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참 길다. 지친다. 어깨, 손목, 손가락, 발바닥, 종아리 안 아픈 곳이 없다. 현재 나는 곧 폐점하는 온라인 베이커리에서 알바 중이다. 사장은 불과 2주 전 폐업 선언을 했다. 인생을 걸었다더니, 인생이 이렇게 쉽게 접힐 수 있는 건가 싶지만 사장은 곧 다음 장을 펼칠 수 있겠지. 내 인생의 한 페이지도 사장의 통보와 함께 접히게 되었다.
인생의 다음 장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데, 폐업 소식에 주문량이 늘어 일이 더 많아졌다. 주메뉴는 지름 1cm 정도의 동글동글한 다양한 맛의 ‘볼’이다. 볼은 반죽을 조금씩 떼서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낸다. 나는 손이 빠르고, 빠르게 생산할 때면 신이 나기까지 하는데, 그건 내가 생산성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효율과 생산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충실히 자라나서 빠르게 생산할 때면 도파민이 도는 것 같다. 솔직히 스스로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볼은 감자볼과 고구마볼이다. 감자와 고구마 가루가 반죽을 건조하게 만들기 때문에 잘 뭉쳐지지 않아 작업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가루에 가까운 반죽을 오롯이 악력으로만 뭉쳐내야 한다. 감자와 고구마 반죽을 끝내고 다음 반죽으로 넘어갔을 때 반죽을 한번 만져보고는 속으로 ‘이거거든!’ 외치고 신나서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더 빠르게 끝내주겠어.
직장인 정신 승리를 본 적 있는가? ‘출근 시간부터 퇴근 시간까지 힘든 약속이 있다고 생각하기’, ‘돈 주는 피시방 간다고 생각하기’, ‘외로운데 사람 만나러 간다고 생각하기’ 등이 있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공짜로 촉감놀이 하며 돈을 번다고 생각하기’, ‘10년 뒤 생활의 달인 리허설한다고 생각하기’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노동처럼 보여도 숙련도가 다르다. 혼자만의 챌린지를 하기도 한다. ‘저 오븐 타이머가 울리기 전에 한 판 다 끝내야지!’ 계속되는 반복 노동에서 나름의 의미와 재미를 찾으려는 시도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내게 다가와 사장이 말한다. “좀 큰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약 9개월간 수없이 많이 만들었음에도 크기에 대한 지적이 빠지지 않는다. 기준은 사장의 기분이다. 얼마 전까지는 작업성이 떨어진다며 크게 만들라더니 이제는 작게 만들란다. 좀처럼 맞추기 힘든 사장의 기준에 기분이 팍 상한다. 매번 달라지는 기준에 맞춰 반복적으로 지적을 받고 긍정적인 피드백은 전혀 없다.
모두에게 똑같이 대한다면 원래 저런 사람이구나 싶어 말을 안 한다. 나와 비슷한 시기 들어온 알바생과 나에게는 조금이라도 실수할까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고,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아도 지적하면서 늦게 들어온 알바생에게는 관대하다. 나와 기존 알바생에게는 하나하나 지적하던 것도 새로운 알바생에게는 한마디도 안 하길래 대신 말했더니, 별로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말해서 머쓱했다. 그다음부터는 입을 다물었더니 새로운 알바생이 한 행동을 나한테 책임을 물었다. 권한은 없고 책임만 부여하는 사장의 말과 행동들이 부정적인 감정으로 차곡차곡 내 안에 쌓여갔다. 처음에는 내가 유치하고 속이 좁은 건가 싶었는데, 차별 대우를 느낀 건 나뿐이 아니었다.
기존 알바생과 내가 아무리 빨리 작업을 해도 아무런 말도 없이 바로 다음 일을 주던 사장이 새로운 알바생에게는 호들갑을 떨며 “어머, 언제 이걸 다했어요?”라고 했을 때, 은근슬쩍 일을 주며 15-20분씩 연장 근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사장이 새로운 알바가 일이 많은 것 같으니 조금 더 일하고 가겠다는 말에 연신 고맙다며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을 때, 새로운 알바가 살짝 베였다고 했을 때는 온갖 걱정과 함께 손수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더니 내가 베였을 때는 “저기 어디 밴드가 있을 텐데, 일단은(지금 바쁘니까).”라고 중얼거리며 하던 일을 마저할 때. 하나하나 열거하기에는 글이 너무 길어질 수많은 일화에서 느꼈다. 일 해줘서 고마운 사람 따로 있고, 일하는 게 당연한 사람 따로 있구나.
사람을 대놓고 차별하니 열심히 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잘하는 것이 당연하고 조금만 기준에 어긋나도 지적하니 의욕이 생기지 않아 태업하기도 했다. 일을 빠르게 처리하던 둘(기존 알바생과 나)이 태업하자 시간에 쫓기는 것을 보고 좀 고소하기도 했지만, 억지로 일의 속도를 늦추는 것도 에너지가 드는 일이었다. 나는 일을 빨리 잘 처리하며 느끼는 자기 효능감만으로 나의 최대치를 자발적으로 뽑아내려 했는데, 1분 1초까지 나의 노동력을 뽑아내려는 태도에 반감이 들었다. 어차피 나는 시급을 받는 사람인데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거지? 열심히 해도 알아주지도 않는데.
면접보러 갔을 때 만났던 사장이 생각난다.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닌 팀원을 구하고 싶다는 사장은 하고 싶은 게 많아 보였다. 이런저런 목표들을 말하는 사장과 경직된 면접이 아닌 들뜨는 수다를 떨었던 것 같다.
오랜만이었다. 누군가와 목표를 공유하는 것. 나는 기꺼이 사장의 팀원이 되고 싶었다. 지금은 파트타임으로 시작하지만, 함께 일하며 사업이 점점 커지고 여기서 오래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더 많이, 더 빨리 일하는 것이 나에게도 사장에게도 사업에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가 자발적으로 열심히 하는 게 착취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알바생들의 사정은 신경도 안 쓰면서 본인 사정만을 말하는 사장, 본인은 초심을 잃어놓고 알바생들이 언제나 이곳에서 열심히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장, 긍정적인 피드백 없이 지적만 하고 말과 행동으로 차별하는 사장과 대화를 끝내고 슬픈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꿈이 없는 대가가 이건가? 남의 꿈에 들러리가 되는 거?’ 이제 빌려 꿨던 꿈을 반납하고 다른 꿈을 찾아야 한다.
인생의 다음 장에 무엇이 나타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약간의 인정을 받고 싶다. 자기만족만으로는 지속이 어렵다. 뭐 대단한 인정이 아니라, 약간의 관심과 칭찬이면 충분하다. 아니, 부정적인 피드백만이라도 덜 들었으면 좋겠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할 거면 긍정적인 피드백도 같이 줬으면 좋겠다. 외부에서 오는 부정적인 피드백은 내적 동기마저 좌절시킨다. 자기효능감을 느끼기 어려운 사회에서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며 성취해 보려는 효능감을 깎아내리지 않고 함께 지켜줄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25.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