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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또황 Jun 02. 2020

 <퇴근의 쓸모> 2편. 나만 생각한 한 끼

아빠는 사업을 했고, 화가 많았다. 사업을 한다는 건 원래 그런 건지 정말 신기하게도 밥을 먹을 때.마.다. 현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전화가 왔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우리 귀청이 떨어지도록 소리를 지르며 전화를 받았고 그가 성질을 부리며 전화를 받는 동안 엄마와 나와 동생은 죄지은 사람처럼 조용히 숨죽여 음식을 씹었다. 나는 그렇게 밥을 먹으며 자랐다.


그래서 그런지 밥 먹는 것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맛있다’는 느낌도 잘 몰랐고, 먹고 싶은 게 있어 본 적도 잘 없다. (과자나 아이스크림 같은 군것질거리에는 환장한다.) 밖에서 남들이 맛있다는 걸 사 먹어도 속이 편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밥 먹을 때마다 꼭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왜 이렇게 못 먹어. 그러니까 그렇게 말랐지.” 나는 말랐는데 밥도 ‘못' 먹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억지로 음식을 넘겼다. 그렇게 먹으면 당연하게 체했다.


그런 나에게 혼자 밥해 먹는 시간은 정화의 시간이다. 조용한 부엌에서 채소를 씻고, 썰고, 볶는다. 덜렁이라 아주 쉽게 다치기 때문에 밥을 할 때는 무척 집중해야 한다. 집중하면 마음이 정화된다. 요리든 뭐든. 마늘 볶는 냄새나 양배추 볶는 냄새는 또 얼마나 향긋한지. 가볍게 먹는 걸 좋아해서 주로 야채를 볶고 다른 반찬 하나 정도를 곁들여서 먹는다. 밥은 주말에 냉동해두었다가 하나씩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다. 가끔 국도 끓여서 같이 먹는데, 내가 끓인 국에서는 꼭 엄마가 끓인 국 맛이 난다. 엄마는 나에게 ‘시집가면 맨날 할 텐데 벌써부터 할 필요 없다.’며 요리를 가르쳐주지 않았다. 근데 꼭 엄마가 끓인 그 맛이 난다. 어딘지 모르게 되게 맛없는 맛… (엄마 미안ㅋ 근데 우리 뭐가 문제일까?)


요리를 끝내고 나면 넷플릭스를 보면서 밥을 먹는다. 밥을 먹을 때 옆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이 없다는 건 정말 평화로운 일이다. 맨날 보는 시트콤을 보고 또 보면서 밥을 다 먹고 단것도 좀 먹으면서 늘어져 있으면 ‘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제야 오늘 고생했다 싶고 오늘도 딱 잘라 퇴근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목포에 내려와 별난 사람들과 징하게 부대끼면서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됐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나를 점점 더 잘 알게 되는데, 나는 참 세상 어디에서도 불안하고 불편했더라. 가정환경 때문인가? (유쾌한 웃음..) 하지만 여기에서는 나를 위해서 속이 안 좋을 때는 굳이 먹지 않는 것과 배가 부르면 수저를 내려놓는 것을 연습하고 있다. 여전히 어려워서 위장이 남아나질 않지만.. 또 작년에는 회사에서 동료들과 점심을 직접 해 먹었는데, 그 시간들을 통해 함께 밥해 먹는 것의 따뜻함, 재미와 맛있음도 알게 됐다. 매일 “맛있다.”고 소리 내 말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말을 해 본적이 없는 사람인데...


여러 가지 이유로 더 이상 회사에서 밥을 해 먹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걸 먹는 따뜻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 시간이 소중한 만큼 정시퇴근하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나만 생각한 한 끼’를 해 먹는 시간도 아주 소중하다. 내 위장 건강과 정신 건강을 위한 정화의 시간. 내 퇴근의 쓸모.


이번 달에는 다시 사람 죽이는 줄야근을 하면서 생활 리듬 다 깨 먹고 위장 건강도 엉망이 됐다. 이번 주 월요일에는 아침 8시에 퇴근을 했다. 응 아침 8시. 집에 가는데 몸과 마음이 온통 병들었던 작년 생각이 났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일해야 하는 걸까? 어두운 생각이 조금 올라왔지만 이제 집에 가는 것이 두렵지만은 않았다. 집에 가서 나를 위해 할 일이 있으니까. ‘나만 생각한 한 끼'를 해 먹고 늘어져 쉬는 것! 얼른 집에 가자. 우헤헤!


- 다음 달에는 ‘3편. 웃음의 힘을 믿나요’로 돌아올게요. 세상 사람들~! 다음 달에도 정시 퇴근 많이 합시다~!

부또황 소속 직업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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