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의 주인일 수 있을 때 써둬야지. 아니 주인이 되기 위해 써야 한다. 기억의 밀림 속에 옳은 맥락을 찾아내어 그 맥락이 기억들 사이에 옳은 연대를 만들어내게 함으로써만 나는 나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겠다. 그 맥락, 그것이 ‘나’다. 주인이 된 나다. 그래야 두 분 선생님을 옳게 만날 수 있다. 다음 소집이 오기 전에, 다시 지워지지 않게. 쓸 수 있을 때. 어느 소집 때보다 좋은 토론이 될 게다. 만일 무슨 일로 소집에 응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다른 사람에 의해서라도 그들에게 노트는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옛날에 그들이 내 ‘감상문’과 ‘현상 응모시’에 대해서 그랬듯이 그 노트에서 나와 만날 게다. 원고지를 꺼내놓고 마주 앉는다. 첫 문장을 적는다. -- 낙동강 700리, 길이길이 흐르는 물은 이곳에 이르러 곁가지 강물을 한몸에 뭉쳐서 바다로 향하여 나간다……
이 소설은 어느 가을밤에 그렇게 시작되었다. (586쪽)
“1989년 초여름의 어느 날 아침”으로 《화두 2》는 시작된다. 연대적으로 1권에서 2권으로 넘어가면서 12년이 지났다. (《화두》가 발간되려면 아직 5년을, 작가가 고양 덕양구 화정동으로 이사 오려면 아직 11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화두 1》을 다루면서 도서관과 책에 대해서 주로 기록했는데, 《화두 2》는 ‘자전적 글쓰기’에 해당하는 작가에 대해서 집중해 볼까나.
《화두》 전체의 원고 분량은 4,500매가량이다. 요즘 헐렁한 소설 중에는 원고지 500매 정도도 있고, 장편소설이라고 해도 원고지 1,200매 정도면 충분한데, 그것의 3~4배 정도의 크기의 원고이다. 자전적 소설이라 할지라도 할 이야기가 많기도 많다. H(회령)에서 살던 어린 시절부터 1993년 러시아를 다녀온 후까지 거의 환갑에 가까운 생애를 담으려 했으니, 참으로 방대할 수밖에 없다. 얼마 만에 썼을까? 소설을 다 읽고 계산해 본 것인데, 러시아에 다녀와서 첫 문장을 시작했다면, 채 1년도 안 되어 4,500매를 쓴 셈이다. 거의 신들린 듯한 집필 속도로 쓴 것이다.
작가 속에는 두 명에 선생이 살고(?) 있다. 자신에게 자아비판을 강요했던 ‘지도원 선생님’과 작가가 될 것이라고 격려했던 ‘국어 선생님’. 이 두 선생님은 작가 최인훈의 글쓰기에 항상 무의식적으로 따라다니는 검열자이며 격려자이다. (과하게 표현하면 악마와 천사라고 할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W(원산)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 만난 두 선생은 절망과 희망, 추락과 상승, 어둠과 밝음의 모습으로 ‘기억의 현상학’에 자주 소환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묻고, 변명하고, 따지고, 토론한다. “왜 그때 그러셨냐?”라고 묻기도 하고, “덕분에 글을 쓰게 됐다”라고 고마워하기도 한다.
포석 조명희(1894~1983)
《화두 2》에는 작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해명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린(혹은 젊은) 시절에 읽었던 수많은 문학 작품들이 소개되고, 그러한 작품들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기억을 더듬으며 자세히 설명한다. 그 작품의 방대함에 놀라고, 그것들을 치열하게 기억해내고 있는 작가의 글쓰기에 놀란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작품은 일제 강점기 때 <낙동강>을 쓴 포석 조명희다. 그는 식민지에서 벗어나 소련으로 넘어갔다가 스파이로 몰려 총살당한 비운의 작가로 알려졌는데, 최인훈은 고등학교 때 그 <낙동강>을 읽고 글을 써서 넘치는 칭찬을 받고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기까지 하였으니 조명희에 대한 추억과 사랑이 남달랐으리라 짐작된다. 최인훈은 평생 포석 정명희를 자신의 모델로 삼았고, 그의 비극적 삶을 추적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리고 러시아 여행 도중 제자의 도움으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받는다. (그 자료가 《화두 2》에 자세히 추가되어 있는데, 내가 읽어본 바로는 레닌이 쓴 <신경제론>이라는 연설문(논문)이다. 조명희는 죽기 전에 그 논문을 품고 있었던 듯.) 그 빛나는 글을 썼던 명석한 러시아 혁명가 레닌조차도 말년에는 치매에 걸려 ‘어머니’ ‘간다’ 등 몇 마디밖에 쓰지 못했다는 기사를 읽고, 작가 최인훈은 20년의 소설 공백을 지우고, 자신도 기억을 다 잃기 전에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다.
자기가 더 늙기 전에, 죽기 전에,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며 글을 썼는지, 세계에 대해, 인간과 역사에 대해, 자연과 문화에 대해, 예술과 글쓰기에 대해, 강대국과 약소국에 대해, 피란(난민)과 정착에 대해, 작가와 자신에 대해, 기억과 망각에 대해, 모든 기억을 끌어올려 될 수 있는 한 자세하고 섬세하게, 역사적이면서 논리적으로, 최종적으로는 소설적으로 쓰기 시작한다. 《화두 2》의 마지막 부분이 위에 인용해 놓은 부분이다. 아직은 자신이 자신에 대해 주인일 때, 아니 주인이 되기 위해 소설을 다시 쓰기로 결심한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장편소설을. 그리고 결국 마지막이 된 장편소설을.
나는 잠 못 이루는 밤, 새벽까지 깨어 《화두 2》를 읽으며,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렇게 말했다. “신이여, 감사합니다. 제가 결국 《화두》를 모두 읽었습니다. 최인훈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작가로 살아갈 힘을 다시 얻게 되었습니다.”
<덧붙이는 말>
대개 최인훈 전집 읽기를 <광장>부터 시작한다. 적당한 분량, 적당한 난이도, 적당한 지적 충족에, 적당히 역사적 사건(전쟁)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주는 작품으로 <광장>만 한 것이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만 읽고 말 것이라면 모르겠으되. 만약에 전집을 다 읽어보겠다고 발심(發心)한 독자라면 《화두》부터 읽을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최인훈의 삶과 경험, 독서와 창작, 철학과 예술, 그리고 치열한 글쓰기에 대하여 이 만큼 넓은 숲을 경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두》를 독파한 자, 전집을 독파할 수 있으리라.
그래서 내년도에 최인훈 전집 읽기 모임을 다시 갖게 된다면, 나는 반드시 《화두》부터 함께 읽기 시작할 것이다. 많은 분이 함께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