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기
손상기(1949~1986)는 인간의 내면과 노동, 그리고 가족의 삶을 짙은 색조와 강한 질감으로 표현한 한국의 화가이다.
그의 그림에는 늘 ‘삶의 무게’를 짊어진 사람들의 뒷모습이 등장한다.
그 무게는 단지 고단함이 아니라,
그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내는 인간의 존엄을 상징한다.
손상기의 붓끝에는 현실의 슬픔과 동시에
그 속에 깃든 따스한 생명의 빛이 공존한다.
그는 짧은 생애 동안,
삶의 굴곡 속에서도 사랑과 노동, 가족의 의미를
묵직하게 담아낸 작가였다.
〈나의 어머니, 일상〉은
삶의 고단함을 온몸으로 짊어진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걸어가는 어머니,
그 옆에는 어머니의 옷자락을 붙잡은 어린아이가 있다.
배경은 깊은 청록빛으로 물들어 있다.
그 안에서 어머니와 아이의 형상은 흐릿하면서도 강렬하다.
어머니의 걸음에는 세월의 무게가,
아이의 손끝에는 의지와 사랑이 담겨 있다.
그림 속 인물들은 말없이 걸어가지만,
그 침묵은 오히려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한 세대의 어머니들이 걸어온
‘삶의 길’이자 ‘사랑의 길’이다.
이제는 아주 오래전 일이 되었다.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그 빈자리가 내 삶을 가득 채웠다.
부재의 공허함은 생각보다 깊었다.
그 허무함이 아버지에게로 향하던 즈음,
아버지마저 여섯 달 뒤 같은 길을 따라가셨다.
그렇게 나는 허망하게 고아가 되었고,
휴대전화 속 부모님의 번호만이 잔상처럼 남았다.
그래서일까.
기억의 한 조각이라도 붙잡으려
옛일을 떠올리면 묘하게 따뜻한 기운이 번져온다.
어릴 적,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양쪽으로 잡고
땅을 박차 하늘로 솟구치던 기억.
추석이면 온 가족이 시장을 돌며 새 옷을 고르던 기억.
아버지의 물건값 흥정 솜씨를 옆에서 배우던 어린 나.
아버지가 출근하실 때면
자다 깨어 쏜살같이 달려가
“아버지!” 부르며 내밀던 작은 손 위에
항상 10원짜리 동전 하나가 놓였다.
그 손의 따뜻함이 아직도 느껴진다.
그리고 어머니.
이미 훌쩍 커버린 아들이었지만
여전히 ‘내 새끼’라며 삼시세끼를 챙기시던 분.
평생 박봉의 아버지를 대신해
네 남매를 키우느라 수십 년 하숙을 하셨다.
그 시절을 돌이켜보면
어찌 그 많은 일들을 다 해내셨을까 싶다.
도시락을 싸고, 빨래를 하고,
하숙생들까지 챙기던 어머니는
그야말로 ‘삶을 버티는 힘’이었다.
이제 나도 부모가 되어
떠나는 자식을 바라보니
그때 어머니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된다.
모두 제자리를 찾아 살아가는 지금,
하늘에 계신 어머니도 기쁜 마음으로
우리의 삶을 내려다보고 계시리라 믿는다.
그림 속,
커다란 짐을 이고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문득 내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세상의 무게를 짊어지고도
자식을 먼저 살피던 그 모습 그대로.
그리움이, 그림 속 빛처럼
조용히 가슴속으로 번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