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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헌 Oct 21. 2018

불현듯 홀로 미국 여행
- 태풍 타고 미국으로 (1)

8/23 ~ 8/24. 대만 거쳐 우여곡절 끝 샌프란시스코에 오다.


월요일 미용실에서 머리 자르면서 우스갯소리로

‘태풍 오니까 비행기 못 뜨는 거 아냐?’라

웃고 떠들던 게 후회됐다.

태풍 솔릭.

지금이야 ‘솔릭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추억되지만

그땐 농담이 아니었다.



하필 비행기 뜨는 23일에 한반도를 관통한다는 뉴스까지.

사실 별 감흥은 없었지만 내 주위 사람들이 더 난리였다. 취소하고 다음에 가라, 환불 절차 알아봐라...


귀찮아할 때쯤 되자 항공사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15시 이륙이 17시로 미뤄졌다고.

뭐 두 시간쯤이야 괜찮지 하면서 공항으로 향했다.



태풍 때문에 비행기 편이 변경되면서

에바항공의 상징 헬로키티 젯을 탈 수 없다고 한다.

저렴해서 선택한 항공사지만 내심 아쉬웠다.


티켓 발권하는 곳에는 중국말밖에 들리지 않는다.

대만 항공이니 당연하지. 한국 사람은 나뿐인 것 같다.


공항에 그렇게 맛있는 게 많다는데...

미국에서 쓸 돈이라 생각하고 앉아서 글이나 쓰고 있다.



한 시간 반이나 이륙이 지연됐다. 앉아있는 것도 괴롭다.



기내 진입.

아기자기한 캐릭터 베개와 담요, 디스플레이가 귀엽다.

자리도 그냥저냥 비좁진 않다.

부산 내려갈 때 타던 KTX 생각하면 굉장히 편한 셈이다.


스튜어디스들이 나에게 중어로 말을 건다.

I can’t speak chinese 하니까 영어로 말을 건넨다.

기초 중국어 배워놓을걸.


기내식으로 Child Meal 신청한 거 맞냐고 물어본다.

어디서 들었는지 정확하진 않은데

에바항공 기내식은 베이직 메뉴보다

Child Meal이나 다른 특식을 선택하는 편이 좋다더라.

그런데 함정이 있다...



오랜만의 비행이라 사실 긴장도 하고 있었다.

이미 비행기는 구름과 빗속을 뚫고 이륙했는데 말이지...

태풍에 고통받아라 한국이여!



귀여운 어린이 기내식.

CJ 고메 스테이크의 유사 버전이 나왔다.

애 입맛이라 스키틀즈와 과일에 만족한다.

일반 기내식보다는 확실히 나은 선택이다.


비행기는 시끄럽다.

헤드폰을 들고 오지 않은 게 큰 실책이었다.


두 시간 비행도 지겨운 걸 보니

10시간 미국까지는 어떻게 버텨야 하나 걱정이었다.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를 읽었다.

미리 다운로드한 뱃사공과 레드벨벳 앨범을 들었다.

고 고 에어플레인 번개처럼 날아라.

별 3개 주고 냉정한 평가 내린 부분이 좀 미안해진다.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와

<디재스터 아티스트>, <셰이프 오브 워터>가 있다.

영화는 미국 가면서 보련다.



재미있는 듯 재미없는 듯 건조한 두 시간 후

대만 타오위안 공항에 착륙했다.

대만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같은 걸 기대한 건 아닌데.

열심히 걸어서 환승하러 간다.


길 잃을까 봐 걱정할 필요 없다.

안내 직원들 설명만 들어도 간단하게 게이트 간다.

환승 과정에서 다시 한번 검사를 한다.

확실히 미국은 힘든 듯싶다.


아기자기하게 게이트마다 테마를 잡아 꾸며놨다.

공항 구경은 생각보다 재미없다. 공항이 굉장히 작다.



세 시간 대기 동안 한 시간 기다려서 샤워를 했는데

타월이 없어 당황했다.

가방에다 수건 챙겨 오길 정말 잘했다.


한국에서부터 같이 온 외국인 누나가

혼자 밥 먹길래 SF까지 가냐고 물어봤다.


한국말을 나보다 잘한다.

샌프란시스코가 고향이라 동네 맛집과 알아둘 점,

갈만한 곳을 여러 가지 추천받으며 시간을 같이 보냈다.

기내 와이파이 바우처 코드를 공유해줬다.



특식의 함정은 다른 일반 기내식보다

거의 30분~1시간 빨리 나온다는 점이다.

장기 비행에서 정말 최악이다.

이것저것 하다가 잠들려는 찰나에 밥을 갖다 준다.

다들 자는데 나 혼자 오락가락하면서 천천히 밥 먹는다.

으윽 괴로워... 해산물 특식이 맛있어서 참는다.



3만 9천 피트 위는 일단 매우 춥고 매우 시끄럽다.

자다 깨서 어디쯤 왔나 확인해보면

푸른 태평양 한가운데 위 작은 점만 보일 뿐이다.

캐스트 어웨이의 기분을 알겠다.



<디재스터 아티스트>는 재밌었다.

장시간 비행의 유일한 낙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아침을 맞는다.

이러고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면 밤이라 살짝 아쉽다.



미국은 짱 삭막하다. 어두컴컴한 국제공항.

시키는 대로 다 하고 입국심사를 기다린다.



헬로키티 티켓은 여자 친구한테나 주라며

퉁명스럽게 얘기하는 심사관과의 대화.


Q : 휴가 기간인가?
A : 난 대딩이고, 방학이야. 놀러 왔어.
Q : 미국엔 왜 왔어?
A : AT&T 파크에 야구 보러 왔어.


순간 그의 표정이 환해졌다.


Q : 언제 보는데?
A : 텍사스 레인저스랑 일요일 경기 표 예매했어.
Q : 레인저스 팬이야 자이언츠 팬이야?
대답 잘못하면 허가 안 내줄 거야.
A : 당연 자이언츠지.
2010 2012 2014 월드시리즈,
매디슨 범가너, 버스터 포지.
Q : Welcome To USA (;;)
(추신수 미안해)



야구 보러 온 걸로 입국심사를 패스할 줄이야.

암튼 짐 찾고 아까 그 언니에게 리프트 잡는 곳을 배웠다.

유심칩 갈아 끼우니 의외로 LTE 속도가 한국과 비슷하다.

근데 내 번호로 우버가 등록되어있는 바람에

Lyft 앱 깔았다.


브라질에서 왔다는 기사 안드레아스는

미국에 일하러 왔냐고 물어본다.

그에게 한국인은 잡 인터뷰 아니면

아트 스쿨 다니는 사람밖에 없는 것 같다.

자기는 브라질리언이라 축구를 너무 좋아한단다.


밤의 샌프란시스코 길거리엔 딱 봐도

홈리스들이 무지하게 많다.

샌프란시스코 더럽고 홈리스가 너무 많다고 불평하던

아저씨는 호스텔 앞에 도착하니까 딱 한마디 했다.


‘누구도 믿지 마 (Don’t Trust Anybody)!’

이런 젠장. 암튼 쫄아서 호스텔로 부랴부랴 들어갔더니

웬 그룹러브(Grouplove)같은 직원들이 안내를 해줬다.

이런 고전 엘리베이터는 박물관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파웰 스트리트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호스텔.

일단 계획은 내일 짜고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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