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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Jun 30. 2022

인생이 막막할 때 난 가끔 사주를 사주를 보곤 해

   어릴 적에는 사주를 연례행사처럼 보곤 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사주팔자가 어떨지 궁금했다기보다는 내 연애운이 언제쯤 생길지, 어떤 사람과 만나게 될지 궁금해 흑심을 품고 봤었다. 그래서일까 처음 본 사주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다. 그저 재미로 봤기 때문에 가볍게 휘발되어 날아가 버렸다.


대학교를 다니며 인생의 갈림길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유난히도 많이 흔들렸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경험이 적고, 자의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판단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당연히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때의 나는 그저 내 인생이 불운하기 때문이라고 비관적으로 생각했었다.

  이런저런 고민거리를 친구와 나누며 길을 걷다가 불현듯 사주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사주를 볼 때와 달리, 내 사주팔자가 궁금해졌다. 뭘 하고 살아야 하는지, 내 팔자가 어떤지. 생각해보면 그때 본 사주는 꽤 만족스러웠다. 아마도 그때 사주 풀이가 영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사주를 보았을지는 미지수지만. 인사동에 있는 한 카페였는데, 종이에 빼곡히 적으며 내 성격, 직업, 연애 등 종합적으로 봐주셨었다. ‘아, 사주라는 걸 이래서 보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며, 그 종이를 마치 신이 점지해주신 내 운명처럼 한동안 고이 접어 지갑에 품고 다녔다. 그때는 내 운이 몇 년마다 들어오는지, 취업이 언제쯤 될지만 알아도 지불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원체 내 속내를 다 드러내지 않는 성격인데, 사주풀이를 듣다 보면 내 속내를 투시하시나 싶을 정도로 어쩜 그리 잘 아시는지 신통했고, 부모님에게 고민상담을 안 하는 내가 궁금한 것을 물어볼 때마다 명쾌하게 답을 내려주는 것이 가장 좋았다. 솔루션의 명쾌함으로 따지자면 내게 사주는 거의 오은영 박사님 급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주는 막막할 때마다 찾아뵈어 고민을 아뢰고, 답을 하사해주시는 해결사로 내 삶에 스며들었다.


  취업을 하고 나면 사주를 보는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취업을 하고 나면 내가 느끼는 막막함이 없어질 줄 알았기 때문이었는데, 취업을 하고 나서도 막막함은 여전했다. 회사생활은 생각했던 것만큼 만족스럽지 않았고, 안정적인 환경에서도 나는 불안정함을 느꼈다. 그래서 회사 동기와 종종 사주카페를 전전했으나, 번번이 실패를 하곤 했다. 그렇게 실패를 하면서 한동안 사주는 내게 멀어졌었다.


  최근 몇 년 만에 사주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처음 사주를 봤을 때처럼 온전히 재미로 시작했다. 결혼 적령기에 들어선 내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기혼자의 삶으로 떠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언제 결혼할까?’를 주제로 재미 삼아 보게 되었는데, 재미로 시작한 사주는 다큐로 끝났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는 누구나 그렇듯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매번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현실을 선택했고, 선택의 대가를 치르며 살아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을 은연중에는 하고 있었다. 사주는 이런 내게 현실을 직시하라는 충고 같았다. ‘너도 답을 알고 있잖아. 똑바로 직시해.’라고 말이다. 물론 사주가 ‘이거야. 이거 해!’라고 명쾌하게 해답을 내려주는 것은 아니어서 보고 난 후에도 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아니었지만,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내 인생의 답은 이미 내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과도기의 순간에 사주를 보며, 드는 생각은 사람의 사주팔자는 정해져 있고, 역술인이 해석해주기 나름 사주를 받는 사람이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동안 사주를 보아오며, ‘나’라는 사람이 어떤지 알게 되었고, 때로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속내를 물으며 위로받는 순간도 있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인생의 과도기마다 사주 찾게 된 이유는 어쩌면 인생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것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내 팔자는 내 선택에 달린 것이니까. 바라는 바는 언젠가 또 재미로 보게 될 사주에 그때의 나는 지금의 고민을 해결하고, 새로운 궁금증을 들고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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