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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29. 2024

책 : 가족을 폐지하라

2024. 5. 29.

그리고 우정, 노동, 부분적으로 공유하는 목적, 집단의 만성적인 고통, 헤어날 수 없는 필멸성, 불굴의 희망에 뿌리를 둔 연대, 인류의 단결과 차이의 모델을 갈망한다. 만사가 정체성과 재생산의 드라마에서 비롯되지 않는, '익숙하지 않은' 무의식, 다른 태고의 현장을 이론화할 때가 되었다. 피를 통한 연결 - 유전자와 정보라는 주화로 다시 주조된 피를 포함해서 - 은 이미 충분히 피투성이다. 나는 우리가 혈연과 다른 차원의 무언가를 통해 인류를 생산하는 방법을 배우기 전에는 인종적이거나 성적인 평화도, 살아낼 만한 자연도 없을 거라고 믿는다. (150~151쪽) - 도나 헤러웨이




1.

"가족을 폐지하라?"

발권 중인데 가파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내가 읽고 있는 책 제목을 보고, 내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나는 잘못한 것도 아닌데, 주저리주러리 해명(?)을 한다.

"이번에 강좌를 하나 준비 중인데,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와 함께 읽는 책으로 그 반대편의 입장에 있는 책을 하나 골라봤습니다. <오뒷세이아>가 가족에로 귀향하는 이야기라면, 소피 루이스의 <가족을 폐지하라>는 가족의 범주에서 벗어나 인류를 사유하는 책이라서요."

교장선생은 나의 친절한 해명에 수궁이 간다는 듯, 씩 웃더니 배를 타러 나간다. 휴, 다행이다. 괜히 나를 위험한 사람으로 생각했다가는 가파초에서 혹시라도 있을 강의가 사라질  했다고 안도한다.^^


2.

<가족을 폐지하라>는 가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읽는 책이 아니다. 가족이 화목하든, 집이 천국 같더라도, 그 틀안에 갇혀 그 어두운 면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이 반드시 읽어야하는 책이다. 인류의 위계질서와 폭력, 유기, 성폭행이 가장 많이 자행되는 곳도 가족이다. '나만 아니며 돼'라고 모르쇠로 일관하면 안 된다. 나에게는 천국일지라도 누구에게는 가장 끔찍한 지옥이 가족일지도 모르니까.

이 책은 '가족폐지'와 관련된 논점, '가족폐지'를 주장한 인류의 역사, '가족폐지'의 현황과 전망에 대하여 휘몰아치듯 쓴 소책자이다. 페미니즘, 퀴어, 난민, 인종, 계급, 자본주의 등의 굵직한 주제와 연결하여 마치 눈앞에 상대방에게 이야기하듯 글을 썼다. 이러한 주제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별문제 없겠지만, 이 주제 자체가 생소한 사람은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계속 읽다보면 저자가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 주장에 동의하느냐, 안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한 주장이 발생하게 된 배경과 그 배경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인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3.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데 내가 있는 곳이 안전하다고 해서 지진의 여파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가족문제는 인류의 가족 근본적이고 가장 광범위한 문제이기에 내가 외면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 가족문제를 가장 극단까지 밀고 가서 사고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꿈꾸는 세계를 인용한다. 책의 맨 마지막 부분이다.


"가족과 함께 지내기와 가족의 분리를 중단하는 것은 정치적 과제이자 자기 인종의 이익에만 머무르지 않는 모든 백인의 실천적 요구사항이지만 그게 우리의 지평은 아니다. 인간으로서 함께 지내기와 인간의 분리를 중단하는 것, 이것이 상상 가능한 미래의 모습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우리가 그것을 완전히 욕망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어떻게 해야 그것을 완전히 욕망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족 제도 이후에 무엇이 나타날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어쩌면 그게 뭐든 내가 알 길이 없을지 모른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나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고, 그것이 찬란하고 풍요로운 아무것도 없음이면 좋겠다." (158~159쪽)


<추신>

혹시 궁금해할까봐 내가 준비 중인 강좌 안내문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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