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카라과) 국경에서 여권을 빼앗기다.

마약 루트 타고 가는 중미여행의 시작

by 어람
난 코스타리카에서 살고있다.


중미에 대해 한국사람들이 가지는 편견은 만연하다.

‘위험한 국가’

‘마약’

‘가난한 나라’

내가 처음 코스타리카로 대학원을 선택했을 때도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다. 나라 이름을 못 외우거나 헷갈려하거나. 아무도 ‘아 거기!’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유럽 어디인가, 아프리카 어디인가로 생각한다.

“멕시코 밑에 있어.”

“멕시코 밑에 또 나라가 있어?”

한국에서 중미에 대한 반응 이렇게 뜨뜻미지근하다.


코스타리카? 생각보다 안전하다
미국의 뒷마당이니까.

내가 코스타리카에서 느낀 중미는 생각보다 안전하면서도 위험하고, 사람들은 친절하면서도 인종차별이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코스타리카는 미국 자본이 대규모로 들어와 대부분 중남미친구들에게는 미국의 나라라고 불렸다.

‘그럼 진짜 중미는 어떨까?’


우리 아랫집에 사는 니카라과 친구는 학생운동을 하다 코스타리카에 도망을 왔다. 온두라스에서 온 친구는 어렸을 때 자기 마을 사람들이 귀가 짧리는 것을 봤다고 했다. 멕시코 친구는 멕시코는 안전하지만 경찰의 말을 믿으면 안 된다고 했다. 나에게 중미에 대한 생각은 어렸을 때 미국에서 본 멕시코인들, 딸랑딸랑 종을 흔들고 다니며 아이스크림을 팔았던 멕시코인들이 다였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정해졌다. 그렇게 위험하다는, 그런데 안전하다는 그 미지의 세계 중미를 여행하기로.

우리의 여정은 코스타리카-니카라과-온두라스-엘사바도르-과테말라 이렇게 정해졌다.



여행을 나가기 전부터 사실 고민이 많았다. 나의 고민보단 주변 사람들의 고민과 걱정들이었다.

“If you are in danger, send us ‘Mango.’ That is a sign between us. No kidding. (네가 위험하면 ‘망고’라는 사인을 보내. 절대 장난치지 말고.)”

콜롬비아에서 온 브리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정한 여행이 단순히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이들은 내게 항상 얼마나 국경이 위험한지 강조하고는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네이버 블로그에 중미에 간 웬만한 베테랑 여행자는 핸드폰이나 카드 뭐 하나씩은 잃어버리고 왔다.

“My friend can help you when you go to Nicaragua. (내 친구들이 니카라과에 가면 도와줄 거야.)”

아랫집에 사는 마르쿠스가 말했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별로 믿지는 않았다. 중미의 약속은, 한국인들의 약속과는 다르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보는 정도일 테니까.

가방은 가볍게 샀다. 위에 티 세장, 아래 바지 세장, 수영복정도. 랩탑을 챙겼다. 한국어 수업을 할 예정이었다. 나중에 길게 가게 될 여행을 한번 대비해 보는 것이었다. 언젠가 디지털 노매드가 되어 여행을 하는 것은 내 소중한 꿈이다.


집주인 루뻬까지 총동원해 우리를 응원했다. 우리는 잔뜩 긴장 속에서 니 카버스에 올라탔다. 니카라과와 코스타리카 사람들 중 아시아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다. 다들 짐을 몇 가방이나 싸서 버스에 올라탔다. 우리의 가방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일 정도였다.

버스에 올라타 상상했다. 난 중미에 대해 잘 몰랐다. 영화 코코나 친구들이 자주 말하는 레게와 레게톤 정도. 화려한 색상과 리듬이 머릿속에 돌고 돌았고, 난 잠에 들었다.

“일어나 봐!”

옆에서 남자친구가 깨웠다. 나는 안대를 벗고 창밖을 보았다. 해가 서서히 뜨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하나 둘 짐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벌써 국경이었다. 꼭 안고 자던 짐을 어깨에 메고 사람들을 따라나섰다. 코스타리카에서 출국하는 출국국에는 금세 사람 행렬이 이어졌다. 우리가 줄 선 뒤로 사람들은 계속 이어졌다. 왜 버스가 새벽에 출발하는지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출국도 입국도 쉽지 않았다. 손을 내밀며 달러를 요구했고, 출국 질문도 입국 질문도 까다로웠다. 우리는 같은 버스를 탄 사람들을 졸졸 따라 출국장을 나오고 입국장으로 들어섰다. 중미답게 버스를 탄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드디어 입국조사서와 마주했다.

“Occupacion. (직업)”

“Estudiante. (학생)”

¿Cuantos dias estara aqui? (여기 얼마나 있을 건가요?)”

“Una semana mas o menos. (일주일정도요.)”

¿Numero de telefono? (핸드폰 번호)”

질문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리고는 여권을 가지고 갔다.

“Espera. (기다려요.)”

조금 있다가 니 카버스 기사에게 주겠다는 거였다. 나는 긴장이 되었다.

“Es muy importante para mi. (그거 저에게 아주 중요한 거예요.)”

입국조사과는 안다는 듯 걱정 말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여권을 빼앗긴 우린 멘붕 그 자체였다.

벌써 중미의 경찰들이나 공무원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익히 들었던 우리는, 혹시나 이 일로 돈을 요구하면 어쩌나, 그냥 뺏어가면 어쩌나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밖에서 우리는 기약 없이 기다렸다. 버스에 같이 탄 손님들도 바닥에 앉아 기다렸다. 기회를 잡은 국경에 사는 아주머니 한 명은 새벽부터 샌드위치와 음료, 커피를 바리바리 싸 오셔서 경을 넘는 사람들에게 팔고 있었다. 우리도 빵쪼가리 샌드위치와 음료를 마시며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바닥에 앉아 기다리는 우리에게 버스 기사 아저씨는 여권을 내미셨다. 여권 안에는 니카라과 출입 도장이 찍혀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해는 점점 더 떴고 시원한 버스는 뜨거운 니카라과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잠결에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커다란 화산이었다. 제주도를 통째로 갖다 놓은 듯 나무 사이로 커다란 화산섬이 우뚝 서있었다. 나름 여행 베테랑인 나에게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길가에는 소와 염소 떼들이 줄지어 섰다. 더 가슴이 두근거렸다. 니카라과는 내 취향이 분명했다.


내 취향을 말하자면, 난 발전되지 않은 도시들을 좋아한다. 자연이 많고 동물이 많으면 좋다. 방목된 행복한 소와 닭들이 있으면 보통 나도 행복했다. 나 같은 여행자가 많은 곳에 가 도 좋지만 웬만하면 아시아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곳에 있을 때 짜릿함을 느낀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난 내 취향 저격인 니카라과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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