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by 청일

1. 작가 소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Michael Craig-Martin)

1941년 더블린 출생의 아일랜드계 영국 작가로, YBA(Young British Artists) 운동의 대부로 불린다.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데미안 허스트 등 많은 영국 현대미술가들을 가르쳤다. 일상의 평범한 오브제를 선명한 색채와 단순한 윤곽선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며, 사물의 크기와 맥락을 무시한 비현실적 조합을 통해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시한다.


2. 작품 설명


이 작품은 사다리, 우산, 의자, 테이블, 책, 안전핀, 열쇠, 옷걸이, 컵, 사물함 등 일상의 평범한 물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의 경우, 우리는 그것들과 약간 닿아 있다”며, 이러한 오브제들이 자기 자신을 알게 하고 타인에게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더 많이 알릴 수 있게 하는 매개체라고 설명한다. 각 사물은 단순화된 형태와 비현실적인 색상으로 표현되어, 물건 자체보다는 그것이 가진 의미와 상징에 집중하게 만든다. 일상적 사물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과 기억, 감정이 투영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3. 나의 감상

물건에 스민 시간의 향기


같은 쓰임의 물건이라도 색과 형태는 제각각이다.

용도는 같을지라도, 사용하는 이의 취향과 마음에 따라

그 물건은 전혀 다른 얼굴을 지닌다.

그래서 누군가의 물건을 보면

그 사람의 결이 느껴진다.


가끔은 내 취향이 아님에도

버리지 못하는 물건이 있다.

망자가 입었던 옷가지 하나,

그 안에는 그 사람의 향기와 온기가 스며 있다.

그 냄새가, 그 감촉이

그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기에

쉽게 놓을 수가 없다.


살아가며 우리는 수많은 물건을 손에 쥐고,

다시 수많은 물건을 떠나보낸다.

한 사람이 평생을 살며 맞이한 물건들을 헤아린다면

그 수는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몇몇은,

시간이 지나도 버려지지 않고

가보처럼 이어지는 물건이 되었으면 한다.

값이 비싸서가 아니라,

그 안에 한 사람의 인생이 녹아 있고

세월의 손때와 애정이 스며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남을 가치가 있다.


내게 그런 물건이 있을까.

누군가 나를 기억하며

손끝으로 쓰다듬을 만한 무엇이 있을까.

떠올려보아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사람이 사라지듯,

그와 함께한 물건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흔적 하나쯤은 남기고 싶은 게

또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물건으로 기억되는 삶,

사람으로 기억되는 삶.

그 둘은 결국 하나의 이야기다.

사람과 물건이 함께 쌓아 올린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살아남는다.


물건 하나를 고르는 일은

결국 나를 고르는 일이다.

그래서 그 단순한 선택조차

때로는 가장 어려운 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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