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소녀들
누군가 내게 20년이 넘는 교직생활 중 '가장 실패한 교육'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가 만난 '소녀들'을 떠올린다. 그 소녀들 및 그 부모님과 있었던 일은 내 인생에 가장 큰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했고 요즈음 떠들썩한 이슈와도 무관하지 않다.
나는 6학년 부장이었고 소녀들은 6학년 여러 반에 소속된 친한 무리였다. 소녀들은 꽤 어릴 때부터 서로 친한 사이였는데 다른 아이들에게는 두려움을 느끼게 한 대상이었다. 누가 봐도 강해 보이는 말투와 눈빛을 지녔고 서로 모여 등하교를 하면서 화장실에서 옷을 바꿔 입기도 하고 화장도 하는 등 초등학생이 하기에는 조숙한 행동이 많았기에 소녀들이 모여만 있어도 다른 아이들은 슬슬 피하곤 했다. 그래서 그녀들과 관련한 각종 사소한 신고는 주로 친분이 없고 주변을 의식하지 않으며 과감할 정도로 솔직한 몇몇 남학생들로부터만 이루어졌다.
(이게 무슨 문제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중고등학생에게는 평범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초등학생이 하는 것만으로도 친구들이 불편해하거나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터울 많은 형제자매와 사는 동생이 형이나 누나가 주로 하는 말을 교실에서 할 경우 다른 친구들이 불편함과 이질감에 화들짝 놀라 교사에게 지도를 바라는 요청의 말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3월부터 사건이 끊이질 않았는데, 누군가 그 소녀들 중 한 명과 작은 언쟁이라도 벌어진다면 소녀들은 무리 지어 함께 당사자를 찾아갔다. 소녀들 입장에서는 확인하고 물어보는 것이었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관련 없는 친구들까지 와서 눈을 부릅뜨고 갈 길을 못 가게 막으며 위협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실제 폭력이나 욕설이 동반되지 않으며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학교폭력신고처리를 원하지 않으면 그저 불러서 말로써 지도하는 게 교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교사가 객관적으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양측의 입장에서 어떻게 느끼는지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고 이런 갈등이 생기지 않게 앞으로 주의할 점 몇 가지를 알려주는 것만으로 지도가 되면 참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나는 그 소녀들 중 한 명의 담임일 뿐이어서 모든 소녀를 지도하는데 한계가 있었으며 이런 일이 몇 번 쌓일수록 그녀들의 입지는 굳어지고 아이들의 시선은 소녀들로부터 거두어지게 되었다.
사고는 늘 예기치 못한 곳에서 터지곤 한다. 다른 아이들은 소녀들과 맞닥뜨리지 않는 방법으로 문제를 피했는데 정작 소녀들 안에서 내분이 생겨 한 명이 무리에서 나오게 되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해 주면 좋으련만 소녀들은 그렇지 못했다. 특히 이 사실을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워한 두 명의 소녀는 교묘한 방법으로 교사의 눈을 피해 그 소녀(B)를 괴롭혔다. 쉬는 시간에 친구들을 대동해 B의 교실 뒷문 근처에서 즐겁게 놀면서 B가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것, 그 행동을 반복해서 B가 화장실도 마음 편히 못 가도록 하는 것, B의 맞은편에서 급식을 먹으면서 들으라는 듯 조롱 섞인 말을 던지는 것,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척하며 손가락욕을 하며 B를 쳐다보는 것 등등.. 다른 학생들이 알리지 않으면 모르고 넘어갈 그 문제들을 알면서도 넘어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지도하기도 했고 담임선생님들께 지도를 요청하기도 했고 나의 요청 전에 발견한 각 담임선생님들이 지도하기도 했고 가정에 알리기도 했다.
가장 피해를 입은 소녀(B)는 그래도 한 때 친했던 사이였던지라 다른 소녀들의 섭섭한 감정을 이해하기도 했고 때로는 과한 행동에 불편해하기도 했다. 크고 작은 문제는 반복되었고 우리의 지도도 반복되었는데... 소녀들의 행동이 학교폭력 사안으로 발전해 가던 시점, 그러니까 우리의 지도도 다소 엄해져 가던 시점, 그때 소녀들의 부모님이 먼저 문제 제기를 했다.
부모님들의 요구사항은 여러 가지였는데 이 일로 학교폭력사안처리를 하지 않는 것, 교사들의 지도과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가정통신문을 전교생에게 배부하는 것, 6학년 교사들 모두 본인들 및 자녀들 앞에서 대면 사과하는 것, 앞으로 자신들의 자녀를 지도하지 말 것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학교에 찾아와 언성을 높이며 교사의 지도과정을 모욕했고, 협박과 조롱을 일삼는 와중에도 교사의 실수를 잡아내기 위해 취조에 가까운 대화과정을 녹음했으며, 그 과정에서 교사의 지도를 폄하하고 자신들의 자녀를 두둔하며 피해학생을 깎아내리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 과정들을 내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딱 하나, 그녀들을 지도한 일련의 과정에 대한 일말의 후회나 의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요구한 사항은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그들의 자녀들에 대한 교사들의 지도 중지'는 받아들여졌는데 그래서 그 일은 내게 '가장 실패한 교육'으로 남게 되었다.
교실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성실한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보다 행동개선이 필요한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교통안전수칙을 잘 지키는 운전자에게 더 수준 높은 교통안전수칙을 알리는 것보다 교통안전수칙을 지키지 않는 운전자를 단속하고 계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듯 말이다.
교실에서 지도해야 할 학생을 지도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선량한 학생들이 피해를 보게 되는데 그 피해정도가 매우 크지만 학부모님들은 교실에 앉아 있는 당사자가 아니기에 그 정도를 예상하기 어렵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교권에 대해 가장 큰 목소리를 내야 할 사람은 교사도 학생도 아니라 학교라는 시스템을 지원해야 할 교장, 교감을 대표한 관리자와 이를 관리감독하는 교육청 관계자, 그리고 교권이 무너졌을 때 직접적인 피해를 경험하게 될 절대다수의 학부모님들이어야 한다 생각한다.
교사가 지도할 권리를 빼앗긴다면 절대다수의 선량한 학생들은....
1. 학습권을 빼앗기고 고르게 분배되어야 할 교사의 관심을 빼앗기고 문제 상황의 지속된 과정 속에서 바르게 배우고 성장해 나갈 수많은 시간들을 빼앗긴다.
2. 많은 것을 빼앗겼지만 피해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라지니 그것을 돌려받을 생각 조차 하지 못한다.
3. 잘못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면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건강한 해결과정에 대해 배울 수 없고 그 대신 참고 용인하는 비겁함이 학습된다.
4. 선생님도 결국 어쩔 수 없구나 라는 생각에서 교사, 어른, 나아가 사회에 대한 무력함을 배운다.
5. 문제학생은 소수이지만 피해를 받은 학생은 다수인데 피해를 받은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격의 칼날은 지도를 하는 교사에게 향하게 되고 이는 교사의 지도력을 더 약화시킨다.
결국 교권이 바로 서야 교사도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아야 지도할 수 있고, 지도의 힘을 믿을 때 학생이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