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악의 상사

직장 내 빌런

by 모노빈

들어가기에 앞서


이번 글은 내 인생 최악의 상사에 대한 내용으로 다소 부정적인 말들이 잔뜩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사전에 양해를 구하는 바이다.


그분에 대한 뒷담이기도 하면서 내가 잊어버리거나 기억이 미화되지 않도록 기록하는 목적도 있다.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찔린다면 당신이 회사에 꼭 한 명 있기 마련인 빌런일 수도?!






내 인생 최악의 상사 1.


첫 번째 최악의 상사는 대충 어림잡아도 120kg는 훌쩍 넘어 보이는 거대한 풍채를 지닌 분이었다.

애기 티를 못 벗은 풋풋한 19살 면접에서 처음 그분을 보게 되었다. 보기와는 다르게 묵직하고 다정스러워 보였던 목소리는 모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참으로 좋은 사람 이미지로 박히기 딱 좋았다.



#가족같은 분위기


함께 입사한 동기들을 포함, 팀 사람들은 우리 파트를 보고 항상 "파트 분위기가 너무 좋은 것 같다", "가족 같은 분위기 아니냐"며 부러워하곤 했다.


요즘 같은 때야 우스갯 소리로 '채용공고에 가족 같은 분위기 라고 쓰여있으면 걸러라'라고 하곤 하지만, 10년 전에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파트끼리 사이가 좋아 보인다 < 라는 말이 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 파트는 퇴근시간인 18시가 지나고, 업무를 모두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파트장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시길 기다려야 했다. 처음에 멋모르고 퇴근인사를 올렸는데 직장 상사보다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곧바로 핀잔을 듣게 되었다. 다 여섯 명 되는 인원이 우르르 몰려가 그룹장님에게 인사하곤 하면 사람들은 저 파트는 참 사이가 좋네. 매일 다 같이 퇴근하잖아 하며 속 모르는 소리를 했던 것이다. (실제로 내 입사 동기들도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내가 설명하고 나서 그제야 아차! 했다고 한다..)



#지각비


원래의 근무시간은 9 to 6 였으나, 우리 파트의 지각 데드라인은 8시 20분이었다.


1분이라도 지각하게 되면 지각비가 발생하는데, 개인 사비 5만 원 정도를 들여 파트 전체 인원에게 간식을 사서 나눠줘야 했었다. (이건 우리 파트에만 해당됐었던 형벌(?) 이었다) 좀 더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설명하자면, 지각하게 되면 일단 파트장한테 엄청나게 깨지고 나서, 점심시간이 되면 점심도 먹지 못한 채 몇 명의 도움을 받아 간식을 사오고, 간식을 배부하는 방식이다.


그때 당시 고졸사원이었던 내 월급이나, 대학생 인턴사원들의 월급이나 큰 차이 없이 백만 원 초반대 남짓 됐었는데, 한 달에 지각을 두 번만 해도 엄청난(?) 지출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퇴근은 저녁 6시 넘어 하는데(그것도 기다렸다가 다 같이 일어나는데..) 출근은 40분 일찍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지금 생각하면 완전히 비상식적인 것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지각하면 파트장의 심기가 정말 좋지 않아 혼이란 혼은 된통 나야만 했다. (기분이 안 좋은 날 잘 못 걸리면 그날은 하루 종일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실제로 어떤 남자 인턴사원분은 울기까지 하여, 내가 위로해 줬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느 날 파트장이 지각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쥐잡듯이 호통치시던 분이 먹을 거 하나 주시면서 맛있냐고 껄껄 거렸던게 생각난다. 나는 그때도 허허하며 맛있다고 웃어 넘겨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침배달


그 당시 같은 파트였던 동기와 만나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다들 그렇 듯 "야 그때 기억나?"하는 맥락이다.


위에 #가족같은 분위기 내용과 연결되는 것 같기도 한데, 우리 파트는 참 가족적(?)이었다. 하루는 파트장과 O대리가 쑥덕 쑥덕 우리를 보며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나와 내 동기를 두고 본인들의 아침식사를 사올 것이냐 안 사올 것이냐로 내기를 한 것이다.


아침을 사오지 않았다고 우리는 개념없는 아이들이 되었고, 나는 그러한 발상을 하는 그 분들이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기서 등장한 O대리는 참 조용조용하고 여성스러운 분인데, 잘 챙겨주는 것 같다가도 알게 모르게 사람을 갈구는 히스토릭한 인물이었다. 어느 날은 커피를 파트에 나눠주고 있었는데, 본인보다 아래 직급의 사람에게 먼저 전달했다고 엄청나게 삐져서는 우리와 말도 섞지 않았다.


또 어떤 날은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도 모르겠다) 파트장에게 쪼르르 달려가 눈물을 호소하며, 나와 내 동기를 나쁜 애들로 만들었고 장장 며칠 간 말도 섞지 않고 투명인간 취급을 해버렸다. 그 분이 퇴사한 이후에는 당연하게도 연락 한 통 하지 않았다. ^^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도 있구나. 하고 알 수 있던 시기였다.



#성희롱


우리 파트장은 장담컨대 본인이 희롱하는 발언을 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때 당시 지독한 독재로 인해 파트 사람들 다들 무서워하고 하하 호호 하고 동조해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고일대로 고이고 방관하는 문화가 나는 더 싫었던 것 같다.


