지고 다른 회사에서 스카우트 해가는 경우도 많다.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몇 년 동안 최고경영진 후보군 리스트에 새로운 이름이 추가되지 않는다면 혹시 지금의 최고경영진이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회사의 약점을 쥐고 있다


회사가 각종 공문서를 위조하거나 경쟁사와 담합하는 것 같이 법을 어긴 적이 있다면 담당자는 회사의 약점을 알고 있는 셈이 된다. 물론 그 일에 직접 연루된 담당자도 법적으로 자유롭진 못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회사와 이 사람의 관계가 틀어질(?) 일이 생기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제도적인 해결책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을 막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선 노하우를 공유하는 체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보통 회사에서 지식경영이라 불리는 영역이다. 이전 직장에서는 ‘프로젝트 페스티발’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각 부서에서 좋은 성과를 올린 혁신 노하우를 발표하고 시상하는 자리이다. 물론 이런 행사 자체가 하나의 비부가 업무이고 보여주기일 뿐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런 체계가 있으면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공유 방식뿐 아니라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같이 고민해야 하며, 노하우를 공유하지 않으려는 사람/부서에게 어떤 불이익이 돌아가게 되는지 반대급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정말 중요한 업무는 정/부와 같이 항상 할 줄 아는 사람이 여러 명 있는 것이 좋다. 꼭 퇴사가 아니더라도 휴가나 교육 등으로 담당자가 자리를 비우는 상황을 평소에 대비해야 한다. 이런 준비는 팀장이 임의로 지시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규정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좋은데, 자신의 노하우를 가르쳐줘야 하는 직원 입장에서는 귀찮기도 하거니와 회사에서 혹시 자신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브리지워터의 레이 달리오는 double-check이 아니라 double-do 하라고 말한다. 정말 중요한 일이라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체크를 여러 번 할 것이 아니라 아예 여러 명이 서로 독립적으로 같은 일을 하도록 시키라는 뜻이다. 일을 맡은 사람들이 모두 결과물을 가져왔다면 그것들을 합쳐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도 있고, 누군가 일을 제대로 못했더라도 다른 누군가는 그 일을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퇴사하는 경우에도 공식적인 인수인계 절차를 밟도록 정해 놓아야 한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퇴사 전에 남은 연차 소진하고 노트북과 법인카드 반납하고 비밀유지 서약서 서명하는 것 외에 별다른 절차가 없다. 하고 있던 업무를 다른 팀원에게 인수인계 완료했는지 팀장이 형식적으로 몇 번 물어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퇴사 의사를 밝히는 순간 (혹은 그전에 미리) 퇴사 전까지 구체적으로 무엇이 인수인계 되어야 하는지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좋다. 이러한 체크리스트가 담긴 인수인계 확인서를 따로 만들어 팀장과 인수인계를 받은 후임자의 서명을 받게 한다. 확인서 안에 ‘미흡한 인수인계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퇴사 후에도 보완을 요구할 수 있다' 같은 문구를 넣어두면 법적 효력이나 실제 실행 여부를 떠나서 퇴사자가 조금 더 신경 써서 인수인계 하도록 심리적으로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직원에게 약점 잡힐 일은 애초에 하지 말자.



근본적인 해결책


레이 달리오의 Principles를 소개하면서 조직은 결국 목표를 달성하는 기계여야 하며, 기계는 디자인과 사람으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디자인이 우선이고 거기에 사람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사람에 디자인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디자인을 맞추면, 그 사람 없이는 안 돌아가는 기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기계가 나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 사람은 자기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게 된다. 만약 정말 저 사람이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갈 것 같은 사람이 있다면,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기계의 설계 전체를 뜯어고쳐야 한다.



회사에 다 알려주고 나면 어떻게 살아 남으라는 것인가?


