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의 폐쇄성과 담임의 무게에 대하여
방학을 하루 앞둔 어제, 어느 지역 선생님의 부고를 들었다.
일면식도 없는 그녀이지만 같은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로 많은 교사들이 그녀의 부고에 마음 아팠으리라.
타인의 죽음을 계기로 글을 쓰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나도 그녀처럼 신규였던 때가 있었고 나의 힘듦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조차 어려웠던 때가 있었기에 마음이 계속 무거워졌다.
예전 어느 청년의 죽음에 누군가가 '너는 나다'라는 애도의 글을 남긴 걸 본 적이 있는데 이번 일로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초등교사들이 많은 것 같다. 나 또한 어떤 면에서는 그녀이고 그녀였으며 그녀일 것이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 처음 발령받아 5학년 담임이 되었던 나는 3월 2일에 마흔두 명의 담임이 되었다. 교육대학교에서 4년간 수많은 수업을 들었고, 세 번의 교생실습을 통해 실무를 배웠으며, 임용고시에 합격하기 위해 여러 교육학 서적을 달달 외워 합격했고, 합격 후 발령받기 직전까지는 한 달 남짓 신규교사연수를 들었으나 이런 일련의 과정과 실제 담임으로서의 연결고리를 찾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3월 2일은 정말 정신이 없었는데 학교전체에서 진행하는 개학식에 참여한 뒤 간단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내 소개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뒤 다같이 교실 정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첫날을 무사히 마쳤다고 안도한 순간 한 아이가 "선생님! 알림장 안 써요?"라고 물었고 그와 동시에 여든두 개의 눈동자가 동의를 표하며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기에 순간 당황한 나는 급히 옆반에 달려갔다. 정확히 기억하는데 그때 나는 달려간 게 맞다.
옆반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설명하고 계셨는데 나는 예의를 차릴 정신이 아니었기에 주저 없이 문을 두드렸고 놀란 표정으로 문을 연 그 선생님께 "선생님! 애들이 알림장을 안 쓰냐고 묻는데 뭘 적어줘야 하나요?"라고 천진난만한 얼굴로 물었다. 그 선생님은 웃으며 실내화, 몇 개의 교과서와 공책, 필통 속 갖춰야 할 필기구 몇 종류를 알려주셨고 덕분에 나는 무사히 첫날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그 선생님께 달려가지 않았거나 그 선생님이 나의 질문에 귀찮은 내색을 조금이라도 비추셨다면 나는 그 후로 누군가에게도 나의 사소한 고민을 나누지 못했으리라. 그 선생님은 일 년 후 내가 '명숙이언냐'라 격 없이 부르는 선배가 되었는데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사이처럼 몇 시간 수다를 떨 수 있는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시작은 알림장이었지만 그 선배입장에서는 내가 기억도 못할 만큼의 엄청난 상담들로 나와 함께 한 일 년이 가득 채워졌으리라..) 그 선배를 겪으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언니'나 '누나' 그것도 아니면 '선배'로 불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내가 만난 후배선생님 중 그때의 나처럼 대책 없이 선배에게 매달리며 묻는 이는 20년이 지나도록 아직 만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학교가 많이 변화하기도 했다. 담임 업무는 경력이 쌓일수록 피하고 싶은 기피 업무가 되어가고 있다. 학부모님들의 요구사항은 다양해졌고 아이들의 개성이나 특성 또한 그 스펙트럼이 아주 넓어졌으며 교실에는 언제나 가르치기 힘든 아이가 존재한다. 교사들이 모여서 나누는 대화의 주제가 예전에는 '어떤 과목 어떤 차시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가 많았다면 요즘에는 각 반의 금쪽이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이런 변화는 내 반의 문제도 힘든데 다른 반의 문제까지 듣게 되어 모두의 머리가 아파지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모든 학교 현장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긍정적인 나눔과 발전적인 소통'보다는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해결법은 보이지 않는 아득한 교육현장에 대한 속풀이나 한탄'이 많아졌다. 사회에서는 한 명의 훌륭한 인재가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지만 교실에서는 훌륭한 인재가 열 명이 넘어도 한 명의 금쪽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명의 금쪽이가 주는 피해는 모든 아이들이 일 년 내내 감당해야 하며 이것을 담임교사 혼자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모두 잘 알고 있다.
외부로의 소통과 나눔이 원활하게 일어나기 어려운 배경에는 교실의 폐쇄적인 특성도 한몫하는 것 같다. 수십 명의 아이들과 교사가 함께 하는 곳이지만 옆반 담임도 그 반 사정을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 나 또한 한 학기가 지났으나 옆반 학생 중 이름과 얼굴을 함께 기억하는 경우가 다섯 명 안팎이고 내가 먼저 묻거나 옆반 담임선생님이 먼저 얘기하기 전에는 오늘 그 반에 일어난 사건을 알기 어렵다. 교실을 지원하고 학생, 교사, 학부모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리하여 가해자는 묘연하되 피해자는 고통받는 이 현실이 조금이나마 나아졌으면 좋겠다.
누구나 알지만 그 누구도 다 알 수는 없는 곳이 교실이다. 이런 곳에서 담임의 무게는 날로 무거워져만 가고 교육현장에서 나의 무게를 다른 누군가와 나누는 것도 쉽지 않다. 사건의 원인은 알 수 없고 짐작하는 것만으로도 고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더 이상 학교라는 곳이 학생, 교사, 학부모 모두가 상처받는 곳이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일면식도 없는 이의 부고 앞에 지난날의 기억이 떠오름과 동시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수많은 동료들이 속앓이를 하는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5편으로 마치려던 글을 이어 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