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것만 보는, 확증
1999년, 검색 엔진 '익사이트(Excite)'의 CEO 조지 벨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으로부터 흥미로운 제안을 받습니다. 단돈 75만 달러(약 10억 원)에 자신들의 검색 엔진인 '구글(Google)'을 인수하라는 것이었죠. 하지만 조지 벨은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당시 익사이트의 검색 기술도 충분히 훌륭하다고 믿었고, 구글의 알고리즘이 그닥 매력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아는 대로입니다. 익사이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구글은 세계를 지배하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왜 똑똑한 사람들이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를까요? 단순히 운이 없어서일까요? 아닙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증거는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뇌의 습관 때문입니다.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는 종종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 상태에 빠집니다. 내가 세운 가설이나 전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죠. 그래서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에는 밑줄을 긋고 열광하지만, 내 주장의 허점을 찌르는 상대방의 말은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이 확증 편향이 빚어낸 최악의 비즈니스 참사가 바로 '퀘이커 오츠(Quaker Oats)의 스내플(Snapple) 인수 사건'입니다.
1994년, 게토레이로 대성공을 거둔 퀘이커 오츠의 CEO는 음료 회사 '스내플'을 17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그는 게토레이의 성공 방식을 스내플에도 그대로 적용하면 대박이 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많은 전문가가 스내플의 유통망과 브랜드 정체성이 게토레이와는 다르다고 경고했지만, CEO는 자신의 '성공 신화'를 지지하는 의견만 들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이사회를 설득하기 위해 이사들의 '입맛'에 호소하기도 했죠.
결국 퀘이커 오츠는 스내플을 인수한 지 27개월 만에 단돈 3억 달러에 매각했습니다. 확증 편향 하나 때문에 하루아침에 14억 달러(약 1조 6천억 원)를 공중분해시킨 것입니다.
내 뇌가 나를 속이려 할 때, 어떻게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요? 노련한 협상가들은 다음과 같은 안전장치를 마련합니다.
1.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을 선임하라 팀 내에서 일부러 반대 의견을 내는 역할을 지정하세요. 모두가 "찬성!"을 외칠 때, "잠깐, 만약 이 전제가 틀렸다면요?"라고 딴지를 거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천주교에서 성인을 추대할 때 무조건적인 칭송을 막기 위해 반대 의견을 말하는 사람을 세웠던 것처럼, 협상 팀에도 고의적인 비판자가 있어야 집단 사고(Groupthink)를 막을 수 있습니다.
2. 미래에서 온 부검 리포트: '사전 부검(Pre-mortem)' 프로젝트가 실패한 뒤에 원인을 찾는 것을 '사후 부검(Post-mortem)'이라고 하죠. 협상의 고수는 협상이 타결되기도 전에 실패를 먼저 상상합니다. 심리학자 게리 클라인이 제안한 이 기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 타임머신을 타고 1년 뒤로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맺은 이 계약이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단순히 "어떤 위험이 있을까?"라고 묻는 것보다, "이미 망했다"고 가정하고 원인을 찾게 하면, 우리 뇌는 확증 편향의 억제에서 풀려나 숨겨진 위험 요소를 훨씬 더 잘 찾아냅니다.
3. 질문을 바꿔라: "왜 안 될까?" 협상 준비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을 바꿔보세요. "이 전략이 성공할 이유가 뭐지?"라고 묻는 대신, "이 전략이 실패한다면 가장 큰 이유는 뭘까?" 혹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데이터는 무엇일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반증을 적극적으로 찾는 태도만이 맹목적인 믿음의 늪에서 우리를 구해낼 수 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하지만 협상 테이블에서 그 본능은 막대한 비용을 청구합니다. 내 확신이 강할수록, 의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그것이 1조 원의 손실을 막아줄지도 모릅니다.
자, 이제 내 뇌의 오류를 잡았다면, 상대방의 감정을 공략할 차례입니다. 혹시 100만 원을 주웠을 때의 기쁨보다 100만 원을 잃어버렸을 때의 속쓰림이 훨씬 오래가지 않던가요?
다음 편에서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본능 중 하나인 '손실 회피'와, 말 한마디로 가치를 180도 바꿔버리는 '프레이밍 효과'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