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어람

벌써 밤 10시가 넘었다. 하지만 나와 엘리사는 도서관을 나갈 줄 몰랐다. 나는 한참이나 내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일단 이번 과제도 거의 다 완성이 되어갔다. 벌써 홍콩에 온 지도 3개월이 넘어가고 이번 학기도 다 끝나간다는 생각에 쓴 웃음을 지었다. 오기 전에는 내가 이런 상황을 마주할 줄은 몰랐지.

“When did you say you are leaving? (너 언제 간다고 했지?)”

나는 앞자리에 나와 같이 노트북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엘리사에게 물었다. 엘리사도 다음 주까지 내야 할 과제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피곤해 보이는 눈빛은 흥분감으로 빛나며 나를 바라보았다.

“Next week. (다음 주)”

엘리사는 신이 나서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Two weeks in Malaysia, five days in Singapore and ten days in Taiwan! (2주 동안 말레이시아 갔다가, 5일 동안 싱가포르에 갈 거야!)”

나는 부러운 듯 엘리사를 바라보았다.

많은 유럽 교환학생 친구 중 나와 호주에서 온 엘리사는 몇 안 되는 유럽인이 아닌 교환학생이었다. 유럽에서 온 다른 학생들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문화에 관해 이야기할 때 우리 둘은 똑같이 그들과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금발에 파란 눈인 엘리자와 나는 그렇게 친해졌다. 교환학생 생활 내내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서로 수업을 마치면 함께 도서관을 갔고, 자주 내 기숙사 방으로 와 밥을 먹었다. 그러나 다음 주부터 엘리사는 없다.

“You should go somewhere too. You know our semester is almost over. (너도 어딜 가야 해. 좀 있으면 우리 학기도 끝나잖아.)”

엘리사는 내 기분을 눈치챈 듯 말을 했다. 맞는 말이었다. 이제 엘리사가 가면 내 곁의 교환학생들은 거의 다 여행을 떠난 셈이다.

대부분 교환학생은 한국, 태국, 필리핀 등등 홍콩 밖으로 여행을 갔다.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처음부터 여행이 목표였다. 모이면 어디에 갈지 이야기했고, 도서관에 있으면서 어디로 여행 갈지만 찾아보았다. 그래도 엘리사와 나만이 거의 계속 홍콩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엘리사도 홍콩을 떠난다.

같은 교환학생인데도 이렇게 달랐다. 난 홍콩 생활의 물가에 즐기기보단 하루하루 생존해나가는 느낌이었다. 재료들을 사와 항상 요리를 해 먹고, 밖에서 외식은 거의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교환학생 친구들은 하루하루가 파티였다. 금요일 밤이면 모여 클럽에 가고, 휴일이면 외국으로 나가고.

“Yes, I do agree.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엘리사의 말에 대답했다.

조금 있으면 6월, 학기가 공식적으로 끝난다. 그러면 다들 자신의 고향으로 가겠지. 그럼 정말로 나만 남게 된다. 다들 한 학기만 교환학생으로 왔으니까. 모든 고민이 쏟아졌다.

‘뭘 해야 하지?’

나에게 삼 개월이라는 혹은 사 개월까지 시간이 남았다. 내 인생 처음으로 가지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시간. 그리고 난 그 시간을 무엇인가는 하면서 채워나가야 한다.

이렇게 나의 여행은 작은 자극들이 모여서 시작되었다. 열심히 여행을 다니는 다른 교환학생 친구들, 갑자기 생긴 빈 시간,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여행에 대한 열망 등. 이 모든 작은 자극들은 모여 나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혼자 여행하기에 가장 만만한 장소, 바로 태국으로.


나 혼자라는 무게는 무거웠다. 그동안 기숙사에서 살던 짐을 빼야 했기 때문에 그 짐을 맡길 곳을 찾아야 했고, 무엇을 할지도 생각해야 했다. 나 혼자만 예외였기에 방학 기간에 기숙사 사용에 대해서도, 언제 기숙사를 나가야 하는지, 얼마를 더 내야 하는지 이런 사소한 질문을 내가 다 담당자에게 물어봐야 했다. 그 사이 같이 교환학생을 하던 친구들은 본국으로 하나둘 떠났다. 나는 5개월 만에 불어난 짐을 커다란 가방 두 개에 차곡차곡 넣어 기숙하게 맡겼다.

