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무릎을 꿇고 앉을 때 왼쪽 무릎에 칼로 째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잠깐 지나가다 말겠지’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통증은 한 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유투브를 검색해 보니 ‘점액낭염’ 증세와 유사해 보였다. 결국 참을 수 없어서 패밀리 닥터(가정주치의)를 만나러 병원을 예약했다. (미국은 전문의를 만나기 전에 먼저 패밀리 닥터를 만나 1차 진단을 받는다) 평소에 나를 진찰해 오던 주치의는 일정이 바빠서 그분과 예약하려면 3주를 더 기다려야 했다. 기다릴 수 없어 병원에 있는 의사 중에 제일 빨리 볼 수 있는 의사를 찾아 달라고 했다.
3일 후에 예약된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남미 계열의 젊은 의사였다. 그는 무릎을 만져 보고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엑스레이부터 찍자고 했다. 그 한 마디 듣기 위해 접수하고 1시간을 기다렸던가? 병원을 나오면서 진찰비 25불을 냈다. (그나마 보험이 있어서 그 정도로 내고 나왔지 보험이 없을 경우 진찰비는 100불을 훌쩍 넘기 일쑤다)
엑스레이를 찍는 병원은 따로 있었다. 내가 직접 병원을 예약하고 며칠 뒤 엑스레이를 찍었다. 엑스레이 촬영 기사에게 물었다. ‘나는 뼈를 다친게 아닌데 왜 굳이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죠?’ 그러자 그녀는 그게 보험회사에서 요구하는 절차라고 했다. 10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왼쪽 무릎 엑스레이를 돌려 가며 몇 장을 찍었다. 그리고 65불을 내고 나왔다. 여기까지 들어간 돈이 한국돈으로 거의 10만원 가량이었다.
이틀 뒤에 병원에서 간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엑스레이 결과 이상이 없다고. 그러니 소염제(아이브로핀)를 복용하고 얼음찜질을 하라’는 거다. 좀 황당해서 물었다. 나는 처음부터 뼈에는 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고. 엑스레이 찍으라고 하니까 찍은 거라고. 엑스레이상에는 문제가 없지만 나는 통증을 느낀다고 어떻게 하면 좋냐고. 그러자 전화기 넘어로 약간은 짜증스런 어투로 똑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엑스레이 결과 이상 없으니까 소염제를 복용하고 얼음찜질 하라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나의 원래 내 주치의를 다시 예약해서 만나겠다고 했다. 그러자 0.5초 만에 예약파트 자동응답기로 전화를 돌려 버렸다. 몇 분 정도 기다리다가 그냥 내 편에서 전화를 먼저 끊고 말았다. 이럴 때 마다 좌절감도 들고 화도 난다. 미국 생활 20년째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시스템이다.
감사한 일은 며칠 뒤부터 무릎을 살짝 살짝 꿇어 봤더니 통증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 게 아닌가? 아내에게 농담조로 '미국은 엑스레이에도 눈부신 치료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염증이 저절로 완화 된 듯 했다.
2년 전 여름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동네 병원에 전화를 했다. 놀랍게도 이틀 뒤에 예약을 잡아 주었다. 그 동네 병원은 5층으로 된 작은 종합병원이었다. 그 병원에서 나는 하루 반나절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2층에서 간초음파 검사를 하고 곧바로 3층으로 올라가 폐 CT 를 찍고 4층에서 위와 장 내시경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었다. 역시 배달의 민족 다운 스피드였다. 미국에서 이 정도 검사를 하려면 경우에 따라서 적어도 두 세달을 기다려야 한다.
레오 톨스토이는 ‘가장 강력한 두 용사는 인내와 시간’이라는 말을 했다. 이민 생활에 적응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인내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이민을 준비하면서 필요한 것은 돈이나 영어만 아니다. 이민 가방 안에 싸와야 하는 의외의 짐은 바로 인내와 시간에 대한 이해와 인내다. 다른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손해 보는 것은 언제나 조바심을 내는 쪽이다. 그러니 미리 참고 기다리는 연습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