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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도 황희두 Apr 20. 2018

[황희두 에세이] 같이의 가치

서로 함께 뭉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2016년 6월 28일,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민사 소송을 진행했다.

수십 명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기치는 가짜 대학 정의구현을 위하여.


그리고 오늘,

약 2년 간의 기나긴 싸움이 잠시 막을 내렸다. 나의 손을 들어준 재판부의 판결을 끝으로.


정의를 위한 싸움, 길고 긴 소송의 시작


2015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프로게이머 은퇴 후 놀기만 하던 나는 어느 순간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아버지 지인이라는 사람이 나에게 모 대학을 추천해주었다. 미국에서 건너온 대학인데 국내에서 2년간 공부하면 정식 학위를 인정받을 수 있으니 공부 하다가 추후에 편입을 하라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녀는 해당 대학 교수였다. 본인의 인센티브를 위한 포섭이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게 얼떨결에 강남에 위치한 조그마한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둥그런 안경을 끼고 머리를 왁스로 떡칠한 코털 사내를 만나게 된다.


처음부터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던 그는 학장이었고,

요상했던 첫인상답게 스스로를 '교육계의 이단아'라 부르고 있었다.


잠시 후, 으로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말을 놓고 나에게

친구들을 데려오면 인센티브를 주겠다,

얼마간 공부하면 교수를 시켜주겠다,     

국내 모 굴지 기업 CEO들이 자기를 만나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둥 이상한 소리만 쭉 늘어놓았다.


황당한 마음에 자리를 박차고 나갈까 하다가,

2년 간 열심히 공부해서 다른 대학에 편입해야겠다는 생각과

브로슈어에 있는 유명인들을 보며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우리들의 악연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이라고 보기엔 허술한 점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을 느꼈고

지인들의 도움을 통해 결국 해당 학교가 페이퍼 대학이라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알고보니 미국의 한 주택으로 사업자등록증만 발급받고,

영어로 그럴듯하게 서류를 꾸민 후 한국에서 학위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


가뜩이나 힘들어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치는 모습에 분노한 나는,

그 길로 학장을 찾아가 따졌다. 사기꾼 답게 오히려 그는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보 취급하고는, 미국의 시스템이 원래 이렇다고 말했다. 역시나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오랜 세월에 걸친 소송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짜 학교란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하던 다수 학생들의  비난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학교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단 사실밝혀졌지만,

흘러간 시간과 돈이 아까워서인지 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두둔했다. 시간이 지나면 진짜 대학이 된다는 학장의 입 발린 말을 믿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학교에서 왕따가 된 나는 일하던 직원 한 명과 단 둘이서,

가짜 대학과의 고독하고 긴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같이 늘어나는 피해 학생들을 지켜보며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지인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준비했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기치는 사람들을 전부 다 잡아넣겠다는 거대한 꿈을 안은 채.


하지만 재판 과정은 무척 고독하고 힘들었다. 학교 측의 저항은 너무나 거셌고 뻔뻔하게 판사 앞에서 거짓말하는 학장의 모습을 보며, 심지어 나조차도 설마 하는 마음이 들정도로 불안함을 느낀 적도 많았다.


그런 그를보며 사기도 아무나 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심지어 본교 총장이라는 사람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무고죄로 고소하겠다는 등

온갖 회유를 해도 안 먹히자 법무부 배지와 정계 인맥들을 과시하며 나를 위협했다.


사실 이보다 더 황당했던 것은 소송 담당 판사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황희두 씨, 보아하니 아직 미래가 창창하신데 이럴 시간에 가서 스펙이나 쌓으세요. 그냥 빨리 합의하시고 끝내시죠"


어떻게 공정한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가

재판 도중에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정말 화가 났지만 한 편으로 기나긴 소송을 통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위안했다.


인생을 살면서 절대 쉽게 얻는 것은 없다는 사실,

스스로 과대 포장하는 사람을 절대 믿어선 안 된다는 사실,

불의를 알아도 개인의 이익을 위 다수가 묵인할 때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여전히 일부 기득권은 스펙만을 추구한다는 사실까지.


사실 중간에 소송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무척 많았지만 주위 사람들의 격려와,

한 사람의 소신을 보며 용기를 내고 끝까지 버틸 수 있었다.


'소녀상 지킴이 김샘'


청년 활동을 하면서 우연히 알게 된 그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고 한일 합의 폐기를 위한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지난 박근혜 정부의 집중 타깃이 되었고 결국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언젠가 그녀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정말 피곤하고 무서울 때도 있지만, 저는 끝까지 맞서 싸울 거예요."

특유의 천진난만한 미소와 해맑은 표정을 지으면서.


심적으로 너무나 힘들었겠지만,

의외로 해맑은 그녀의 모습에 나는 크게 감명을 받았다.

나보다 훨씬 더 힘들고 두려운 순간이 많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싸웠다.


소녀상을 위해서.

위안부 할머니를 위해서.

우리 사회의 죽어가는 정의를 위해서.


그런 멋진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도 가짜 학교 측의 거대 세력들과 맞서 싸울 용기를 얻었고, 노력을 알아주었는지

올해  <궁금한 이야기Y>와 각종 언론까지 보도되며 많은 국민들에게 이 사건에 대해 알릴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오늘 약 2년 만에 재판부가 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건넨다.

학교와의 소송이 두렵진 않았냐고, 동료 학생들의 외면과 비난을 어떻게 참았냐고.


당연히 두려웠고, 고독함과 비난을 참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나의 주위엔 수많은 청년들이 함께 있었다.

고비마다 주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로해주었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고독하다고 느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옆자리를 지켜줬다. 이번 소송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같이의 가치'였다.

이 든든한 지원군들이 항상 존재하기에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사회 변화를 외칠 것이다.


사라져가는 정의를 위해서.

스펙이나 쌓으라던 판사의 콧대를 눌러주기 위해서.

아직 희망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리고 공동체의 가치를 증명기 위해서.


나의 이런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정의로운 세상은 하루아침에 오는 것이 아니다. 뛰어난 한 명의 리더가 나타나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하셨던,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씀처럼 결국 우리 국민 모두가 나서야 세상은 변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달았다.


우리 모두 깨어난 의식을 가지고 '같이의 가치'를 느끼면 저절로 조직된 힘이 생겨나지 않을까.


나도 이제,

고작 첫 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

ⓒ 소송 결과

제가 오랜 세월 소송을 버틸 수 있게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곁에서 응원해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끝까지 맞서 싸울 수 있게 자극준 스펙 좋으신 판사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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