그리고 3개월 동안 무엇을 할지 여기저기 찾아보았다. 내 인생 첫 혼자 여행, 그리고 첫 동남아 여행이었다. 기대만큼 걱정도 많았다. 여자 혼자인 만큼 치안도 걱정되었고, 처음 장기간 여행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6주 동안은 태국에서 봉사하기로 신청을 했다.

이상하게도 홍콩을 떠나 태국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은 나에게 어색하게 다가왔다. 내 앞에 닥칠 일들이 너무 큰 변화여서 내가 도피하는 건지, 아니면 머릿속으로 너무 많이 상상해 익숙해져 버린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내게 작은 도전 중 하나라 생각했었는지 모르겠다. 비행기를 타러 바쁘게 가야 해도 모자랄 판에 태국으로 가는 아침 날 나는 게으름을 피웠다. 잠을 뒤척이다가 결국 해가 중천에 떠서 일어났고, 느릿느릿 키를 주고 짐을 맡기러 갔다.

‘한 학기 동안 지낸 이곳에 정이 붙어 가기 싫은 걸까….’

내 머릿속은 벌써 시간이 내 것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느릿느릿 배낭을 메고 버스를 타러 갔다. 버스를 타러 갔을 때쯤 내가 얼마나 바쁜 상황에 넋을 놓고 있었는지 실감이 났다. 공항까지는 한 시간 넘는 거리인데, 내게 남은 시간은 한 시간이었다. 그때야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서 일분일초가 지날 때마다 내 심장도 같이 뛰었다. 떨리는 눈빛으로 구글 맵을 바라보았다. 설상가상으로 공항 1터미널과 2터미널 사이에는 한참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래도 달려가면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애써 마음을 잠재우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제 기도를 들어주시면 정말로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을게요. 제발 비행기 안 놓치게 해주세요.’

이 기도만 반복하여 결국 2터미널까지 도착했다. 급하게 커다란 화면으로 뛰어가 체크인은 어디서 하는지 살폈다. 그리고는 그곳으로 곧장 뛰어갔다. 물건으로 꽉 채운 내 여행용 가방은 미끄러지듯 나를 따랐다.

머릿속으로는 가장 긍정적인 상황을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한 사람이 안 타는 것을 알아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차는 막히기 시작했다. 미친 듯한 불안감 속에 결국 공항에 도착했다.

나는 빠르게 체크인 절차를 밟으러 들어갔다. 가방이 무거운지도 몰랐다. 줄이 길어 처음에 체크인 기계를 이용했다. 그런데 기계에서는 표에 문제가 있다며 승무원이 있는 곳에서 체크인하라고 떴다. 다행히도 기다리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 남은 시간은 비행기 출발까지 45분. 내 앞에는 세 사람이 있었고, 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며 기다렸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You cannot check in right now. (지금 체크인할 수 없어요.)”

승무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어떤 표시를 가리키며 말했다.

‘Check in is available before 1 hr.’

설마. 설마. 설마.

모든 질문이 내 머릿속을 지나갔지만, 승무원의 무표정함은 나를 주눅 들게 했다. 내 이성으로는 지금 상황이 이해 가지 않았다.

아직 시간이 있다고 판단한 나는 긴 줄에서 기다렸다. 바쁜 상황에서도 내 시민의식은 깰 수 없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오고, 승무원은 내 표를 보고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You cannot check in (체크인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표시를 가리켰다. 바로 비행기 시간 30분 전에는 체크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순간 머릿속에 와장창 깨지는 느낌이었다. 승무원이 너무 딱딱하게 대답해 뭐라고 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충격을 받은 상태로 공항 안에 의자에 앉았다. 많은 사람은 여행할 기대에 하하호호 바쁘게 지나갔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여행 시작부터 비행기를 놓치다니….’

그렇게 내 여행은 시작이 되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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