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대딩

반쪽짜리 대학생

by 모노빈

#23살에 늦깎이 직대딩이 되었다


자세히 말하자면 고졸 취업으로 이미 4년 차 직장인이었지만, '특성화고 재직자 전형'이라는 수시전형을 통해 17학번으로 대학교에 후진학한 것이다.


내가 입학한 한양대학교 산업융합학부는 자기소개서와 면접 과정 없이 오직 생활기록부로만 합/불이 결정됐었다. 그 당시 다른 학교는 대부분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다 보았기 때문에 나름 간편하게 지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학교였던 걸로 기억한다. (현재는 많은 학교에서 자기소개서와 면접전형을 생략하고 있다고 한다)


정확한 합격 기준은 알기 어려웠지만 같은 회사에서 한양대학교를 지원해 입학한 사람은 나 한 명뿐이었다. (사실 나도 바로 합격이 아니라 예비 6번으로 추가 합격된 케이스이고, 다른 동기들은 불합격됐었다) 우리 회사에는 고졸사원이 꽤 있던지라 몇 해가 지난 뒤에는 후배 중에서도 한양대에 입학한 사람이 좀 더 생겼었다.


특성화고 재직자 전형으로 입학할 수 있는 학교 중에 한양대가 네임밸류가 큰 편이긴 했지만, 입학을 결정하기 까지 생각보다 심각하게 고민했었던 것 같다. 졸업하면 공학사를 취득할 수 있는 공대 계열의 수업 커리큘럼이라 대학수학이 전공기초 필수이고, 2학년 이후에도 계산을 요구하는 수업들이 꽤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중학생때부터 지독한 수포자였기 때문에 고난이 예상되었지만 두 가지 이유로 입학을 결정했던 것 같다.

1. 네임밸류

2. 재직의무 X


사실 2번이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했는데 다른 학교들은 보통 재직 의무가 필수라서 퇴사를 하더라도 6개월 안에 이직을 해야 하거나 하는 조건이 있었다. 한양대는 재직 의무가 없는 학교였고 솔직히 졸업할 때까지 일과 학업을 쉬지 않고 병행할 수 있을지도 자신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본인은 2학년 1학기에 퇴사했다)





#나의 대학시절 에브리타임 시간표


1학년

한양대 산업융합학부는 1학년 때 공통 기초과정을 거치고 2학년부터 전공을 선택하게된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직장인이지만 아직은 20대 초의 혈기로 1학년 1학기 때는 다들 술자리나 친목 자리를 많이 가지는 편이다. 전공기초와 교양과목이 주이고 이때는 토요일 수업도 점심 이후라 비교적 부담이 덜한 편이다. (2학년부터는 헬이 시작되기 때문에 이 때 노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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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1학년 1학기, (오)1학년 2학기




2학년

앞서 말했듯이 2학년부터는 전공을 선택하게 되는데, 산업융합학부는 아래 두 가지로 전공이 나뉘게 된다.

1. 응용시스템학과 (현 명칭은 '경영공학'으로 변경됨)

2. 정보융합학과 (현 명칭은 '정보공학'으로 변경됨)


응용시스템학과는 경영, 회계, 품질 등의 이론에 좀 더 가까운 전공이라고 할 수 있고

정보융합학과는 프로그래밍, 디자인 등의 실기 쪽에 좀 더 가까운 전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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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2학년 1학기, (오)2학년 2학기


1학년 1학기에 들었던 대학수학 수업을 포함해서 공업경제학과 확률및통계도 다 수학 교과목인데 나는 ALL C를 받았다... 입학하기 전부터 걱정되는 마음으로 성인 수학 과외를 몇 개월가량 받았지만 시험만 보면 머속이 백지가 되는 탓에 갱생은 쉽지 않았다.


무튼 전공이 정해지면서 토요일 수업도 오전 9시부터 시작되는데 3학점짜리 전공과목을 2개 들으면 그냥 주말 하루는 없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보통 출근-퇴근-하교하고 집에 가면 자정인 일상이 반복되기 때문에 멘탈관리와 체력관리가 매우 매우 중요하다.


2학년 1학기 4월쯤에 퇴사했기 때문에 2학기는 분식집에서 평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낮 교양수업도 듣고 저녁에는 전공수업을 듣곤 했다. 아차, 물론 퇴사 후 여름방학에 한 달간 유럽여행도 다녀왔다. (코로나 터지기 전이라 마스크 안 쓰고 유럽을 볼 수 있어서 정말 시기적절했다)




3학년

고졸 취업해서 3년 넘게 직장을 다녔다고 하면 꽤 돈을 모았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고졸 월급은 박봉 중에 박봉이고(물론 잘 버는 애들도 있긴 하다) 본인은 퇴직금도 유럽여행에 올인했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는 필수였다.


3학년 1학기는 베이커리 카페 오픈알바(7~11시)를 했고, 2학기는 국제관에서 대학원 수업 관련 강의실 및 기자재를 관리하는 근로장학생을 했다. 같은 과 친구가 원래 하던 일이었는데 꿀이라고 꽂아줘서 정말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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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3학년 1학기, (오)3학년 2학기


다른 학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 수업 방식에서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것은 수업에서 팀플의 비중이 굉장히 컸다는 것이다. 수업을 듣는 인원이 하도 많다 보니까 교수님들께서 원활한 수업을 하기 위해 대체로 팀을 나누고 돌아가면서 발표를 시키는 발표수업 형태로 진행이 됐다. 따라서 진짜 학교를 다니는 내내 팀플을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팀플의 좋은 점도 있었는데 발표는 꼭 모든 인원이 참여한다는 무언의 룰이 있어 스피치 실력은 꽤나 향상될 수 있었다. 4학년쯤 됐을 때는 "내가 말을 이렇게 잘했나?"라는 자만심이 들기도 했었다. (호호)




4학년1학기.png 3학년 1학기


4학년

1학년 때부터 학점 채우기에 열성을 다해서 그런지 4학년은 거진 학교에 나간 일이 없었다. (코로나의 여파로 비대면 수업의 비중이 커서 그렇기도 한다) 1학기에 가장 친구 2명과 세 명이서 졸업논문을 일찌감치 제출했는데, 확실히 졸업학점을 일찍 다 채운 게 시간 활용하기는 좋았던 것 같다.


