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하면 우리 팀은 수평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팀장님?
요즘 노트7도, 순siri 사태도 원인 중 하나로 '수직적 조직문화'가 지목되면서, 스타트업은 물론이고 대기업들도 수평적 조직문화로 바꾸고자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고 있다. 직급을 단순화하기도 하고, 결재선 길이를 줄이기도 하고, 아예 서로 영어 이름만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 조직의 문화가 수평적인지 수직적인지 어떻게 알까? (물론 하루만 다녀봐도 직감적으로 안다) 혹은, 수평적 조직문화를 위해 도입한 이런저런 조치들이 효과가 있는지 어떻게 알까?
객관적 지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생각해 볼만한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질문할 수 있는가?
상사가 무언가를 지시했을 때 부하 입장에서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 건지 구체적으로 이해를 못할 수 있다. 물론 이때 최악의 조직문화는 부하가 상사에게 다시 질문하지 못하고 '알아서' 상사가 원하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문화다.
이런 문화에서는 곧 최악의 경우가 발생하는데, 바로 상사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부하에게 적당히 일을 시키는 것이다. 써야 할 보고서가 있는데 상사는 보고서의 대략적인 결론과 몇 가지 키워드 밖에 떠오르는 게 없다. 그 상태로 부하에게 던진다. 그 키워드들과 결론은 서로 논리적으로 연결도 되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부하가 머리를 쥐어짜서 무언가를 만들어간다. 그 보고서를 읽고 나서야 상사는 생각이란 걸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저기에 지적질을 하더니 곧 그 보고서는 처음부터 다시 써야 하는 상황이 된다.
아마 이 상황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슬프다) 안타깝게도 부하에게 일을 시키면서 본인은 그 일의 명확한 아웃풋 이미지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부하가 질문을 못한다면? 그럼 부하가 그 일의 아웃풋 초안을 만들어서 상사에게 가져갈 때까지 몇 시간 or 며칠이 낭비되게 된다.
낭비되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질문할 수 없는 조직문화를 부하는 절대 수평적이라 느끼지 않으며, 더 큰 문제는 그 부하는 당신에게서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상사의 지시에 부하가 'No'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상사의 지시가 무언가 불합리해 보이거나 우선순위에 동의가 안된다면? 여기서 뻔한 답은 '그래도 무조건 해야 되면 수직적, 상사의 지시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면 수평적'이다.
물론 부하가 'No' 할 수 없는 조직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부하가 'No'라고 말한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이다. 비교적 수평적이라고 하는 조직 문화에서도 부하가 상사의 지시에 클레임을 건다면 그 지시가 왜 불합리한지 증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의무가 부하에게 생긴다. 반면 진정한 수평적 조직에서는 부하가 상사 지시의 불합리한 점을 설득해야 하는 동시에, 상사 또한 본인의 지시가 왜 필요한 것인지를 설득해야 하는 의무가 동시에 주어진다.
나도 이 것을 뼈저리게 느낀 적이 있다. 첫 직장 컨설팅 회사에 입사한 지 아마 1년 반 정도 되었을 때인데, 우리 팀에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그 당시 우리 프로젝트는 A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 오늘 처음 출근한 이 신입사원은 A가 아니라 B가 중요한 것 같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날 나와 내 선임 둘이서 그 형을 밤 10시까지 야근해가며 설득했다.
결론적으로 우리 팀은 다시 A를 하기로 했다. (결론이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 형이 뭐라고 하든 찍어 누르고 그냥 원안대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우리가 그렇게 강행했었다면 7년이 지나고 회사를 두 번 옮긴 지금까지도 그 형과 연락하며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관계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상사가 부하에게 배우려 하는가?
첫 직장인 전략 컨설팅 회사에서 그다음 직장으로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다. 회사 내에 인하우스 컨설팅 부서가 있었는데, 외부 컨설팅 회사에서 경력사원이 입사했다고 강의를 부탁받았다. 그래서 전략을 주제로 이전 회사에서 했던 프로젝트 경험들과 몇 가지 책 내용을 중심으로 강의를 준비했다.
사실 그날 내가 무슨 강의를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그 부서의 부서장이었던 부장님은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물론 그분이 워낙 바쁘신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든 그날 나는 '부장'이 '과장'의 강의를 듣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으신 것처럼 느꼈다.
회사에 입사할 나이 정도 되면 모든 사람에게는 그만의 인생 경험이 있고, 강점이 있고, 배울 점이 있다. 물론 그 배울 점이 당장 우리 팀의 업무와 상관도가 떨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분명 상사도 부하에게 배울 점이 있고, 당장 머릿속에서 연결이 안 되더라도 그 부하에게 배운 점이 상사의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대학 때부터 이미 모두가 모두에게서 배우는 것이 몸에 배어있는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 배움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분위기가 있다. 하지만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지향한다면, 배움은 모두에게서 모두에게로 흘러가야 한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부하에게 무엇을 배운 적은 언제인가?
상사의 눈을 보고 대화할 수 있는가?
가장 subtle 한 포인트이다. 이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깨달음이기도 하고, 반면 여러 조직문화에 대한 논의에서 거의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포인트이다.
우리나라는 상사/부하를 떠나서 눈을 마주치는 문화가 없다. 부하는 상사라서 눈을 보지 못하고, 상사는 뻘쭘해서 눈을 보지 못한다. 같이 미팅을 하지만 서로 종이와 노트북만 바라보기 일쑤고, 보고하는 자리에서도 앞에 띄워진 ppt 화면만 보고 있다.
상사는 부하의 눈을 쳐다보는데 부하는 상사의 눈을 피하는 조직도 많다. 상사의 눈을 피하는 이유는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할지 두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사가 무슨 말을 할지 두려운 조직은 결코 수평적이지 않다.
지금 잠시 우리 팀 신입사원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이야기의 내용은 상관없다. 만약 그 장면이 무언가 마음속에 불편함을 만들어 낸다면 (이놈이 감히?) 미안하지만 당신의 팀원들은 당신을 이미 두려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한 명씩 따로 만나서 눈을 쳐다보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보라.
중국에서 일하는 동안 뭐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나는 중국인들이 참 당당하고 글로벌한 면이 있다고 느꼈는데, 왜 그렇게 느끼는지 이유를 몰랐다. '중국인들은 상사의 지시가 부당하거나 궁금한 점이 있을 때 바로바로 이야기하더라'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중국인들은 상사에게 무언가 보고할 때 상사의 눈을 보고 이야기한다.
직급체계를 줄인다고, 호칭을 '님'으로 통일한다고 저절로 수평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눈높이'를 맞추어도 정작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이 글을 쓰는 동안 흥미로운 질문을 하나 받았는데, 바로 '수평적인 것이 꼭 좋은 조직문화인 가요?' 하는 점이다. 다음번에는 이 주제로 글을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