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필사의 마지막

by 청일

시원섭섭하다’는 감정이 이런 것일까.


작년 10월부터 평일이면 어김없이 그림으로 글을 쓰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름하여 ‘향유필사 100일 도전’. 휴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나는 그림 한 점을 오롯이 응시하며 머릿속에 맺히는 잔상들을 글로 길어 올렸다.


그 100일은 계절의 옷이 바뀌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성숙시켰다. 단 하루의 어김도 없이 기록했던 순간들이 이제는 아득한 꿈처럼 느껴진다. 오늘은 어떤 그림이 나를 반길까 설레며 카톡 창을 열어보던 날도 있었고, 고단한 어제를 보낸 뒤 맞이한 아침엔 글쓰기가 무거운 숙제처럼 느껴지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대부분의 시간은 나를 새롭게 밝히는 횃불과 같았다. 작은 불씨 하나가 연료를 만나 활활 타오르듯, 캔버스 위의 선과 색채는 내 안의 잠든 생각을 깨우고 굳어있던 마음을 움직였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층층이 쌓여 100일의 필사가 완성되었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글쓰기를 즐기던 사람도 아니었거니와, 내 삶의 궤적 중심에 '문장'이 놓이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변화의 시작은 2023년 3월, 한 학부모가 건네준 책 한 권이었다. 평소 책 읽기를 좋아하던 내게 그 선물은 무엇보다 반가운 온기였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마주한 학부모의 정성 어린 글귀, 그리고 그 아래 적힌 저자의 이름. ’내일 엄마가 죽는다면‘의 저자 강성화 작가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학원에서 학부모로 다시 마주한 작가는 내게 나직이 권했다.

“책 읽기를 즐기신다면, 글도 한번 써보세요.” 가벼운 미소로 넘겼지만, 그 말은 마음 한구석에 씨앗처럼 남았다. 며칠 뒤, 나는 작가가 등단의 문을 열었던 ‘브런치 스토리’에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고, 다행히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때부터 나의 일상은 하나둘 문장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24년 나는 또 한번의 인연으로 임지영 작가를 강릉 미술전시회에서 만났다. 그림으로 15분 글쓰기를 배웠고 그해 여름부터 나는 임지영작가로부터 아트코치 전과정을 1년 동안 배우며 꾸준한 글쓰기를 해오고있다.


그저 묵묵히 써 내려간 글들은 어느덧 447편의 기록이 되었고, 감사하게도 브런치 스토리에서 113,000회라는 누적 조회수를 기록했다. 11만 번이 넘는 시선이 나의 문장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기적처럼 다가온다. 누군지도 모를 타인의 삶에 나의 글이 작은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숫자가 주는 무게감만큼이나 깊은 책임감과 행복을 느낀다.


누군가는 짧은 시간 안에 화려하게 작가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디더라도 멈추지 않는 길을 택하려 한다. 화려한 수식어보다 중요한 건, 매일 나를 돌아보고 기록하는 그 '성실한 호흡'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이 100일의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매일 아침 귀한 미술 작품과 마음을 울리는 필사 글귀를 정성껏 발췌해 전해주신 임지영 작가덕분이다. 작가님이 건네주신 그림이라는 창(窓)이 없었더라면, 내 안의 풍경들을 이토록 다채롭게 그려내지 못했을 것이다. 100일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나의 아침을 깨워주시고, 글쓰기의 여정에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신 작가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오늘의 이 시원섭섭한 마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문턱 앞에 서 있다는 기분 좋은 신호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첫 책이 세상에 나오기를 꿈꾸며, 나는 오늘도 일상의 여백을 문장으로 채워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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