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내 통장을 스쳐 가는 그 돈은 과연 나를 위한 것일까?
25일 월급이 들어왔다.우리는 어김없이 '국민연금'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떠나보낸다. 액수가 클수록 마음 한구석에 불편한 의심이 고개를 든다. ‘이거, 사실상 그냥 세금 아니야?’ 내가 원치 않아도 강제로 떼어가고, 당장 돌려받는 것도 아닌 이 돈의 정체. 어쩌면 이건 정교하게 설계된 '세금 도둑'은 아닐까. 그 끈질긴 의심의 여정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나의 의심에 불을 지핀 건 ‘왜 1990년대 전후로 전 세계가 약속이라도 한 듯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을까?’라는 점이었다. 특정 세력이 전 지구적으로 세금을 더 걷기 위해 거대한 설계를 한 것이라는 음모론은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역사를 파고들자 조금 다른 그림이 보였다. 연금의 시작은 19세기 독일이었고,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전 세계는 '고령화'와 '가족 해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었다. 더 이상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전통적 방식이 불가능해진 사회. 국가는 노인들의 극빈층 전락을 막기 위해 ‘국민연금’이라는 사회적 안전망을 설계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의 ‘꼼수’라기보다는, 시대 변화에 따른 ‘고육지책’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은 정말 모두를 위한 따뜻한 약속일까? 여기서 두 번째 의문이 시작됐다.
"소득이 적거나 회사마저 다니지 않은 노인에게는 숨만 쉴 정도의 돈이거나 아예 없다."
이 날카로운 지적처럼, 국민연금은 '보험'의 원리를 따른다. 즉, 낸 것이 있어야 돌려받는다. 평생 소득이 불안정해 보험료를 내지 못한 이들은 이 제도의 가장 큰 ‘사각지대’에 놓인다. 물론 정부는 세금으로 운영하는 ‘기초연금’으로 이 구멍을 메우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노인들이 빈곤의 경계에 서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국민연금은 가장 도움이 절실한 사람이 아니라, 보험료를 꾸준히 낼 수 있었던 ‘안정적인 중산층’을 위한 제도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시스템의 진짜 수혜자는 누구일까?
여기에 가장 불편한 진실이 있다. 우리가 낸 보험료가 쌓여 만들어진 1000조 원의 국민연금기금. 이 돈은 누구를 살찌우고 있는가.
금융회사: 국민연금은 세계 3대 연기금이다. 이 천문학적인 돈을 굴리기 위해 수많은 자산운용사와 증권사에 운용을 맡기고, 그들은 막대한 ‘운용 수수료’를 챙긴다. 국민연금은 금융시장의 가장 큰 ‘고객’이다.
대기업: 연기금은 국내 주식과 채권 시장의 가장 큰 ‘손’이다. 기업에 안정적인 투자 자금을 공급하고, 위기 시에는 시장을 방어하는 구원투수 역할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의 노후를 보장하기 위해 모은 돈이 금융 자본과 산업계를 떠받치는 가장 강력한 기둥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다.
‘세금 도둑’이라는 의심에서 출발한 여정의 끝에서, 나는 국민연금의 두 얼굴을 본다. 한쪽은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사회적 약속’의 얼굴을, 다른 한쪽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 동력이 되는 ‘거대 자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제도는 선과 악, 혹은 음모와 진실로 쉽게 재단할 수 없는 복잡한 현실 그 자체였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이 거대한 약속이 현실의 빈곤을 외면한 채,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자양분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 돈의 ‘진짜 주인’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말이다.
당신에게 국민연금은 어떤 의미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