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앞에서 만큼은 제발 좀 참아주세요.

상처를 깊이 새기는 것은 어쩌면 부모일지도 모릅니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오늘의 감정을 글로 비워내야만 할 것 같아 오랜만에 글쓰기 버튼을 누르는 민망함을 참아내고 자판을 두드리기로 했다.


어제 아이들이 하교한 지 20분도 되지 않았을 즈음, 한 학부모님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어느 선생님의 행동에 대해 아이에게 전해 들으시고는 곧장 내게 전화한 것이었다. 나를 향한 비난이나 나를 향한 공격은 없었으나 어머니는 꽤나 많이 화가 나 있었고 '어쩌면 내게도 똑같이 화가 나신 걸까?'싶을 만큼 감정이 격앙되어 있었다. 나 또한 자식을 키우는 입장인지라 엄마로서 느끼는 감정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동료에 대한 비난을 여과 없이 듣는 건 처음이라 몹시 당황스러웠다.


무슨 일이든 단편적인 사실 하나만으로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때로는 단편적인 조각 하나가 단단히 잘못된 경우도 있다. 아무리 선한 의도였다 하더라도 이해받을 수 없는 행동이 있기 마련이므로..

내가 아이에게서 직접 들은 것이 아니기에 어머니께 몇 가지 질문을 했는데 어머니는 바로 옆에 있는 아이에게 나의 질문을 옮겨 물은 뒤 대답을 전달해 주었다. 아이가 바로 옆에서 엄마와 담임선생님의 전화통화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아뿔싸!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엄마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아이를 생각하니 평소 아이의 성격상 몹시도 불안해할 것 같았다. 해당 선생님을 변호할 생각은 아니었으나 학부모의 감정이 가라앉기를 바라면서 나는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을지 오히려 더 화를 돋웠을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내일 아이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고 좀 더 알아본 후 조치하겠다고 말씀드렸고 내일 다시 통화하기로 약속했다.


어머니도 불면의 밤을 보냈겠지만 나 역시 쉬운 밤은 아니었다. 아이들끼리의 문제는 사실관계 확인, 양측의 입장 확인, 희망사항 조율, 합의사항 도출, 양측 사과 및 합의사항 수행, 지속적인 관찰과 피드백으로 원만히 해결할 수 있지만 어른들의 감정이 개입된 문제상황은 항상 어렵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의 상처가 깊어지기도 한다. 아이의 성격,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주변의 상황, 그 일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시선과 해당선생님의 시선 사이의 엄청난 격차, 이 일이 다른 아이들에게 노출되었을 때 그로 인한 문제 등.. 수많은 고민거리를 구슬 꿰듯 이어가다 보니 아침이 되었다.


등교한 아이는 불안하고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 눈치를 계속 살피는 아이의 불안한 눈동자가 느껴졌고 최대한 다른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아이를 불러내어 어제 일을 물어보았다. 담담하게 말하는 듯했으나 아이의 눈시울이 약간 붉어졌다. 이야기해 줘서 고맙단 인사를 건넨 뒤 관련사안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본 후 교감선생님께 보고하기로 마음먹고 교무실로 내려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교감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이미 무슨 일인지 다 아는 눈치였다. 알고 보니 어젯밤 퇴근한 아이의 아버지가 이야기를 전해 듣고 화가 나 아침에 교무실로 전화해 교감선생님과 전화통화를 한 것이었다. 내가 수업하는 틈틈이 확인하고 조사하고 정리하는 동안 교감선생님은 해당선생님께 사실관계 확인 후 학부모의 요구사항에 대해 전달했고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단단히 당부까지 마무리하셨다는 거다. 정리가 되었다니 다행이면서도 마음은 씁쓸했다. 나와의 약속을 지켜주셨으면 조금 더 좋았을 텐데.. 어쩌면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의 마음을 잘 보듬어주는 방법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버지의 민원전화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될 명분이 되는 것은 아니었기에 약속대로 오후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는 이야기의 끝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이가 그저 학교생활을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어머니의 오해를 받지 않을 자신이 없어 나는 하나만 말씀드렸다. 다음에 혹시 나와 관련하여, 또는 아이의 친구와 관련하여, 또는 다른 선생님과 관련하여 또다시 의논할 상황이 생긴다면 아이가 통화내용을 듣지 않게 따로 연락 주셨으면 좋겠다고...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을 때, 이미 문제는 일어난 뒤였다. 돌이킬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아이가 엄마에게 보인 상처의 크기가 얼마만큼의 크기였는지 몰라도 그건 명백히 그 상처를 낸 사람의 잘못이다. 하지만 일단락된 지금 아이의 상처는 커졌을까? 줄었을까? 나는 아이의 상처가 오히려 커진 듯한 느낌인데 커진 상처의 책임에 부모님의 몫도 크다고 생각한다.

상처를 발견한 부모나 교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아이의 상처에 대한 놀라움과 당혹감, 상처를 낸 사람에 대한 공격과 분노는 오직 어른들끼리의 몫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내게 더한 분노를 쏟아냈어도 나는 놀란 엄마의 마음이겠거니 이해했을 거다. 하지만 아이를 옆에 앉혀놓고 제3자인 담임교사에게 감정을 쏟아내는 엄마를 보고 나는 아이가 몹시 안쓰러웠다. 엄마는 아이가 해당교사에게 당한 행동이 학대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으나 나는 아이를 옆에 두고 전화한 행동 또한 아이에게 해서는 안될 행동이라 생각한다.


부모나 교사가 곧장 해야 할 일은 이미 생긴 상처의 아픔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인가, 상처의 치료과정에서 어른들이 무엇을 도울 수 있을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상처로 놀란 아이에게 "이건 정말 큰 상처야!"라거나 "이건 진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어" 따위의 반응은 아이에게 더 큰 상처를 새기기도 한다는 것을 부모님이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오픈된 공간에 구체적으로 적을 수는 없지만 이번 일은 어떤 것에 대한 너무나 극명한 시각 차이로 인해 발생했다. 해당선생님의 시각에서 그것은 전혀 더러운 것이 아니었고, 아이 입장에서는 찝찝했지만 선생님이 시키니 수행했지만 속상함이 남았고, 부모님의 시각에서 그것은 정말 더러운 것이어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해당선생님의 시각이 요즘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많이 동떨어져 있기에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정말 더러운 것이라는 것을 여러 번 재확인시킨 것은 어쩌면 부모님이란 생각에 몹시 무거운 마음이 든다.

때로는 내게 곧장 날아오는 화살보다 누군가를 거쳐서 내게 꽂히는 화살이 더 아플 수도 있다. 엄마가 아이에게 "그거 정말 더러운 건데.. 그러면 안됐는데..선생님이 잘못한거야"라는 말은 위로의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아이가 듣는 상황에서 담임교사인 내게 "선생님 그건 정말 더러운 거잖아요"라는 말을 하면 아이에게는 본인의 상처가 보이는 것보다 더 큰 것, 낫기 어려운 것, 절대 생기지 말았어야 했던 것으로 느끼게 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제발..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아이 앞에서만큼은 좀 참아주셨으면 좋겠다.



덧.. 언젠가 동료들에게 농담처럼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브런치에 '참아주세요'라는 주제로 학부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해보고 싶다고... 좀 참아주셔야 하는데 참지 못하시는 게 너무 많다고...

일상의 사소한 것을 풍자할 의도였는데 오늘의 '참아주세요'는 풍자거리는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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