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by 타호의 서재

최근 어떤 모임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한분이 갑자기 카톡 단체방을 탈퇴하셨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는 당신이 참여하고 있던 하이킹 모임에 더 이상 나가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시는게 아닌가! 왜 그러시냐고 정중하게 전화를 드려 물어봤더니 모임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 카톡방에 항상 당신의 이름이 맨 마지막에 나오더라는 거다. 처음엔 참으셨단다. 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지 하시면서. 그런데 만들어지는 카톡방 마다 당신의 이름이 맨 마지막에 나오더니 급기야 하이킹 모임까지 자신의 이름이 카톡방 리스트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걸 보면서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때문에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빠서 더 이상 모임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시며 카톡방을 나가 버리셨다.


전화를 걸어서 차근 차근 설명을 드렸다. 카카오톡은 단체방을 만들면 시스템상 받아 보는 분의 이름이 제일 마지막에 나온다고. 카톡을 운영하는 시스템이 그래서 그런거지 결코 당신을 무시하거나 얕잡아 봐서가 아니라고 찬찬히 설명 드렸다. 다행히도 이해하시는 듯 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그분에게 사과의 카톡이 왔다. 다시 그분을 만났을 때, 그분은 무척이나 부끄러워 하시면서 연신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셨다.


이민자들의 지배적인 정서는 ‘좌절감(frustration)’ 이라는 말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의 나라 땅에 와서 살면서 얼마나 답답할 때가 많은가? 한국에서는 그래도 다들 잘 나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민 와서 처음 하는 일들은 대체로 대접 받거나 대우 받은 그런 일들과는 거리가 멀다. 어느 나라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란 그다지 대접 받는 직업들은 아닌 것처럼. 거기서부터 자존심이 무너진다. '내가 누군데, 어떤 사람인데' 일찌감치 이걸 내려 놓지 못하면 매일이 고통의 연속이다. 게다가 억울하게 교통 경찰에서 붙잡혀서 딱지라도 떼이는 날에는 구구절절이 내 입장을 설명할 마음은 굴뚝 같지만 설명할 영어 실력이 되지 않는다. 오죽하면 ‘이번 한번만 좀 봐달라’ 는 뜻으로 했다는 영어가 look at me!(나 좀 쳐다 봐 달라는 뜻) 였을까? 뿐만 아니라 어쩌다 병원 한번 다녀오고 몇 천불에서 몇 만불까지 껑충 뛰는 병원비 폭탄을 맞기라도 하면 시원하게 반박하거나 협상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직장에서 억울한 대우를 당해도 속으로는 천불이 끓어도 영어로 시원하게 퍼붓을 실력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이민자들의 기본적인 정서는 좌절감이라는 말도 틀린 해석은 아닌 듯 하다.


그러나 좌절이 지속되다 보면 자존감은 더욱 더 낮아지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 점점 쉽게 남을 오해하고 화부터 내기 쉬운 성격으로 변하기도 한다. 이민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위에 언급한 분처럼 자존감이 낮아 쉽게 상대방의 말을 오해하고 화부터 내는 분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사건에 대한 오로지 자신의 왜곡된 해석으로 힘들게 쌓아 올린 우정을 일방적으로 무너 뜨리는 일도 있다. 사건 보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상처 받은 것은 사건 자체라기 보다 그 사건에 대한 자기 해석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건강한 사람은 사건에 대한 건강한 해석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해석만 잘해도 이민 생활에서 오는 문제들을 잘 다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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