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일
김용일(1958~ ) 작가는 한국의 서정적 회화 세계를 대표하는 화가로,
우리의 정서 속에 남아 있는 고향의 풍경과 가족의 기억을 섬세하고 따뜻한 색채로 그려내는 작가이다.
그의 작품에는 늘 ‘기억의 집’이 등장한다.
그 집은 실제 존재하는 장소가 아니라,
시간 속에 묻혀 있던 그리움의 장소이며,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잃어버린 고향’의 상징이다.
김용일은 수묵과 채색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며,
달빛, 꽃나무, 오래된 한옥, 장독대와 같은 일상의 소재를 통해 사라져 가는 정서의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그의 화면은 세밀하면서도 고요하고, 그 안에는 ‘사랑받았던 시간의 흔적’이 따뜻하게 배어 있다.
특히 달빛 시리즈에서는
밝지만 슬프고, 그리운데 따스한 감정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는 그 달빛을 통해 ‘기억의 온도’,
즉, 그리움과 위로가 공존하는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다.
달빛 아래,
고즈넉한 한옥 한 채가 포근히 잠들어 있다.
집을 감싸 안은 거대한 나무는
하얀 구름처럼 피어올라
어둠 속에서도 환히 빛난다.
그 나무는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오랜 세월 그 집을 지켜온
수호신처럼 느껴진다.
기와지붕 위로 고요히 달빛이 내려앉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부드럽게 피어오른다.
마당에는 고추가 말라가고,
담장 옆에는 분홍빛 꽃이 피어 있다.
창문마다 스며드는 주황빛 불빛은
그 안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웃음과 온기를 상상하게 한다.
이 그림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
사랑이 머물던
시간의 흔적을 담은 풍경이다.
달빛 어린 깊은 밤,
집 안 가득 환한 불빛이 일렁인다.
그 빛 속에는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있는 풍경이 떠오른다.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고,
형제자매가 함께 있는 공간.
그곳은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행복의 원형’이다.
지나간 날들은
언제나 그리움으로 남는다.
명절이면 우리는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고, 술잔을 기울였다.
그 속에서 피어났던
웃음과 이야기들.
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날들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그 기억은 더욱 따뜻하고도, 아리다.
11월의 마지막 날,
엄마를 보내드리고,
다섯 달 뒤,
아버지를 보내드렸다.
속절없는 창조 우주의 소멸은
동력을 잃어버린 자동차마냥
멈춰서 버렸었다.
그렇게,
나를 생성했던 우주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맞이한 첫 추석.
그날의 고향은,
마치 방향을 잃은 기러기처럼
나에게 너무 멀게 느껴졌다.
차라리,
명절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시간도 있었다.
세월이 약이 되어,
이제는 그 기억이
흐릿한 풍경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 희미한 빛 속에서도
나는 부모님의 따스한 손길과
웃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그들의 자리에 서서
아이들에게
같은 사랑을 물려주는 부모가 되었다.
다시는 불러볼 수 없는 이름.
하지만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나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엄마… 아버지…”
그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그리움은 여전히 아프지만,
이제는 그 사랑을 대물림 하며
또 다른 명절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