4학년 여름학기에는 학교 현장실습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운 좋게 합격할 수 있었다. 나름 규모 있는 회사에 교육 운영지원 업무였는데, 맨 처음 지원한 부서와 다른 쪽으로 배치가 되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굉장히 빡셌다.. 무튼 그 회사에서 연장근무를 권유하셔서 2학기까지 연장해 12월까지 총 6개월을 근무했었다. (분량이 충분히 된다면 인턴 생활 시절의 이야기는 따로 다뤄보고 싶다)





#대학시절 친구란?


"마이쮸 먹을래?"라는 멘트가 새학기 친구 사귈 때 국룰인 건 모두가 다 알 것 이다. 나 또한 신입생 OT 갈 때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학부생 인원이 워낙 많다 보니 10명씩 OT 조가 정해져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 OT 모임이 대학시절 내내 꽤 오래 지속된 친목 무리였던 것 같다. (2~3번 정도 따로 놀러 가곤 했으니 말이다)


그중에서도 J양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OT 조도 같고 계속 옆자리에 앉았던지라 뭔가 단짝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밤이 되자 집으로 떠나버렸고 나는 뻘쭘하게 남아 다른 친구들과의 어색한 대화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때부터였을까? 이 친구의 쎄함이 느껴졌던 것은 ㅠㅠ


결과적으로 1학년 1학기에 J양과 붙어 다녔는데 영어수업 2인 팀플을 하면서 사이는 완전 갈라지게 되었던 것 같다. 여름방학부터 연락이 없더니 자연스럽게 나를 쌩까버린 J양.. 역시 친구는 초반 사귀기가 중요한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학년이 거듭하면서, 또 졸업하고 나서 들려오는 얘기들을 보니 그 친구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모임에서도 다 팽 당했다고 한 거 보니 쉽지 않은 친구였던 것 같다.


2학년 때 자연스럽게 전공이 나뉘게 되면서 OT 조에 있던 다른 친구 2명과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앞서 말한 졸업논문 멤버가 그 둘이다. 우리는 술자리를 즐기기보다는 시험기간에 같이 벼락치기하는 걸 열심히 한 범생이 무리였다. (내 생각) 아무튼 이 두 명의 친구가 졸업 이후에도 꾸준히 연락하는 유일한 내 대학 친구이다.





#직대딩에게 동아리란?


반쪽짜리 대학생이어서 그런지, 내 체력이 저질이라서 그런지 동아리 활동에는 눈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일하고 수업 듣고 과제하는데도 바빠죽겠는데 어찌 동아리까지 한단 말이냐??! 하는 심정으로 졸업할 때까지 활동할 생각이 없던 나였지만, 2학년 때 우연히 학부 내 배드민턴 동아리에 가입했고 가입하자마자 동아리 회장까지 역임하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참고로 나는 배드민턴 칠출 모르는 초보였고, 선배님이 해보라고 하셔서 얼결에 하게 된 경우였다)


생각보다 동아리활동은 만족스러웠다. 몸을 쓰는 운동이다 보니 평일에는 거의 하기 힘들었고 주말마다 시간 되는 사람끼리 모여 배드민턴 장소를 예약해 주 1회 정도 모이곤 했다. 선배와 후배 고루 만날 수 있던 기회라 전공에 대한 얘기도 하고 친목도 다지며 꽤나 잘 운영해왔다.


하지만 초반과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참석하는 인원이 현저히 적어졌고, 본인마저도 3학년이 되고 나서 부턴 참석률이 저조하여 동아리 유지가 흐지부 해졌던 것 같다. 동아리 회장이라는 명목하에 억지로 머릿수 채우러 나가곤 했는데, 연애를 시작하고 나니 가뜩이나 하루 있는 주말을 동아리에 쓰기는 쉽지 않아졌다.


결국 시간이 좀 더 흘러 한 학년 아래 후배에게 동아리장을 물려주었고 비로소 나는 자유가 되었다. (허허)


만약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동아리에 대해 한 마디 해준다면, 1학년 비교적 자유로운 시기에 빨리 동아리를 들어 선후배, 동기 간에 친목을 다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주고 싶다. ^^






마치며


이번 글은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후배님들에 대한 정보성 글일 수도 있고, 점점 퇴화되는 나의 기억에 대한 기록성 글일 수도 있다.


보기에는 너무 단편적일 수도 있고 너무 쓸데없이 상세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데, 다른 사람을 떠나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내가 대학생 시절에 대한 기억이 몇 개 남아있지 않을 때 이 글을 본다면 스스로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은 확실하다. (혹시라도 궁금한 점이 있다면 댓글로 언제든지 문의 바란다)


고졸 직장인에서 직대딩으로, 다시 또 직장인으로 몇 번의 터닝포인트를 지나 30대가 되어보니 참 치열했던 20대였던 것 같다. 누군가 과거로 돌아가면 어떤 선택을 할 것 같냐고 물어보면 나는 아마 에피소드는 다를지언정 경유지와 목적지는 같았을 거라고 답할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직대딩을 응원하며 이 번 에피소드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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