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백이라는 흔적

by shadow 모과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귀찮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불안해서 자꾸 일정을 잡긴 하는데 막상 하려고 보면 하기 싫고 회의감이 든다. 무엇을 하던 남는 게 있을 거라고, 잘하고 있다는 말이 그날은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전날 글쓰기 모임 주제인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과거의 흔적을 더듬다가 습관처럼 누른 SNS에서 반갑지 않은 흔적과 마주했다. 나에게 강렬한 흔적을 남겼지만, 나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모습들이었다. 생각났다. 글을 쓰려 한 건 이 간극이 만들어낸 비참함 때문이었다. 기록은 평가의 결과다. 내 가치는 이미 평가되었다. 지워진 건 기록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테니까.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지겹게 맴돌고 있을 뿐이다.

내가 애정을 쏟은 공간이 나를 지워버리자 애정을 쏟은 그 시간마저 부정당한 느낌이었고, 그 시간이 내 인생에 공백이 된 것 같았다. 그 공백을 메꾸려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나를 기억하고 기록하지 않아 내가 나를 기억하고 기록하려 애썼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만큼 나의 흔적이 보잘것없었나? 슬퍼하다가 그 ‘보잘것없음’에 달라붙어 있는 감정들이 너무 버거워 감당하기 어려웠다. 터져 나오는 감정은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쏟아져나왔고, 쏟아지는 감정은 털어놓을 곳이 없어 일기장에 단어와 문장으로 배설되었다. 맥락 없이 감정만 가득한 글로 공감받을 수는 없다. 감정을 다 쏟아내고 나면 감정을 뒷받침하는 상황과 의미를 서술할 여력이 생길 줄 알았다.

그러나 희미해지는 감정은 기록의 동기마저 흐리게 했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감정이 힘겨워 무뎌지길 바라던 시간을 지나자 우습게도 희미해지는 감정을 붙잡고 싶어졌다. 나에게 남은 유일한 것이 그것뿐이라서. 넌 고통스러운 상태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깨달았다. 맞아. 그 고통만이 내 경험의 증거니까. 그 고통이 없으면 어떻게 나의 경험을 설명할 수 있겠어? 고통과 상처로 마무리된 일에 그 감정이 사라지면 나에게서 그 일이 없던 것이 되어버리잖아. 흐려지는 감정을 붙잡으려 감정의 최대치에 머물러 나의 경험을 설명하려 노력하지만, 감정의 최대치에서 설명하는 일은 에너지가 많이 들고 지루하고 복잡하며 무엇보다 귀찮은 일이다. 혼자 하는 기억은 외로웠지만, 의심만은 함께했다. 뭐든 같이 가는 것은 어려운 법인지 의심과 함께하는 쓰기는 매번 나를 주저앉혔다.

서점에 갔다. 흥미로워 보이는 책을 들어 훑어보고 내려놓기를 반복하며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수많은 책에 질식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한마디도 밖으로 내뱉어보지 못하고 욕심스럽게 문장들을 주워 삼키다가 저 깊이 가라앉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많은 흔적으로 만들어졌지만, 내가 원하는 곳에 원하는 모양의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이런 한탄 후에는 스스로가 우습고 부끄러워진다. 기록되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삶과 일 중의 하나가 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공백도 흔적이 아닌가? 빈틈을 만드는 시간이 필요한 걸까?


이 글을 쓴 지 한 달이 훌쩍 지난 시점, 미완의 이야기는 계속 흘러간다. 내 인생에 공백이 생긴 건 정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을 해석할 감정과 가치가 안정화되지 않아서 정의할 수 없었다. 감정은 감당하기 어렵고 계속 변했으며, 나에게 소중하고 중요한 가치와 사회에서 이해하는 가치의 격차가 너무 컸다. 내 인생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시기인 만큼 잘 해석해서 의미화하고 싶었다. 해석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고, 실패한 시간만큼 공백이 지속되었다.

시간이 고통과 상처를 다른 모양으로 바꾸었으니, 이젠 고통과 상처로는 공백을 채울 수 없고 공백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어느새 점점 메워지고 있다. 그만 놓아줘야 해. 과거의 나를 깎아내리지 않고 실패를 인정할 수 있을까? 당시 마음을 다했던 과거의 내가 초라해지고 싶지 않아서 힘겨웠다.

충분히 슬퍼했니? 다친 뿌리가 퇴화되는 중이야. 나의 아보카도처럼. 아보카도가 알려줬잖아. 상처받은 뿌리만으로 나아갈 수 없어. 그러나 사라진 게 아니야. 보이지 않아도 내 안에 남아있어. 경험을 통해 배워서 길고 유연한 뿌리 내린 것처럼 나도 상처를 충분히 애도했다면 이제는 다르게 해석할 수 있어. 다친 뿌리를 아까워하지 마. 내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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