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모 Jun 20. 2015

걷는 여행, 그리는 여행

Drawing Blue #01

제주도는 내게 낯선 공간이 아니다.

나이 서른이 채 되기 전에 5번을 다녀갔으니 이 섬을 잘 안다고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그렇다고 아주 생소한 곳이라고 하기에는 나름의 추억이 섬 곳곳에 꽤나 박혀 있는 편이다. 주위의 지인들 중에는 지긋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단 한 번도 제주의 땅을 밟아보지 못한 이들도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제주라는 섬을 꽤 경험해 본' 외지인인 셈이다.


김포 국제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요즘에는 거의 1, 2개월에 한 번씩 제주를 찾아 일주일 정도를 머물다 가곤 하는데, 제주도는 찾아갈 때마다 매번 새로운 매력으로 나를 매혹시키곤 했다. 좀 더 차분한 시선으로 바라보몇 개의 명소로만  기억되던 작은 섬은 어떤 대륙보다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섬 속에는 무척이나 깊고 푸른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아름다운 섬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 하굣길 버스에서 우연히 좋아하는 여학생을 만났을 때처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몰래 그리고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걷는 여행, 드로잉 여행이라는 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다.


섬의 색깔을 닮은 제주시외버스 터미널


제주를 가까이에서 바라보기 위해 항상 출발점이 되어준 그곳, 제주시외버스 터미널.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2009 아트스케이프 제주'가 추진됨에 따라 터미널 건물 외벽에  구조물이 설치되었는데, 하얗게 얽힌 선들은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가는 제주의 길을 의미한다.


제주의 수많은 길 중 무엇부터 걸어야 할지 막막했다. 제주에 여러 번 다녀와 나름 이 섬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정작 걷고 싶은 길 하나 쉽게 정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한심했다. 고민 끝에 올레 1 코스의 종착 지점인 성산포로 가기로 했다. 서툴기 만한 도보여행자가 이제는 걷기 여행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제주 올레를 걷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성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제주시에서 성산포로 가장 빠르게 가는 방법은 시외버스 중에서도 해안의 일주도로를 타지 않고, 중산간을 넘어가는 710번 노선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침 비행기를 놓칠까 봐 밤을 꼴딱 새다시피 하고 제주에 도착했더니 편안한 버스 좌석에 앉자마자 눈이 저절로 스르륵 감겼다.

 

잠들기 전에 후다닥 버스 안의 풍경을 종이에 남겼다. 펜 끝으로 버스의 흔들림을 느끼는 동안 커튼 없는 창문으로 제주의 햇살이 간지럽게 와 닿았다. 그림을 다 완성하고 난 뒤 깊게 잠들어도 될 것 같았다. 내려야 하는 곳은 성산포. 이 버스의 종점이니까.




-제주 드로잉 여행기는 '드로잉 블루'라는 매거진 형식으로 연재됩니다.

-매거진 구독 혹은 작가 구독을 통해 새글이 발행되는 것을 쉽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그 섬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