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yscape

이건용

by 청일

1. 작가소개


이건용(李健鏞, 1942–2021)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실험미술가이자

1970년대 한국 아방가르드 미술(AG 그룹)을 이끈 핵심 인물이다.

그는 회화, 퍼포먼스, 드로잉, 설치를 넘나들며

“그린다”는 행위 이전에

몸이 어떻게 세계와 관계 맺는가를 질문한 작가다.


이건용의 작업은

작가의 의지나 감정 표현보다

신체의 구조, 움직임의 한계, 공간과의 접촉에 주목한다.

그에게 몸은 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사유가 발생하는 현장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였다.


2. 작품설명 – 〈바디스케이프 Body Scape〉


〈바디스케이프〉는

작가가 캔버스를 바라보지 않거나,

등을 돌리거나, 팔이 닿는 범위 안에서만

몸의 움직임에 따라 선을 긋는 작업이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그렸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움직였는가이다.


팔이 닿는 거리,

어깨가 회전하는 각도,

몸이 자연스럽게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선은 생기고 멈춘다.

그래서 화면에 남은 흔적은

의도된 형상이 아니라

몸이 지나간 궤적,

즉 ‘몸의 풍경(Body + Scape)’이 된다.


이건용은 이 작업을 통해

회화를 시각 중심의 결과물이 아니라

시간·공간·신체가 동시에 작동한 사건으로 확장시킨다.

캔버스는 더 이상 이미지를 담는 평면이 아니라

몸이 세계와 만났던 현장 기록이 된다.


3. 나의 감상


신체는 정신이 머무는 공간이다.

정신은 말로 드러나기 전에

먼저 몸의 태도로 세상에 나타난다.

불성실한 몸에는

끝까지 머무는 마음이 드물고,

몸은 결국

그 안에 깃든 정신의 상태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바디스케이프에서는

몸은 생각하고,

결정하고,

마침내 스스로를 드러내는 주체다.

팔이 닿는 범위,

어깨가 허락하는 각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지점에서

선은 멈추고

형태는 비로소 생겨난다.


하트로 남은 이 바디스케이프는

몸이 끝까지 닿아본 뒤

자연스럽게 닫히며 만들어진

결과의 형상이다.

그래서 이 하트는 달콤하지 않고,

조금 비뚤고,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

진짜의 밀도가 깃들어 있다.


몸은 정신을 반영한다.

무엇을 사랑하며 살아왔는지,

어디까지 내어주었는지가

형태로 남는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쓰느냐는

각자의 몸이 기억하고 있다.

말로 하지 못한 고백,

끝내 삼켜버린 감정들은

몸의 움직임 속에서

자신만의 언어를 얻는다.


그래서 이 하트는

사랑의 기호라기보다

몸이 증언한 형태다.

의도를 앞세우지 않고,

꾸미지 않은 채

자신의 한계를 온전히 받아들인 흔적.


몸을 통해 정신을 바라볼 때

우리는 구상을 넘어

추상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눈으로 보는 사랑이 아니라

마음으로 감지되는 사랑.

형태보다 과정이 먼저인 사랑.


그렇다면

내 마음에 깃든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어디까지 닿아 있고

어디에서 멈출까.

언젠가 나의 몸 또한

말 대신

하나의 형상으로

그 대답을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


이 하트처럼.


여기까지가 나였고,

여기까지가

내가 사랑할 수 있었던 범위였다는

조용한 고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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