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호
1. 작가소개
서도호는 (Do Ho Suh, 1962– ) 현대미술가로 현재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조각과 설치, 드로잉을 중심으로 작업하며 ‘개인과 집단’, ‘공간과 기억’, ‘이동과 정체성’이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해 왔다.
서울대학교와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 예일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국제적인 미술관과 비엔날레를 통해 작품을 발표해 왔다.
그의 작업은 개인의 신체를 출발점으로 하여 사회적 구조와 역사, 집단적 경험으로 확장되는 특징을 지닌다. 특히 반투명한 천, 실, 종이 등 가벼운 재료를 사용해 기억과 경험의 축적, 공간의 흔적을 시각화하는 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2. 작품 설명
이 드로잉은 하나의 인간 형상에서 출발해 위로 확장되는 수많은 선들을 통해 개인의 몸과 그 위에 축적된 기억, 관계, 경험의 층위를 시각화한다.
서도호에게 신체는 고정된 자아가 아니라 사회적·집단적 경험이 통과하는 매개체이며, 반복되고 얽힌 선들은 개인과 세계 사이의 복합적인 연결 구조를 드러낸다.
이 작품은 결과보다 과정, 단일한 정체성보다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정체성에 주목하는 작가의 작업 세계를 드로잉이라는 형식 안에서 보여준다.
3. 나의 감상
과정의 황홀, 생각의 오로라
커트 보니것은 고등학생들에게 “성공적인 삶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예술 활동 한 가지를 꾸준히 하세요. 잘하건 못하건 신경 쓰지 말고, 돈이나 명성을 얻을 생각도 마세요. 대신 무언가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하고,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며 영혼을 성장시켜 보세요.”
그의 문장을 가슴에 품고 서도호의 드로잉 앞에 선다.
화면 속 인물의 머리 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빛깔의 선들이 폭발하듯 뻗어 나간다. 인체에서 뇌가 차지하는 부피는 미미하지만, 그 작은 기관이 소모하는 에너지는 신체 전체의 20%를 상회한다. 생존을 위한 계산부터 존재에 대한 고뇌까지, 우리 삶의 모든 행로가 이 작은 ‘우주’에서 발원한다는 증거일 것이다.
작품 속 얽히고설킨 선들은 마치 한 사람이 통과해 온 시간의 지층 같다. 기쁨의 환희는 선명한 노란색으로, 깊은 고독과 슬픔의 궤적은 짙은 푸른색으로 서로를 붙들고 있다. 이 치열한 중첩은 개인이 맞닥뜨린 사회적 관계와 문화적 층위, 그리고 타인이라는 세계와 부딪히며 생겨난 생채기이자 훈장이다.
누군가의 머리 위에서는 단조로운 무채색의 선들이 매너리즘처럼 반복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실패가 두려워 단 한 가닥의 선조차 밖으로 밀어내지 못한 채, 창백하게 굳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 결과보다 ‘과정의 황홀’을 아는 이의 실타래는 반드시 총천연색으로 요동치기 마련이다. 그것은 수익을 계산하는 이성의 머리가 아니라, 살아 있음을 만끽하는 뜨거운 영혼이 뿜어내는 오로라다.
예술이란 결국 나를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발견하는 통로다. 보니것이 말한 ‘영혼의 성장’이란 내 안의 무수한 색실들을 끄집어내어 세상이라는 캔버스 위에 마음껏 흩뿌려보는 용기일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내 뇌의 과부하를 기꺼이 환영하기로 한다. 이 복잡한 생각의 엉킴이 결국 내 삶을 다채롭게 물들일 재료임을 믿기 때문이다. 부디 나의 실타래가 타인의 시선에 맞춘 정갈한 매듭이 아니라, 스스로를 오래도록 비추는 눈부신 불꽃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