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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를 소개하는 그림 한점

by 청일

삶은 럭비공과 같다. 어디로 튈지, 어떤 방향으로 날아갈지 예측할 수 없다. 내 인생 역시 계획한 대로만 흘러간 것이 아니었기에, 이 표현이 유독 와닿는다.


15년간 직장 생활을 하고, 이후 20년간 자영업을 해왔다.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경험했고, 때로는 갑자기 한 분야에 깊이 빠져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삶은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흘러갔다. 과거의 나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커피와 함께하는 삶을 꿈꿨다. 카페를 창업하고 직접 운영하며 커피를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로스팅을 하고, 드립커피를 내리고, 중남미 커피 농장을 찾아가 구석구석을 견학했다. 커피 선진국의 카페를 방문하며 배우고 경험했던 순간들은 참으로 행복했다. 하고 싶었고, 미래의 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여전히 커피를 로스팅하고, 커피 교육을 하면서 커피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미래의 내 모습이 바리스타에서 ‘그림 향유 메신저’로 바뀌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2024년 1월, 겨울의 강릉.

잔설이 하얗게 남아 있는 설원을 지나, 발달장애우들의 그림이 전시된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사실 그림을 보러 다닌 적이 거의 없었기에, 전시 자체가 내게 특별한 기쁨을 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초청을 받았기에 마지못해 들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내 삶의 전환점이 될 만남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이 초면인 자리에서 갑자기 그림 강의가 시작되었다. 아내와 함께 임지영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난생처음 ‘3분 응시, 15분 글쓰기’를 해보았다. 그림을 보고 글을 쓴 경험도, 이런 방식으로 그림을 감상한 것도 처음이었다.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

낯선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발표하는 것을 들으며, 그들의 삶이 내게 스쳐 지나가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생면부지의 사람인데도, 그들의 고민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믿기지 않는 순간이었다.


나는 작가님께 물었다.

“이런 강의를 어디서 들을 수 있나요?”


작가님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고, 나는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이 감동을 나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


그렇게 8개월을 손꼽아 기다린 끝에, 예교리 과정을 수강할 수 있었다.

수업을 듣는 내내 조바심이 났다.

더 배우고 싶었고, 더 빨리 알고 싶었고, 더 깊이 느끼고 싶었다.

고급 과정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지루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고급 과정이 시작되었다.

매일같이 그림 관련 서적을 읽으며, 그림과 함께 사고하는 삶의 기쁨을 알아버렸다.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기분이다.

하지만 그 늪은 따뜻하고, 기분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제 나의 삶은 그림과 함께 배우고, 익히고, 나아갈 것이다.

행복에 빠진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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