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 현기영의 <제주도우다>

2023. 10. 12.

by 김경윤

너무도 많은 참혹한 유혈에서 그 핏빛의 생생한 묘사를 될 수 있으면 자제하려 했지만, 모두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가가 지나치게 감정적이라고 비난하더라도 마음이 슬픈 작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독자여, 그대가 이 소설을 읽기로 작심하였다면 그 길은 작가와 동행해 너무도 낯선 삶과 죽음의 비경을 찾아가는 여행길이 될 것입니다. 작가는 이것저것 살피면서 그 먼 길을 느리게 걸아갈 텐데, 독자도 그 느린 행보의 리듬에 맞춰 천천히 걸어가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3권, 362~363쪽)

- <작가의 말> 중에서


현기영 작가의 장편소설 <제주도우다>가 출간된 것은 7월 초였다. 나는 친구의 초청(?)으로 가파도로 한 달 살기를 가기로 했다. 7월 5일 가파도로 가기 전에 책을 주문했다. 제주도에서 한 달을 지내려면 책이 필요하고, 어울리는 책으로는 현기영 작가의 소설만큼 맞춤이기는 어려웠으니까. 그러나 책은 내가 가파도에 도착한 후에 집에 도착했고, 나는 가파도에서 한 달 살기를 마치고 집에 가서야 책을 맞이할 수 있었다.

현기영 작가와 제주 4.3 학살 사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관계이다. 일찍이 단편소설 <순이삼촌>(1978)이 발표되고, 공안기간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고 나서도, 현기영 작가는 제주 4.3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가 쓴 장편과 단편은 거의 모두 제주 4.3의 자장 안에서 쓴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도령마루의 까마귀> <해룡이야기>(1979) 등은 제주를 배경으로 쓴 단편이었고, 구한말을 배경으로 쓴 장편 <변방에 우짖는 새>(1983)이나 일제 강점기 '잠녀항일투쟁'을 그린 <바람 타는 섬>(1989) 역시 제주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쓴 작품들이다. 비록 거처는 도시 서울로 옮겨왔지만, 그의 예술적 바탕은 제주를 떠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만난 현기영 작가는 농담도 잘하고 웃음도 많고 정도 많은 큰삼촌이나 다정한 선생님과 같은 인상이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인상만으로는 느낄 수 없는 끝 모를 깊이의 슬픔과 분노와 민중연대와 평화에 대한 기원이 담겨있었다. 잊히면 안 되는 역사를 기억하고, 다시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억울하게 죽어간 주검들의 해원을 위해, 바로 서는 역사를 위해,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무엇보다 자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평생을 소설로 산문으로 행동으로 살아왔던 셈.


이 현기영의 소설은 창비를 통해 장편소설 3권과 중단편집 3권으로 정리되어 발간되었는데, 이제 거기에 다시 3권짜리 장편소설 <제주도우다>를 더하니 풍성한 9권을 갖춘 셈이다. 더욱이 이번에 발표된 <제주도우다>는 구한말을 거쳐 일제강점기, 해방을 거쳐 4.3에서 현재까지의 연대기를 다루고 있으니 현기영 문학의 종합판이라고 해도 될 듯싶다. (굳이 다른 작가와 비교해 보자면, 분량면에서도 연대기적으로도 최인훈의 <화두>랑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나중에 이 두 소설을 비교해서 글 한 편 쓰면 아주 재밌을 것 같다.) 독자로서는 우선 열심히 읽어보는 것이 임무라, 며칠 동안 이 소설에 흠뻑 빠질 생각이다.


결론 같은 본론을 말하자면, 현기영 작가가 고양시에 두 번 오신다. 한 번은 친한 후배작가의 초대로, 다른 한 번은 지역서점의 초청으로. 날짜와 장소는 10월 14일(토) 3시에 자유농장, 10월 18일(수) 7시에 한양문고 주엽점에서 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자유농장에서는 뒤풀이도 함께 한다니 주말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혹시나 싶어, 아래 포스터를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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