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 섬진강을 따라가다 2

2023. 10. 25.

by 김경윤

五畝種竹 오무종죽

五畝藝蔬 오무예소

半日靜坐 반일정좌

半日讀書 반일독서


다섯 이랑 대나무를 심고

다섯 이랑 채소를 가꾸며

한나절은 좌선하고

한나절은 책을 읽는다네


- 추사 김정희가 고택에 써놓았다는 절구



밤에 한 잔 더하고, 뜨뜻한 온돌바닥에서 푹잠을 잤는지, 아침 여섯 시에 기상했는데 온몸이 개운하다. 믹스커피 한 잔 타들고 마당으로 나가 독서를 한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일행은 잠든 시간. 조용한 마당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는 고요한 시간을 만끽한다.

실내에 불이 켜지고 일행이 일어나 분주히 움직인다. 책을 덮고 실내로 들어가니 일행 중 한 명인 생활요가선생이 요가를 하고 있다. 곁에 다가가 허리를 튼튼하게 하는 생활요가 몇 자세를 배운다. 한 15분 한 것 같은데 허리가 부드러워지고 어깨가 풀린 듯하다. 오늘은 여수로 떠난다.


황칠백숙집 주인이 아침식사로 시래깃국을 준비하고 맛난 반찬을 차리니 배가 저절로 고파져 아침식사를 든든히 한다.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아침 메뉴는 해장라면이었을 것이다.)

다들 박수치며 식사를 마치고, 과일과 커피 대접까지 받으니 그냥 갈 수 없다며 일행 목사님이 한 줄 기도를 올리자고 제안한다. 돌아가며 주인집의 안녕과 건강과 번창을 빌었다. 기념사진 한 장 찍고 여수로 출발!

여수에서의 일정은 돌산 갓김치로 유명한 돌산에 위치한 갈릴리교회와 향일암을 방문하는 것. 갈릴리교회는 동녘교회 목사님의 선배가 19년째 목회활동을 하는 곳이라 꼭 한 번 방문하고 싶다는 말씀을 오케이로 받은 것이고, 향일암은 전국적으로도 알려진 명사찰이라 섬 주의를 라이딩하며 목적지로 정한 곳이다.


식당을 떠나 여수 갈릴리교회까지 차로 50분. 도착하니 교회보다 꽃밭정원이 우리를 반긴다. 교회는 천국이 아니고 천국을 맛보는 곳이고, 그런 천국을 보여주기에 꽃밭보다 좋은 곳은 없다는 것. 갈릴리교회 담임 목사님의 친절한 설명이다. 다들 감탄하며 꽃밭에서 한 동안 머문다. 가을보다 봄철이 더욱 좋다며, 봄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정원방문을 한다고 은근히 자랑하는 모습이 정겹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니 정갈하고 아담한 모습이 본당이 나온다. 교회는 목회자의 모습을 닮는다고 했는데, 도시에 있는 대형교회에서 생을 갉아 분주히 사는 삶을 버리고, 성공의 욕망을 내려놓고 시골교회로 내려와 정성으로 지역교인의 영혼을 보살피는 성직자의 모습을 보니, 그의 삶이 부럽기도 하고, 우리는 우리 색깔대로 아름답게 신나게 살자는 다짐도 한다.

자, 이제 일행을 두 패로 나눈다. 라이딩파와 드라이빙파. 각자 원하는 파에 속해 향일암으로 향한다. 나는 당근 드라이빙파.(삼보승차가 나의 운전철학이다.^^) 굴곡과 높낮이가 심한 해안도로를 달리며 뒤따라오는 라이딩파를 걱정한다.(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했단다. 안 봐도 비디오다. 지옥 같은 오르막을 헉헉대며 오르다 보면, 앞이 툭 터진 천국 같은 내리막이 기다린다. 라이딩도, 삶도 이 맛에 사는 거다.)

드라이빙파는 먼저 도착하여 향일암으로 오른다. 가파른 절길 양편으로 돌산 갓김치며 지역특산물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관광객이 몰려 드니 주변이 흥성하다. 부처님 덕분에 절도 주변도 편안히 산다면 극락이 따로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데 향일암에 도착하니, 새 불상을 모시고 새 암자를 만들자는 모금운동이 한창이다. 있는 것도 덜어내는 불교의 무소유 정신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하며 번뇌가 들끓는다. 머리를 흔들어 번뇌를 지우고, 호흡을 가다듬고,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들러본다. 향일암은 원효대사의 기도처가 있는 곳이고, 해수관음보살이 바닷사람들의 안녕을 지키는 곳이고, 천수관음보살이 온갖 어려움에 처한 중생을 천 개의 손으로 구제하는 곳이다. 불경한 생각을 멀리하고 모두의 안녕을 바라는 간절함만 놓고 오자 다짐한다.

향일암에 오르며 생긴 기적 같은 만남. 같은 인문학 모임 귀가쫑긋의 일원인 곽○○을 만났다. 서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참을 쳐다보았다. 남들이 보았다면 이산가족이 상봉한 줄 알았으리라. 내가 일행이 있어 금세 헤어졌지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로또 맞은 기분!!


향일암에서 내려가며 생긴 . 향일암으로 향하는 입구에 지금은 장사를 하지 않는 횟집 입구 양편에 한시가 쓰여있다. 어디서 많이 본 작품이다 생각하고 검색을 하니, 주자가 쓴 시를 추사 김정희가 썼다고도 하고, 추사 김정희가 직접 지은 작품이라고도 한다. 자세한 내막은 나중에 조사하기로 하고 일행에게 한시를 해석해 주고 (이글 처음에 소개 4언절구 시다.) 즉흥 퀴즈를 냈다. 다음 한시를 지은 사람은? 1번 허균, 2번 박지원, 3번 김정희, 4번 문재인. 한 누나가 4번을 찍는다. (유머인가, 충성인가, 무지인가?^^) 다른 형이 3번을 찍는다. 딩동댕! (인문학 강사의 직업의식이 여기서도 발휘된다.)

라이딩팀이 도착하여 뒤늦게 향일암에 오르고, 우리는 아래에서 감을 먹으며 기다렸다가 함께 점심 겸 저녁을 먹으러 식당을 찾는다. 마침 백반을 파는 식당을 찾아 푸짐하게 한 상을 먹으니 슬슬 피로가 몰려온다. 순천에 들를까, 집으로 돌아갈까 물었더니 다들 고양으로 돌아가잖다. 그래 1박 2일 동안 꿈결 같은 쾌락강행군을 했으니 이제 다시 산문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야겠지.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니 고양까지 411킬로미터, 소요시간은 5시간 반. 내쳐 달려도 한밤중에 도착이다. 잘 놀았다. 무사히 귀가하자. 전쟁 같은 내일이야 오고야 말 테지만, 오늘밤은 꿀잠을 자자. 수고했다. 모두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오늘 : 섬진강을 따라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