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교실은 '유치원, 초등학교, 중ㆍ고등학교에서 학습 활동이 이루어지는 방'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학습 활동이 이루어지는 방이라고 해서 모두가 학습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출처-국립국어원>
교실에서 누가 배우고 누가 배우지 못하는가?
교실을 지배하는 첫 번째 기본 원리는 '교실에서의 배움은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교사에 대한 신뢰를 가진 학생은 배우고, 학생의 성장에 대한 신뢰를 가진 교사는 배움을 일으킨다. 하지만 교사와 학생 한쪽이라도 신뢰가 무너진 경우, 교사는 가르치되 가르친 것이 아니고 학생은 배우려 하되 배울 수 없다.
교육현장에서 신뢰가 무너진 사례는 주변에서 넘쳐난다. 교권은 실추되고 교실 안에서 일어난 일은 때때로 사회에서의 그것보다 더 날 것처럼 여겨진다. 거의 모든 교실붕괴의 밑바탕에는 불신이 깔려있다.
'자녀의 배움을 막고자 하는 부모는 없고, 제자의 배움을 막고자 하는 교사도 없는데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가?'에 대한 나의 대답은 '신뢰'는 가장 중요한 가치이지만 가장 얻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라서다.
신뢰는 마치 신비의 새 봉황처럼 교사입장에서는 그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오히려 문제가 생기면 그때서야 '아~ 내가 얻은 줄 알았으나 얻지 못한 것이었구나'라고 느끼게 되는 신기루 같은 것!
꽃 중의 왕은 모란이고 백수의 왕은 호랑인데 왜 새 중의 새는 상상 속의 동물인 봉황인지 모르겠지만 실체를 모르기에 더 귀한 대접을 받아 청와대 정문에도 자리 잡은 게 아닐까? 같은 맥락은 아니지만 교실에서의 신뢰도 중요하지만 확인하기는 어렵기에 교육주체들이 그 중요성을 쉽게 놓치는 것 같다.
교육시장이 이렇게 몸집이 커진 것도 어쩌면 교육에 대한 신뢰가 막연하기 때문일 수 있다. 신뢰는 보이지 않지만 불안은 마음속에 쉽게 자리를 차지하고 이것이 공포를 먹고 자라 커진 것이 어쩌면 지금의 교육시장일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교사가 여러 학생들을 변화시키듯 한 명의 아이도 교사를 바꿀 수 있다. 시골에서 원거리 통학을 하며 교육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이가 주변에 없었던 탓에 학교 외 어디에도 기댈 곳 없었던 17살의 내가 학교수업만 죽자고 열심히 들었을 때 몇몇의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태도는 그것을 경험케 했다. 그 당시 나의 행동은 단지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공부 안 하면 공장'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나 선생님들께서 보여주신 것은 '너를 위해 이 수업을 준비했어'였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12년간 교실 안에서 사회를 경험한다. 사회에서 한 사람으로서 기능할 수 있게 하는 거의 모든 역량을 교실에서 직간접적으로 배운다. 좋은 것도 배우고 나쁜 것도 배운다. 바람직한 방법으로만 배우면 더 좋겠지만 옳지 않은 방법을 배우기도 한다.
교사도 수십 년간 교실 안에서 매년 다른 사회를 경험한다.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도 있고 일 년 내내 좌절에 부딪히기도 한다. 방향을 잃을 수도 있고 주변의 조언으로 다시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불신을 대놓고 보여주는 학부모도 있지만 신뢰를 가졌으나 그 표현이 교사에게 닿지 않는 학부모도 많다. 불신을 경험하면 나의 모든 노력이 부정당한 기분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보여준 불신보다 다수가 아직 보여주지 않은 신뢰가 더 크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학부모님 면전에서 차마 하지 못했던 말>
교실을 떠나 교실보다 더 좋은 교육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교사를 배려해 주시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다만, 적어도 말씀하시기 전에 그것이 아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질지는 고려해 주십시오.
당장은 아이 편에 서서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준 좋은 부모가 된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담임선생님에 대해 아이 앞에서 보인 모습은 아이 마음속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이 되어 파문이 점점 커질 수도 있습니다.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은 일 년을 거쳐가는 교사가 아니라 부모님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특정 교사에 대해 보인 불신은 아이가 자라면서 만나는 모든 교사에 대한 불신으로 커질 수 있습니다.
결국 아이는 학교에서 사회를 배웁니다. 학교교육의 누적된 결과가 바로 사회로 가는 발판이 됩니다.
교실에 대한 오해, 교사의 가르침에 대한 의문은 선생님과 직접 소통해 주세요.
오해를 풀고 학교교육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면서 내 자녀와 교사의 신뢰를 더 끈끈하게 하는 소통만이 자녀를 성장하게 합니다.
아이가 본인이 속한 사회에서 건강하게 소통하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적어도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을 아이 앞에서는 표현하지 말아 주세요.
<동료에게 하고픈 말>
그대는 충분히 잘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진짜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끊임없이 복기해야 하는 게 교사의 삶이다. 교사가 100을 쏟아도 한 학생이 느끼는 것은 10이 안되기에 그대가 교사인 이상 학생이나 학부모의 오해는 필연적이다. 그러니 억울해할 필요도 없고 속상해할 필요도 없다. 언젠가 10만 쏟았는데 학생에게 100의 효과를 발휘하는 날이 분명히 온다. 혼자 끙끙 싸매지 말고 동료와 나누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