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윤 Sep 13. 2024

책 : 나쁜 삶의 기술

2024. 9. 13.

최고로 만족스러운 즐거움의 대상이 짜증의 대상으로 바뀌는 조명전환이 일어났다는 것은 우리가 어느새 사는 것의 가치를 소중히 하는 법을 잊었다는 것을 뜻한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더 이상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이유에 대해 질문조차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건강, 안전, 지속가능성, 그리고 비용효율성과 같은 절대화된 원칙들에 맞추어 어떻게 하면 가능한 한 오래 살 수 있는지 또는 살아남을 수 있는지 묻는다. 이런 현실은 고대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그저 조금 어리석고 마는 정도가 아니다. 에피쿠로스는 말하기를, 현자는 결코 가장 큰 빵을 고르지 않는다, 그는 가장 달콤한 빵을 고른다고 했다. 우리는 오늘날 로마의 풍자가이자 스토아사상가였던 유베날리스가 가장 나쁜 윤리적 과오라고 했던 바로 그것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일갈했다. “부끄러워하기보다 살아남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악이다. 사는 데 급급하여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리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22~23쪽)




사월의 책에서 나온 <나쁜 삶의 기술>은 나쁜 책이다. 왜 나쁜 책이냐?


첫째, 그동안 쉽고 편안한 글을 읽은 사람들은 분명 껄끄럽고 어려운 책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월의책 안희곤 대표가 페북에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이번에 나오는 『나쁜 삶의 기술』(로베르트 팔러)은 ‘즐거움을 잃어버린 시대에 행복 되찾기’라는 만만한 부제를 달고 있지만, 사실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은 책이다. 배경지식이 필요한 개념들과 서술들, 아주 낯선 비유, 일화들이 계속 등장하는데, 저자는 이런 부분에 대해 친절한 설명을 거의 달지 않았다.

솔직이 글을 압축적이고 미려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일체의 군더더기를 없애는 것도 미학적 측면을 고려하는 저자들의 글쓰기 전략이다. 너저분해지고 품격이 떨어지는 것을 피하려는 것이다. 이런 책을 읽는 독자는 고역이다. 그러나 그만큼 독자의 공간을 저자가 열어주고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독자가 채워 넣을 공간을 배려한다고 할까. 온갖 친절이 들어간 책은 독자를 질식시킨다. 더 이상의 아무런 생각도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사월의책에서 곧 출간할 『나쁜 삶의 기술』은 정말 좋은 책이지만 또 읽어내기 만만치 않은 내용이다. 그래서 만만치 않은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 몇 차례의 독회를 해볼 생각이다. 세 번쯤으로 나누어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싶은 분들과 꼼꼼히 읽는 경험을 해보면 어떨까 싶다. ‘소비적 독서’의 방식으로 훑고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책이고, 사실 그렇게 읽어서는 얻는 바가 거의 없을 책이기도 하다. 책이 나온 후에 적당한 시점, 아마도 9월 중에 독회를 하는 것으로 공지할 계획인데, 참여 의향이 있는 분들은 잘 눈여겨보시면 좋겠다."


둘째, 말 그대로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이고, 개인적 나르시시즘이 우리 사회의 기본태도라고 한다면, 그러한 관점에서는 거부하거나 혐오해야 할 나쁜 것들을 선동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흡연이 갑자기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은 그것이 생각했던 것처럼 무해한 기호 활동이 아니라 건강을 위협하는 행위임을 새롭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리처드 클라인이 그의 멋진 책  『담배는 숭고하다』에서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우리는 흡연이 유해하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점을 몰랐다면 우리는 결코 담배를 피우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담배의 유해함, 바로 그것이 담배를 숭고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만날 때, '음~, 썩 마음에 드는 나쁜 삶인 걸'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셋째,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고개를 많이 끄덕일수록 나쁜 사람(?)이 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양이란 무기를 잔뜩 움켜쥔 나쁜 사람이 될 것이다. 우리가 나쁘게 살기로 - 이 말은 저자의 원래 의도대로 해석하자면 '가치 있는 삶을 살기로' - 마음먹었다면, 우리를 응원해 줄 사상가들은 차고도 넘친다. "에피쿠로스, 에픽테토스, 세네카, 몽테뉴, 스피노자, 파스칼, 칸트, 헤겔, 니체, 프로이트, 라캉, 마르크스와 엥겔스, 바슐라르, 하위징아, 바타유, 비트겐슈타인, 알튀세르, 셰익스피어, 브레히트, 드 사드… 그리고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빈의 작가와 음유시인까지" 고대에서 현대까지 망라된 이 우군을 동지 삼아 나쁜 삶에 동참하자!


일단 그러려면 무교양시대에 가장 나쁜 짓인 책구입을 해야겠지. 그리고 사월의책에 전화해서 "당신네 책을 샀으니 이제 당신들이 나의 삶을 책임지쇼!"라는 나쁜 짓도 해보자. 출판사 쪽이 나쁜 책을 냈으니 나쁜 일도 당해보라지. 뭐, 난 그런 심정이다.  


<뱀발>

원래 사월의책이 첫 번째 제작한 표지는 이브의 누드였다. 그러다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카라바조의 바쿠스(디오니소스)로 바꿨는데,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바쿠스도 젊고 병든 바쿠스를 선택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오늘날 여성들도 나쁜 삶의 기술을 터득해야겠지만, 성별을 넘어 젊은이들이 이 책에서 권장하는 나쁜 삶의 기술을 익혀 즐거움을 되찾기를 바란다.


그런 점에서 책의 뒷면에 있는 추천사도 하나 옮겨놓는다.


“팔러는 삶의 즐거움을 ‘바로 그것 때문에 삶이 가치 있게 되는 것’으로 정의한다. 생존만을 좇는 존재 이상으로 자신을 드높이는 과잉의 순간이 없다면, 우리 삶은 동물적이거나 죽음과 비슷한 것이 될 것이다. 팔러는 우리 사회가 건강, 안전, 효율성을 위해 즐거움을 금지하고 삶의 우아함을 반납했다고 한다. 음주, 흡연, 섹스, 블랙 유머, 한가로운 상념의 즐거움을 잊게 만들었다고 한다. 사는 데 급급하여 살아가는 기쁨을 잃어버린 우리는 얼마나 엄청난 바보들인가?” - 스벤냐 플라스푈러 (철학자, 작가)

이전 16화 책 : 가와이 하야오의 저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