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섬진강을 따라 달리는 전라도 라이딩이야." 나는 과대체중에 자전거여행은 꿈도 꾸지 않았다. 게다가 라이딩할 자전거조차 없으니 애당초 조건미달.
"잘들 다녀 오세요. 저는 골방에서 밀린 글이나 쓸랍니다."
그러자 선배 왈. "자전거 같이 타자는 게 아니라 자전거 싣고 같이 갈 운짱이 필요해. 시간 좀 만들어봐. 좋은 경치구경 하고, 맛난 음식을 먹으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야."
그래? 운전이라면 내가 한 운전하지. 덥석 미끼를 문 것이고, 그리하여 계획에도 없는 남도여행은 시작되었다. 새벽 4시 반에 출발하여 중간에 한 번 쉬면서 김밥으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내리 달려 섬진강댐 근처 시민운동장에 도착하니 8시 반. 짐차에서 자전거를 내리고 나는 중간 기착지인 전북 순창군 적성면 행정복지센터로 차를 몬다. (아참, 중간에 살짝 길을 틀어 감농장에 들러 단감을 박스로 샀다. 일행들 중간중간 간식거리다. 농장 주인은 인심도 푸짐하여 홍시를 거저로 가득 챙겨준다. 직거래가 주는 행운이다.)
라이더들은 1시나 도착할 것이다. 진행 카톡을 보니 달리면서 찍은 사진들이 도착했다.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 시인의 생가에서 시인을 직관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까지. (살아있는 시인에게 생가라니? 좀 의아하긴 하다. 너무 이른 작명 아닌가?)
나는 차에서 일행을 기다리며 읽을 책,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찾아 꺼내든다. 438쪽의 두툼한 책이니 야금야금 읽으면 일주일이면 될 듯하다.몇 쪽 못 읽었는데 팀들이 도착한다는 연락. 마을 <우계식당>에 가서 백반 9인분을 시켜놓는다. 전라도 백반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반찬도 푸짐하고, 찌개도 맛나다. 모두들 감탄하며 점심을 먹는다. 자전거를 탔으니 맛있을 밖에.시장도 반찬으로 거든다.
자, 다들 든든히 채웠으니 다시 자전거 정비하고 섬진강 자전거길을 따라 출발한다. 2차 기착지는 전남 고성군 섬진강로 2584 <미실란밥cafe 반하다>이다. 김탁환 소설가와 곡성의 농민이 뜻을 모아 폐교를 인수하고, 리모델링하여 만든 문화예술생활공간이다.한 시간 가까이 걸려 도착하니 공사 중이다. 다행히 카페는 열려있어 냉커피 한 잔 시켜 놓고 책을 읽는데, 그늘 밑 탁자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슬슬 졸음이 몰려온다. (간밤에 원고 쓰느라 밤샘을 했으니, 당연지사다.)
책은 술술 읽힌다. 룰루 밀러가 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이 책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할 것이다. 룰루 밀러의 저술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과학자가 바로 캐럴 계윤 숙이다. (이름에서 짐작하겠지만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계 미국인이다. 부모가 과학자고 주변이 과학자들이라 자연스럽게 과학자가 되었단다.^^ 서평은 나중에 쓰자. 지금은 여행 중이니.)
그런데 졸음이 책을 이긴다. 아, 지구보다 무거운 눈꺼풀이여!
2차 기착지에 일행이 모이니 저녁 5시 반, 벌써 하늘은 붉은색으로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이자 숙소는 전남 순천시 혜룡면 1267, 황칠백숙으로 유명한 <심지>다. 어쩌면 선배는 이곳에서 파는 황칠백숙을 먹이고 싶어 이번 여행을 기획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음식맛과 장소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예찬했다. (그리고 과연. 나오는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하루의 고생과 피곤이 일거에 사라지는 기적을 맛보았다.) 어두컴컴해 도착한 식당에는 이미 준비한 음식이 그득, 꼬막무침에, 꼬막데침, 잘 익은 김치와 샐러드들. 그리고 메인 메뉴로 등장한 황칠백숙과 곁들여 마시는 황칠소주는 천상의 마리아주(? 맞나?)였다. 심지어 마지막 간식으로 나온 게르마늄 황토흙에서 캐냈다는 고구마까지. (혹시나 해서 챙겨 온 한방소화제가 한 역할했다.)
다들 배 꺼뜨리러 산책을 나가고, 나는 탁자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손 시리도록 이 글을 독수리 타법으로 작성하고 있다. 돌아와 일부는 자고, 일부는 2차를 시작했는데, 나는 어쩔까 살짝 고민 중이다. 어쨌든 이렇게 길고 긴 섬진강 여행이 하루가 저물어 간다. 내일은 아마도 여수로 출발하지 않을까?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밖이 춥다. 안으로 들어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