이 글은 원래 네이버 비즈니스인사이트에 기고했던 글이다. 올라가자마자 댓글에 아주 난리가 났다. 어떤 새X가 이딴 글을 썼냐부터, 중소기업 사장 같은 마인드로 썼다느니 회사의 노예가 되자는 거냐느니... 간혹 자기에게 인수인계 똑바로 안해주고 사라진 옛 상사를 욕하는 글들도 보인다.


어차피 여기는 개인 브런치이고 이왕 욕먹은 김에 더 쎈(?) 내용을 쓰려고 한다.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다보면 지식이 생기고, 그 일을 오래 하다보면 지혜가 생긴다.


정보 (일을 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기초 정보)

지식 (축적된 정보에서 인사이트를 끌어내는 노하우)

지혜 (정보만으로 알 수 없는 것을 유추해내는 능력, 앞을 내다보는 능력)


이 중에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그 자체만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정보와 지식(노하우)이다. 그리고 위 글에서 언급한 것들은 전부 이에 해당한다.


지혜는 지금 하고 있는 일 그 자체만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당장 하고 있는 일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내가 속해있는 산업과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 것인지,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지금 회사를 굴러가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정보와 지식(노하우)이고, 회사의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지혜이다.


정보와 지식(노하우)은 매뉴얼화 혹은 문서화가 가능하며 따라서 인수인계도 가능하다. '암묵지'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말 그대로 매뉴얼화가 되지 않은 개인의 머릿속의 지식을 뜻한다. 위 글에서 언급한 것은 이러한 '암묵지'를 '명시지' 혹은 '형식지'로써 공유하지 않고 개인의 비밀로 남겨둠으로써 회사에서의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에 대해 쓴 글이었다.

 

반면 지혜는 매뉴얼화가 불가능하며, 인수인계가 불가능하다. 지혜는 일에 대한 접근법이자 사고방식이다. 지혜를 인수인계 하겠다는 것은 내 뇌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수인계 하겠다는 것과 같다. 즉 당신이 정말 회사에서의 가치를 인정 받고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되고 싶다면 정보와 지식을 무기로 삼을 것이 아니라 지혜가 무기가 되어야 한다.



러다이트(Luddite) 운동이라고 혹시 들어보았는가? 자동 방직기가 등장한 1800년대초, 영국의 방직공들은 그 기계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까봐 두려워했다. 새로운 기계가 자기 일자리를 없애기 전에 먼저 그 기계를 없애야겠다고 생각한 방직공들은 한밤중에 망치를 들고 자기가 일하던 공장을 습격해 대형 망치로 방직기를 부수려했다.


재미있는 모순은 그들이 들고 있는 대형 망치를 발명한 에녹 테일러가 그들이 부수려한 자동 방직기도 발명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러다이트라고 불렀고, "에녹이 그것들을 만들었고 에녹이 그것들을 파괴할 것이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다녔다. 그래서 그들이 방직공으로써의 일자리를 지키는데 성공했을까?



논리적 비약일 수 있지만, 정보와 지식을 무기로 자기 자리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러다이트 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내가 없이는 회사가 안돌아가게 만든다고 해서 내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요즘 4차 산업혁명이니 AI니 하면서 일자리가 위협 받는다는 경고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데, 정말 그 시대가 온다면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을 사람들은 정보와 지식 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몸으로 일하는 사람들보다 먼저 대체될 것이라 생각한다. 정교한 로봇이 AI보다 만들기 어렵다.)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면 회사의 노예가 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암묵지를 꼭꼭 숨기고 붙잡고 있어봤자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 그리고 우선 내가 없이 회사가 안돌아가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긴 할까? 사실 왠만한 암묵지들은 그 사람이 없어져도 잠깐 아쉬울 뿐이지 다른 누군가가 곧 방법을 찾아낸다.


지혜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방직기를 부숴서 일자리를 지킬 수 없는 것처럼, 정말 회사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그 방법 밖에 없다.



『어서 와, 리더는 처음이지?』 종이책으로도 출판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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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네이버 비즈니스인사이트에 기고했던 글을 재편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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