어느 날은 친구와 당일 버스투어를 갔다 온 얘기가 나오게 되었는데, 그 친구가 남자인 사실을 알자마자 계속 당일치기 맞냐며 이상한(?) 쪽으로 대화를 이끌어 내 얼굴이 시뻘게진 기억이 난다.


비슷한 예로 파트에 다른 여자분은 회사 근처에서 자취를 했었는데, 주말에 남자랑 그 집에서 나오는 걸 목격했다는 둥 안 해도 될 쓸데없는 말을을 지껄이는 그런 분이었다.


그 밖에도 여자 인턴사원한테 따로 뮤지컬을 보러 가자고 해서 그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받았다는 둥, 여자 인턴들 중에 누가 가슴이 제일 크냐 등등의 문제 발언을 했다는 소문이 들려오기도 했다. (물론 내가 직접 들은 건 아니었지만 나는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내가 다이어트를 좀 해야겠다고 말을 했더니, 아주 천천히 아래위로 훑으며, 됐어 안 해도 돼~ 했던 일, 그리고 비가 좀 왔던 날 긴 장우산으로 내 원피스 끝 단을 슬쩍 들췄던 일.. 그 당시에는 정색 한 번 못한 나지만, "당신이 싫다고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잖아? 그것도 잘못이지"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때 당시 그 사람은 나에게 너무 무서운 존재였고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 최악의 상사 2.


두 번째 최악의 상사는 파트장님 위에 계신 그룹장님이었다. 아주 독실한 기독교를 믿는 왜소한 남자분이셨다. 뒤에서 우리끼리 얘기하곤 할 땐 '냐냐'님으로 통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냐냐라는 말이 왜 나왔었지?..) 아무튼 첫 번째 최악의 상사에 비교하자만 아주 덜한 최악의 상사라고 봐주면 된다.



#나의 직장일기


이 분이 최악의 상사2로 꼽힌 데에는 조직 문화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교회에 다니셔서 그런지 (교회에 대한 비하는 아니다) 다양한 활동들을 팀/그룹 차원에서 하곤 했는데, 이게 보통의 직장인들이 하는 일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나의 직장일기'는 퇴근하기 전에 메일로 직장일기를 써서 그룹장님 이하 동료들에게 발송하는 것을 을 뜻한다. 사실 업무보고라기보다는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적인 하루 일과? 일기 내용으로 다들 쓰곤 했던 것 같다. 더 무서운 것은 그룹장님은 매일 모든 직원의 일기를 다 본다고 했다.


그냥 오늘 무얼 먹었는지, 어떤 영화를 봤는지 쓰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대체로 몇 줄씩 글자 수를 채우기 어려워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퇴근 시간 30분 전부터 우리는 다 같이 직장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지금 생각해 보니 서로를 좀 더 알아갈(?) 기회는 됐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최악의 업무 효율을 내는 조직문화였던 것이다.



# 점심


그 당시 우리 그룹은 꽤나 대인원이었는데, 매주 월요일마다 전체 점심 식사를 하곤 했다. 당연히 막내였던 나와 내 동기들은 매주 점심 식사를 위한 음식점 서칭과 투표, 예약 및 의전까지 정신없고도 스트레스가 가득한 하루를 보내곤 했다.


매주 먹는 식사에 회사 근처에 단체로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은 한 정적이라, 사실 메뉴 선정은 돌려 막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번 점심 어느 파트에서 했냐, 메뉴 별로라며 항상 핀잔을 늘어놓곤 했다. 더욱이 짜증이 났었던 건 팀 점심을 먹는 날이면 오전 내내 메뉴 선정, 장소 예약, 참석자 확인까지 시간을 통으로 써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밥을 먹기 위한 월요일이었다.



#퇴근인사


통칭 냐냐님은 퇴근할 때 인사를 하러 가면 꼭 부릉부릉 멘트에 시동을 걸 곤 하셨다.


딱히 중요한 업무 이야기도 아닌데 기본 10분 이상을 붙잡고 퇴근을 못하게(?) 가로막고는 했다. 이 행위는 나 뿐만이 아니라 모든 팀원들에게 해당되었던 일이다.. 도중에 말을 끊고 싶어도 냐냐님은 말이 굉장히 많은 투머치토커라서 중간에 도망치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보내주시곤 했다..


사실 이런 직장상사는 꽤 많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인사를 안하고 갈 수도 없고 자리를 비우셨을 때 재빨리 도망치는 것이 전략이라면 전략이다.






마치며


시작할 때 언질 했듯이 이번 글은 다소 딥하고 다크한 얘기었다. 충분히 공감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고, 겨우 저게 최악의 상사냐라고 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굳이 안 좋은 기억을 글로 남겨 더 상기시키는 것이 좋지만은 않을 수도 있는데, 그 당시 주말만 되면 집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우울증을 앓고 입에 죄송하다는 말이 버릇처럼 붙어버렸던 나였기에 지금에 와서야 아무렇지도 않게 글을 쓰며 그때의 모습을 회상하는 것은 정말이지 엄청난 성장이고 발전이다.


특히 첫 번째 최악의 상사는 내 늦은 사춘기 시절의 어두운 면을 부각하게 해준 고마운(?) 분이라 참 인생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이상 그 분을 저주하며 글을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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