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안 좋아하는 내가, 그 많던 식물을 다 죽인 내가, 잔디를 가꾸고 있다.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는 것.
식물 좋아하는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 집에 화분을 갖다 두시고 죽기 직전에 데려가시고 그 반복의 날들. 그래도 아버지는 식물을 봐야 한다고 또 가져오시곤 했다. 생일이든 스승의 날이든 누군가 화분이나 꽃이나 들고 오면 그것을 어디에 두어야 하나부터 생각하다가 등 뒤에서 바짝 말라죽어가든 것들에 한숨을 쉬곤 했다. 물은 주기나 했으면 이토록 부끄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게 식물은 옆에 있는데 있지 않았던 것.
나무가 갔고, 마당에 구멍이 생겼고, 흙으로 마구 메워졌고, 고르지 못했고, 깨진 돌과 콘크리트가 마구 섞였고, 그 위에 롤잔디가 푸석푸석하게 깔렸고, 밤을 지새운 사람의 얼굴처럼 온통 누렇게 떠버린 마당의 낯.
약속했으니까 뭘 해봐야 했다. 우리는 버닝스(집에 관한 모든 것이 있다. 여길 잘 뒤지면 집 한 채도 지을 수 있을 것)에 가서 흙과 잔디씨를 샀다. 흙도 어찌나 종류가 많은지 이거 뒤적 저거 뒤적 그래봤자 이런 걸 사는 것이 처음이라 다 무모하게 보일 뿐. 지나가는 점원한테 잔디 상태를 손짓발짓 설명하고 추천받아 몇 포대 사 왔다. 자 이제 어쩌지? 그리고 생각해 보니 내게 잔디는,
매년 명절 전이면 온 친척들 모이는 날이 있었다. 벌초. 무언가 무섭게 생긴 그 톱니 달린 것을 아저씨들이 윙윙 돌리면 길게 자란 잔디가 잘리며 온통 풀냄새가 나곤 했다. 그 크다란 소리에 손목이 발목이 날아갈까 무서운, 벌초는 내게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잔디는, 들어가지 마시오-이지 않나. 어디든 잔디밭이면 들어가지 마라 밟지 마라 귀한 장소일수록 그런 표지판이 많아서 우리는 어릴 적부터 잔디밭에 성큼 들어가기 두렵지 않았나. 줄 쳐진 잔디, 괜히 맨몸으로 앉으면 이름도 생경한 벌레든 무언가가 파고들 것 같은 곳. 그냥 무한의 초록을 바라봐야 할 것 같은.
그랬다. 그럼 저것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냥 고이고이 모실 듯 바라보면서 물을 최대한 줄 것인가. 일단 롤잔디의 높이가 안 맞으니(그들은 대강 엎어놓고 가버림) 무언가 균형을 맞춰주면 될 것인가. 잔디무지한 우리 둘은 흙을 뿌리고 씨를 뿌리고 흙을 파내고 다시 옮기고를 반복했다. 다시 말하면 여기 여기 높다 파내자 아 저쪽이 이번에 안 맞네 아 그러면 또 여기가 낮아 이러면서 파고 덮고의 반복을 하는 무지잔디 2인조였던 것이다. 끝없는 오후, 비는 영영 안 오고 맨땅에서 뭐가 나겠어. 있는 롤잔디도 다 죽어가네 몰라.
아, 맞다! 호주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 적으셨던 아버지의 직업명은 가드너였다. 아부지 맨날 마당이랑 식물만 가꾸잖아요. 은퇴하셨으니 가드너 맞네. 그렇게 알려드렸던 나의 가드너 아부지께 전화를 했다.
잔디를 꼭꼭 밟아줘야 해. 판과 판 사이가 뜨면 죽을 수 있어. 땅을 고르게 하고 깔면 좋은 데 여의치 않았으니 들뜨지 않게 최대한 맞춰주고 잔디 사이에 공기층이 생기지 않게 잘 밟아줘.
밟아주라니. 잔디를 밟지 마시오. 들어가지 마시오. 밟지 마시오-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날부터 매일 밤낮으로 20여 장의 판잔디가 들뜨지 않도록 꼭꼭 밟아주었다.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저녁에 해가 져도 나가서 밟았다. 하루 이틀 지나고부터는 맨발로 밟기 시작했다. 꼭꼭 밟아서 씨도 깊이 깊이, 판도 땅에 착 붙어서 한몸이 되게. 밟고 또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들은 무얼까 했을 것이다. 아침 산책처럼 밤의 명상처럼 우리는 맨발로 잔디를 밟았다. 두 달 가까이 비가 시원치 않은 때라 마당은 날로 누런 색이 넓어지고 있었지만, 발에 닿은 땅은 마르지 않고 착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익숙한 감촉인 듯 발가락 사이에 느껴지는 마른 풀들도 보드랍고 훈훈했다. 나는 그렇게 식물과 만지고 있었다. 손으로 쓸어내고 발로 더듬었다. 처음이었다.
나는 그렇게 잔디들과 만났다. 식물이 돋아나길 기다린 적이 있을까. 하루 이틀 내가 닿은 마당의 그림자가 커질 때마다 여기저기에서 올라오는 잔디를 볼 수 있었다. 뭐가 나겠어 하고 마구 흩어 뿌린 그 자리에 새로 돋은 눈썹처럼 초록 잔디가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죽이지 않고 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