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상

김종영

by 청일


1. 작가 소개


김종영(金鍾瑛, 1915–1982)은 한국 근현대 조각을 대표하는 조각가로, 한국 추상조각의 기초를 정립한 인물이다. 일본 도쿄미술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했으며,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다.


그는 조각을 단순한 형상의 재현이 아닌, 재료와 정신의 관계를 탐구하는 행위로 인식했다. 특히 자연 재료가 지닌 물성과 본질을 존중하며, 인위적 장식을 배제한 절제된 조형 언어를 구축했다. 김종영의 작업은 한국적 미감과 현대 조형 감각을 결합한 것으로 평가되며, 한국 현대조각의 사상적·형식적 토대를 마련한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 작품 설명


〈자각상〉은 김종영이 지속적으로 탐구한 인간 형상과 정신성의 문제를 응축한 작품이다. 나무를 재료로 한 이 조각은 얼굴 형상을 기본으로 하되, 사실적 묘사보다는 형태의 단순화와 구조적 긴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거칠게 남겨진 표면과 절제된 조형은 재료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작가 특유의 ‘깎아내는 조각’ 방식이 두드러진다. 눈, 코, 입은 최소한의 형태로 제시되어 있으나, 전체적인 비례와 리듬을 통해 강한 존재감을 형성한다.


이 작품은 특정 인물을 묘사하기보다는 인간 내면의 의식과 성찰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형상의 단순화와 비정형성은 외형적 개성을 넘어서 인간 보편의 정신적 구조를 탐구하려는 작가의 태도를 반영한다. 〈자각상〉은 김종영 조각의 특징인 절제, 침묵, 그리고 내적 긴장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3. 나의 감상

마음이 닿는 거리, 얼굴이라는 조각


보는 일은 눈의 기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대개 ‘본다’고 말하지만, 실은 사물의 겉면을 스쳐 지날 뿐이다. 대상 앞에 서고 사람을 마주할 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이 닿는 거리다. 마음이 가 닿지 않은 시선은 그 무엇도 남기지 못한 채 이내 휘발되고 만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외형을 해석하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된 시간의 층위를 더듬는 일이다. 말보다 앞선 침묵, 행동 뒤에 숨은 망설임, 그가 걸어온 길 위에 쌓인 무수한 선택들. 그 깊이를 헤아리려는 태도야말로 ‘바라본다’는 행위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김종영의 〈자각상〉 앞에 선다.

거칠게 깎아낸 나무 얼굴 위에는 세월의 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얼굴 가득 번진 나이테는 흘러온 시간을 숨기지 않고, 투박하게 솟은 두 눈은 세상을 오랫동안 응시해 온 자의 시선을 머금고 있다. 도톰하게 다문 입술에서는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는 의지, 말보다 침묵의 무게를 믿어온 태도가 읽힌다. 이 얼굴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형상이기보다, 삶을 버텨내며 안으로부터 스스로 배어 나온 모습에 가깝다.


사람의 얼굴은 조물주의 형상을 닮았다고들 말하지만, 같은 얼굴은 단 하나도 없다. 각자의 삶이 새긴 흔적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얼굴이라는 표상만으로 사람을 단정 짓곤 하지만, 정작 보아야 할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안쪽의 풍경이다. 시선을 그 심연까지 밀어 넣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이해’라는 단어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


자각상을 바라보다 문득 나 자신의 얼굴을 떠올린다.

나는 훗날 어떤 얼굴로 남게 될까. 깊어진 주름은 나이테처럼 나의 시간을 증명할 것이고, 눈빛은 내가 세상을 어떤 온도로 대했는지를 드러낼 것이다. 그 안에 여전히 다정한 온기가 남아 있을지, 아니면 차가운 경계만이 굳어 있을지. 그 모든 결과는 결국 내가 선택해 온 삶의 태도에 달려 있다.


언젠가 더 많은 계절을 건너 백발의 노인이 되었을 때, 삶을 향한 애정과 절제된 시선이 고요히 깃든 얼굴을 갖고 싶다.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쉽게 외면하지 않으며, 오래 바라보는 법을 익힌 흔적이 내 삶의 마지막 ‘자각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나의 얼굴도, 나의 삶도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아름답게 조각되어 가기를 조용히 염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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