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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 롤 May 08. 2024

우리 집은 노잼이야


우리 집에 무당벌레가 들어왔다.

아니, 내가 무당벌레를 집안으로 들여놓았다. 어쩌면 윤리적으로 비난받을지도 모르겠다. 무당벌레 입장에서는 단지 다섯 살, 네 살 된 고양이 둘의 재미를 위해 잡혀 온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어제 우리 집 가출소녀 1호가 복도 산책을 하던 중 갑자기 빌라 지하로 제법 바삐 내려가는 것이었다. 나도 속도를 내서 뒤따라 내려갔지만 이미 늦었다. 오랜 시간 주인들이 버리고 간 허술한 살림살이들이 뭉터기로 쌓여 있는 어둡고 침침한 지하계단 밑으로 숨어버렸다.  손을 뻗어 1호의 꼬리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미꾸라지처럼 유연하게 눈앞에서 빠져나갔다. 나는 주인 없는 버려진 물건들을 손으로 다 꺼낼 의지가 도무지 생기지 않아 1호의 이름을 최대한 침착하고 불러보았지만  분명 그 안에 있는데도 들은체만체했다.


이런 일은 이번이 벌써 네 번째이다.

단순히 나의 부주의라고 하기에 1호의 행동은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약이 오르기도 했다. 일이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빌라 복도에서 벌러덩 드러누워 배를 보여주고, 좌우로 구르는 깜찍한 짓을 하더니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계획된 행동이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하에 거주하는 이웃들도 있어서 1호의 이름을 몇 번 부르다 몇 분 기다린 후, 나는 집으로 올라왔다. 기가 막히고 약간 분한 느낌도 들어서 현관문도 닫고 소파에 기대어 앉아 1호의 심심찮은 가출에 대한 대안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대안에 대해서만 생각한 것은 아니고 야단 칠 궁리를 더 많이 했다.


"내가 지를 어떻게 키웠는데..."


생각할수록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이런 심심찮은 가출이 결국 더 멀리, 더 오랜 가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애가 탈수록 1호의 행동에 이유가 있겠다 싶으면서도 화가 났다. 목줄을 메고 복도 산책을 하면 익숙하지 않은 리드줄이 아이를 속박해 행동에 제약을 많이 주어서 힘들어하는 걸 보았기 때문에 줄도 하지 않고 '몇 분만 놀게 해 주어야지' 했다가 또 이런 꼴을 당하고 만 것이다.



왜 자꾸 나가는지 이유를 설명해보세요


문 밖 세상이 늘 궁금한 우리 집 1호는 늘 저렇게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옆집 사람들, 택배, 배달 기사님들 드나드는 소리까지 계단 오르는 소리만 났다 하면 문 앞으로 달려가 반응을 보인다. 특히나 우리 집의 벨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면 매우 경계하는 "우웅-"하는 단전 깊은 곳에서 나는 무서운 소리를 낸다.


1호에게 문밖의 세상은 두려움과 동시에 궁금한 것 투성이인 세상이다. 내 침대 서랍장 속에는 고양이의 사냥본능을 일깨워 준다는 벌이나 나비 모양의 낚싯대 장난감과 쥐꼬리를 연상시키는 여러 개의 깃털 장난감, 수은전지로 온오프 가능한 로봇버그, 앞발로 축구하듯이 굴려대던 양모볼, 고양이 기분을 좋게 해 준다는 캣닢 쿠션 등 쓰다만 수십 개의 장난감들이 보관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다 놀아본 장난감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두 녀석들 때문에 엄마이자 집사인 나는 매달 장난감 비용으로 나가는 지출로 급여가 들어옴과 동시에 스쳐 지나갔지만, 그 지출도 멈춘 지 몇 달이 되었다. SNS에서 아무리 대단하다는 장난감을 속는 셈 치고 구입해 주어도 길어야 몇 시간 가지고 놀면 금방 흥미를 잃어버렸다.


고오얀 것들...


그러한 와중에도 집안보다는 빌라의 복도는 훨씬 다채로운 세상인 모양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문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 현관 앞에서 얼쩡대며 불쌍한 소리, 무조건 칭얼대는 소리, 좀 더 가여운 소리, 날카롭게 우는 소리 등 울음 소리에 베리에이션을 줘가며 나의 고막을 괴롭혀댔다.


어제의 가출 소동은 생각보다 짧게 일단락 되었지만, 이미 심각하게 화가 난 나는 1호의 문 열어 달라는 소리를 듣고도 오분간 밖에 세워두었다. 퇴근 후 씻고 나온 동생이 내 눈치를 보다가 이제 그만 열어주어야 될거 같다고 하는 말을 듣고 밖에 있는 금쪽이 1호는 겨우 집 안으로 다시 들어올 수 있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랬는데 나는 노여움이 묻어난 손바닥으로 1호의 등짝을 몇 대 때렸고, 이 정도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자기가 좋아하는 공간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어제 그 소동이 있고나서 1호는 이모의 방에 가서 잠을 잤고, 새벽에 깨보니 내 종아리 사이에서 잠들어 있었다. 1호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오늘 아침에도 나가고 싶다는 의사 표현을 했지만, 단호히 거부했고 현재는 근신중에 있다.(고양이 근신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오늘 아침 우연히 욕실에서 이를 닦던 중 욕실 방충망에 붙어 있던 어른 코딱지만한 무당벌레를 발견했다. 어느 여름날 파리가 한 번 집 안으로 들어와 다시 온 집안을 날아다녔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아이들의 관심도와 집중력은 최고조였다.


장난감을 바꿔주어도 심드렁한 아이들에게 살아 있는 진짜 곤충이라면 오늘 하루 만이라도 무료해하지는 않을거 같았다. 방충망을 열어 칫솔질을 하지 않는 왼팔을 길게 뻗어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럽게 벌레를 집었다.


집 안으로 들여진 무당벌레는 당황스러웠는지 거실 한 켠에서 한 가운데로 한 가운데에서 블라인드로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아이들은 무당벌레가 날아다니자, 몇 분간은 정말 열심히 예쁜 벌레를 쫓아 다녔다. 아쉬운 건 이번에도 흥미를 가지고 긴 시간 즐겁게 노는 것 같지는 않았다는 점.


그래도 이 정도 놀이라도 했으니 오늘은 다른 날 보다 재미있었다는 일기 정도는 쓰지 않을까 상상해보았지만 아이들의 속마음은 알 수가 없으니. 좀 전의 벌레 체험을 간단히 끝낸 아이들은 쿨쿨 낮잠에 들었다.


 이 틈에 제 역할을 다해주신 무당벌레님을 고이 모셔신속히 바깥 세상으로 돌려보내드릴 예정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루해 하는 고양이들의 심심함을 덜어 주고자 벌인 이기적인 해프닝으로 크게 놀랐을 무당벌레에는 심심한 사과를 보낸다.


그리고 놀아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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