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지만 그 누구도 다 알 수는 없는 교실이야기1

교실은 이런 곳입니다. (교사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경험해 본 곳.. 초, 중, 고를 거쳐 12년씩 거쳐가는 곳이 바로 교실이다.

누구든 거쳐갔기에 누구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학부모들은 교실이라는 곳이 얼마나 정신없는 곳인지 알기 어렵다.

책상, 의자, 칠판, 게시판 등 하드웨어를 안다고 그 속의 역동적인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교실은 똑같이 갖춰진 하드웨어 안에 어떤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아이들이 모이느냐에 따라 천태만상.. 말 그대로 천차만별의 모습을 보여준다. 순간순간 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느끼며 일 년간 치열하게 고민하는 '위대한 조정자'가 바로 담임인데 3월은 그 시작시기라 매우 힘든 달이다.

언젠가 TV에서 아주 큰 그물을 어깨에 메고 강바닥을 쓸며 다슬기를 채취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모습에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보였다. 소파에 앉아 편한 자세로 보고 있었는데 순간 어깨와 무릎의 통증이 느껴지며 '아~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그물을 뒤로 어깨 뒤로 메고 앞을 향해 가기에 물질이 다 끝날 때까지 내 등 뒤의 그물 속에 모인 다슬기의 양을 짐작하기 어렵듯이 담임 또한 내가 지금 피땀 흘려하고 있는 '오늘의 교육'이 거둘 성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때로는 일주일이 걸리고 때로는 한 달이 걸리고 또 때로는 일 년이 걸려도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 같은 모습에 비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아주 작은 칭찬에도 입술을 씰룩거리며 노력하는 아이의 모습에 온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는 게 교사의 삶이다.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교실의 모습은 어릴 적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거나 자녀의 입을 통해서 전달된 단편적인 모습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최근에 학부모로부터 들었던 질문 중 아직도 마음에 남은 숙제가 있는데 바로 "그런 일이 교실에서 일어나는 게 가능합니까?"와 "우리 아이가 이렇게 말하던데 사실입니까?"다.

교실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을 교사는 얼마나 완벽히 통제할 수 있으며 동시에 교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교사는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내가 오늘 선생님을 불렀는데 선생님이 대답안했어"는 때때로 이런 상황일 수 있다.


교사가 수업 준비를 마치고 아이들을 온화하게 바라본다. "얘들아~수업시작시간이예요. 수학 교과서 49쪽 펴세요~" (요즘 초등학교에서는 매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에 종을 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 순간 A가 말한다 "몇 쪽이요?" 교사는 친절하게 "49쪽이요~" 교사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B가 말한다. "선생님 49쪽 펴는 거 맞지요?" 교사는 참을까 말까 살짝 고민하다 어제가 주말이라 쉬고 온 여파겠거니 여기며 또다시 웃으며 말한다. "네~ 선생님이 방금 49쪽이라고 얘기했어요" 그 말이 끝나기 전에 C가 갑자기 앞으로 나온다.

"선생님 제가 주말에 축구하다 넘어져서 무릎에 반창고와 거즈를 붙였는데 반창고가 자꾸 떨어질락 말락 해요"

'왜 쉬는 시간에 말하지 않고 수업 시작하려는데 말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기로 한다. "정 불편하면 지금 보건실에 가서 새 반창고로 다시 붙이고 참을 수 있으면 다음 쉬는 시간에 가자"

이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대화에 참여한 A, B, C 이외의 학생들의 모습은 어떠할까?

어떤 아이는 A가 몇 쪽이냐고 묻는 순간 본능적으로 수업시작이 어느 정도 늦춰질 것을 눈치채고 옆 친구와 눈을 찡긋거리며 손가락 춤을 주고받는다. 어떤 아이는 C가 일어서는 순간부터 교사가 다시 본인을 쳐다볼 때까지 필통 속 작은 문구류를 만지작 거리거나 그림을 그린다. 또 다른 아이는 선생님의 시선이 전체로부터 C로 옮겨진 그 순간 자석에 이끌리듯 일어나서 굳이 다른 분단에 앉은 친구에게로 가서 이야기를 나눈다. 이 상황에서 무언가 불편함을 느낀 D가 교사를 부르면 그 목소리가 어지간히 크지 않고서는 교사의 귀에 그 목소리가 전달될 수가 없다. 다시 불러주면 좋으련만 그건 D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라 이미 한 번의 기회를 놓친 교사는 결정권이 없다.


교사는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이 순간이 때로는 훗날 <선생님을 불렀는데 대답 안 한 상황>이 되어 원망 섞인 물음과 함께 되돌아오기도 한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늘 아이들에게는 "얘들아 혼자 참지 말고 선생님에게 이야기해요~"라고 말하고 부모님께는 "아이 입장에서는 일 의 관계로 여겨지지만 교사입장에서는 일 대 이십오라 혹여 제가 놓칠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교사입장에서 교실은 내가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아이들과 함께 자라야 하는 곳이다.



덧.. 사실 "선생님이 대답안했어"보다 무서운 경우가 있다. 교사가 듣지 못한 상황은 때로 "선생님이 무시했어", "선생님이 못들은 척 했어"라는 <부정적 의도가 담긴 행동>으로 변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담임에 대한 어떤 부정적 의도를 갖고 그리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억울하고 불편한 감정이 미숙한 표현법에 영향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속상한 마음에 "선생님! 제 연필이 없어졌어요"가 아니라 "선생님! 누가 제 연필 훔쳐갔어요!"라고 표현되는 것처럼.. ^^ 그러므로 이런 말을 들어도 상처받지 않는다. 아이들이 커가는 만큼 교사 또한 성장하기에..


교실 앞 게시판. 아이들 보라고 붙여뒀지만 실상은 내가 더 자주 보며 내 마음을 다진다. 특히 마지막 구절.. '잘 커가고 있는거 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