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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파스빈 Jul 14. 2024

백영수 화백을 처음 만났다

초면이지만 낯설지 않은 만남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의정부 미술도서관이라는 곳이 있다.

도서관이지만 미술작품도 전시하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규모로 보나 시설로 보나 처음 들르는 사람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주말이라 아이와 함께 온 가족도 많았고 혼자 뭔가를 읽고 즐기기 위해 온 젊은이 혹은 나이 지긋한 분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저마다의 즐길거리를 찾아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보였다.

1인 관람객인 나는 젤먼저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6인의 신사실파 아카이브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이었다.

1950년대 당시 화가들의 중요한 생계수단 중 하나가 책의 표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른바 표지화라 불린다.

이 수많은 표지화에는 신사실파 6인의 작품이 다수 그려져 있었다.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게 도와준 표지화의 존재에 고마움이 느껴졌다.

의정부 미술도서관은 의정부에서 마지막 생을 보내신 백영수 화백과 그가 활동했던 한국추상미술화가 단체인 ‘신사실파’를 모티브로 2019년에 개관하였고 그래서 개관 5주년을 맞이하여 신사실파 아카이브전을 기획하였다고 한다. 덕분에 나는 처음 듣는 화가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전시장 입구 젤 앞에는 너무도 익숙한 이중섭 화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실제 그림들이 아니라서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그들의 작품에 담긴 의미를 헤아리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는 전시였다.  

한분 한분 작품을 보면서 발걸음을 이어가는데 유독 내 마음에 와닿은 작품이 있었다.

바로 백영수 화가의 작품이었다. 그림 하나의 감동이라기보다 그분의 화풍이 너무도 내 맘을 끌었다.

작품이 많지 않아 갈증이 느껴졌다.

알아보니 근처에 백영수 미술관이 있단다.

난 주저 없이 차를 몰아 그곳으로 향했다

골목골목 이런 곳에 미술관이 있을까 싶은 의문이 들무렵 하얀색 단아한 미술관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마당엔 자작나무가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마당에 들어서는 순간 백발의 할머니 한분이 안내를 도와주신다.

젤먼저 안내받은 곳은 화가의 작업공간이었다.

생전에 작품활동을 하던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해 놓으셨단다. 설명하시는 내내 애착과 정감이 묻어나있었다.

그분의 작품 몇 점이 벽에 걸려있었는데

역시 포근한 작품이다.

안내를 하는 분은 다름 아닌 백영수화백의 부인이시란다

어쩜 이리 곱게 나이가 드셨을까.

백화백이 참 복도 많은 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로 안내받은 장소는 그림이 걸려있는 화랑이었다.

조심스레 들어서는 순간 그분의 작품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끼치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냥 온화한 그림들에 둘러 싸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렸던거 같다.

캔버스 위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이렇게 마음이 요동을 치다니! 살아오면서 처음 마주한 신묘한 경험이었다.

그중 그림 한 점을 응시해 본다.

하얀 꽃밭을 배경으로 엄마의 등에 업혀있는 아기!

엄마와 아이의 모습만 보아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주 오래전 엄마의 등에 업혀있었을 내가 갑자기 떠올랐다. 기억도 없는 모습이지만  엄마의 따스한 등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내 가슴이 요동친 건 이 그림이 가져다준 엄마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나 보다.

엄마를 마지막으로 보내던 그 순간의 아픔이 등에 업혀있던 그 포근한 따사로움과 함께 겹친다.

이제는 엄마라는 단어를 불러본지도 너무 오랜 일이라 내입 속을 맴돌고만 있지만 그 단어의 의미는 너무도 내 가슴에 사무친다.

오랜만에 엄마의 포근한 등짝의 온기를 느껴보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기억 저편에 너무도 포근히 자리한 내 엄마!

오늘 나는 그림 한 점에서 오랜 기억을 꺼내보았다.

아주 어린아이가 된 나는 꿈에도 그리던 엄마의 등에 업혀 행복한 단잠을 자고 있었다.

잊고 있었던 아주 오래전 흑백사진의 흐릿한 기억처럼 아름답고 포근한 행복한 기억들을 이 그림 한 점이 소환해 주었다.

친절히 설명해 주시는 백화백 부인에게서 나는 그분의 성품과 살아온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말씀마다마다엔 작고하신 백화백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듯했다. 사랑과 애착이 아니었다면 노구의 몸을 이끌고 더운 날 이렇게 환한 얼굴로 자세히 설명해 주시진 않았으리라.

항상 건강하시고 백화백의 작품들을 오래오래 당신의 육성으로 설명해 주시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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