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카도 씨앗으로 싹을 틔워보기로 했다. 나의 첫 아보카도는 오래지 않아서 싹이 났다. 처음이라 비교 대상이 없어서 빨리 싹이 난지 몰랐는데, 나중에 다른 아보카도 씨와 비교해 보니 확연히 빠른 일자였다. 아보카도는 짧지만 굵고 단단한 뿌리를 내렸다. 처음이라 애정을 쏟던 나는 물을 갈아주려다 아보카도의 뿌리를 상하게 했다. 아보카도는 한동안 가만히 멈춰있었다. 한참이 지나고 가늘고 길며 여린 뿌리가 나왔다. 부러지지 않고 휘어지는 잔뿌리가 여러 갈래로 길게 뻗어갔다. 굵은 뿌리는 퇴화시켰다. 아보카도는 잘 자랐다. 길고 높이 자랐다. 나는 길고 높이만 올라가는 아보카도의 줄기를 잘랐다. 가지치기를 해야 더 튼튼하게 자란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아보카도는 뿌리를 다쳤을 때처럼 한동안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 아보카도는 다시 잎을 내보였지만, 시름시름 앓다가 바짝 말라버렸다.
미안해. 나는 잘해주려는 것뿐이었는데.
나의 선택이 너에게 너무 지대한 영향을 주어서 정말 유감이야.
너는 상처와 아픔을 충분히 애도하는 동시에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품었고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지.
너는 나에게 위안이었어.
나는 너를 나와 동일시 했거든.
네가 과거에서 배우고 적응해서 새로운 뿌리를 내렸을 때, 나 역시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어. 한순간 예기치 못하게 부러졌어도, 한동안 슬퍼하다가도 다시는 부러지지 않겠다는 듯 유연하고 기다란 잔 뿌리를 내리는 너를 보며 나 역시 잠깐 멈춰 애도하다가 새로운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만 같았어. 다른 이들의 말만 듣고 줄기를 잘랐을 때도 후회했지만 네가 보란 듯이 더 튼튼하게 자라나길 바랐어.
너의 시간이 멈춰있는 동안 나의 관심에서도 멀어져 결국 바짝 말라버린 널 보고 자책했지.
너에게 중요한 결정들이 내 한순간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다니 너무 불공평해.
억울함마저 너는 나 같아.
나 역시 주변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 수 없지.
나는 수많은 선택과 피드백들로 만들어졌어.
지금, 이 순간 선택하며 나의 최선을 사는데 주변 환경에 의해 꺾여버리면 어떻게 하지?
내가 너에게 한 것처럼.
슬프고 속상해서 다시 생각을 해.
너는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너의 존재는 여전하다고.
오만한 내가 바짝 마른 널 보며 끝이라고 생각했지만, 너는 집을 벗어나 더 큰 땅으로 나아간 거라고. 너의 존재는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거나, 새로운 생명으로 형태를 달리한 거라고.
그런 너를 생각하며 나도 잠시 한 시공간을 빌려, 주어진 자원으로 아등바등 애써볼게.
이 몸을 초월할 때까지.
25.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