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강 : 좋은 사랑은 어떻게 가장 좋은 우정이 되는가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나코스 윤리학>

by 김경윤

1.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연인이야"

오랜 시간 아름다운 관계를 이어온 연인들에게 그 비결을 물으면, 종종 이런 대답이 돌아오곤 합니다. “우리는 연인이기 이전에 가장 친한 친구예요.” 이 말 속에는, 심장을 뛰게 하는 열정적인 사랑을 넘어,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신뢰하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플라톤의 제자이자 고대 그리스 철학을 집대성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일찍이 ‘우정(필리아, Philia)’이야말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에우다이모니아, Eudaimonia)의 필수 조건이며, 건강한 공동체(폴리스, Polis)를 만드는 핵심 원리라고 보았습니다. 그에게 우정은 단순히 '친한 사이'를 넘어, 인간관계의 본질을 꿰뚫고 사랑의 품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였습니다.


그의 윤리학 강의 노트를 엮은 『니코마코스 윤리학(Ethica Nicomachea)』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무려 두 권(8권, 9권)에 걸쳐 우정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룹니다. 오늘 우리는 그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의 사랑이 어떻게 최고의 우정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그 우정을 통해 어떻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는지 그 길을 찾아보려 합니다.


2. 당신의 친구는 어떤 친구입니까? - 세 가지 유형의 우정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이유, 즉 서로에게서 사랑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우정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눕니다. 이는 우리가 맺고 있는 연인 관계의 수준을 진단하는 훌륭한 잣대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랑받을 수 있는 것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곧 좋은 것(agathon), 즐거운 것(hēdu), 유용한 것(chrēsimon)이다. (…) 서로가 유용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은 상대방 자체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어떤 좋은 것이 생겨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즐거움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8권 중에서


1. 유용성에 기반한 우정 (Friendship of Utility):

서로에게 ‘이익’이나 ‘쓸모’가 있기 때문에 맺어지는 관계입니다. 사업 파트너나 스터디 그룹 멤버처럼, 각자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맺어지는 관계죠. 연애에서는 “저 사람의 경제력이 내게 도움이 될 거야”, “그의 인맥을 이용할 수 있겠지”와 같은 계산이 깔린 관계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우정이 가장 흔하지만, 유용성이 사라지면(예: 상대가 실직하거나, 내가 원하는 것을 더 이상 제공해주지 못하면) 관계는 쉽게 해체되므로 가장 불안정하고 우연적인 관계라고 말합니다. 노인들이 주로 이런 우정을 맺는 경향이 있다고 그는 덧붙입니다.


2. 쾌락에 기반한 우정 (Friendship of Pleasure):

함께 있을 때 ‘즐겁고 유쾌하기’ 때문에 맺어지는 관계입니다. 함께 운동하거나,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들이 여기에 해당하죠. 연애에서는 상대방의 외모, 유머 감각, 열정적인 모습 등 ‘쾌락’을 주는 요소에 매료된 관계입니다. 키르케고르의 ‘미적 사랑’과 매우 유사하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젊은이들이 주로 감정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이런 우정을 맺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쾌락의 원천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므로(예: 외모가 변하거나, 더 이상 유머가 즐겁지 않으면), 이 우정 역시 쉽게 깨질 수 있습니다.


3. 덕(德)에 기반한 완전한 우정 (Friendship of Virtue / The Good):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가장 이상적이고 완전한 형태의 우정입니다. 이 관계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유용성’이나 ‘쾌락’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이 가진 ‘훌륭한 품성(덕, Aretē)’ 그 자체를 사랑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관계를 맺습니다. ‘덕’이란 탁월함(Excellence)을 의미하며, 한 인간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고로 발휘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완전한 우정은 좋은 사람들, 즉 덕에 있어서 서로 닮은 사람들 사이의 우정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좋은 것을 똑같이 바라기 때문이다. (…) 이런 우정은 당연히 오래 지속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좋은 점과 친구가 가진 좋은 점을 모두 발견하기 때문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8권 중에서


‘덕의 우정’을 나누는 연인은 상대의 정직함, 용기, 지혜, 친절함과 같은 내면의 탁월함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과 함께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관계입니다. 이 관계에서 친구는 ‘또 다른 나 자신(another self)’과 같습니다. 나는 친구의 행복을 나의 행복처럼 여기고, 그의 성장을 진심으로 기뻐합니다. 이기심이 사라진 자리죠. 또한 이들은 서로의 좋은 점을 배우고 나쁜 점을 고쳐주며 함께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합니다. 서로에게 최고의 스승이자 거울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정은 드물고, 오랜 시간을 통해 신뢰가 쌓여야만 가능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강조합니다.


3. ‘둘만의 행복’을 넘어 ‘공동선(Common Good)’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덕’은 단지 개인의 훌륭한 품성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공동체(폴리스)를 건강하게 만들고, 모든 시민이 함께 추구해야 할 ‘공동선(Common Good)’의 핵심 원리입니다. 여기서 사랑은 위대한 사회적 확장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덕의 우정’을 나누는 두 연인은 ‘우리’라는 가장 작은 규모의 폴리스를 형성합니다. 이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이기심을 버리고, 서로를 배려하며, 공동의 목표(함께 성장하고 행복해지는 것)를 위해 협력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것은 훌륭한 시민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훈련의 장이 됩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서 타인을 위하는 법,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법을 체화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사랑을 주변으로 확장하게 됩니다.

◾우리 둘의 행복에만 머무르지 않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함께 돕는 활동에 참여합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 문제에 함께 목소리를 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고민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주변 친구들, 가족, 공동체 전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가장 완전한 사랑은 두 사람의 이기적인 행복감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따뜻한 연대와 책임감으로 나아가는 사랑입니다. '좋은 사람'들의 사랑은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이 속한 공동체 전체를 더 좋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4. 우리의 사랑은 세상을 향해 어떤 창을 내고 있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어떤 품격을 가지고 있는가? 서로의 유용성과 쾌락만을 탐하는 관계인가, 아니면 서로의 ‘좋음(Goodness)’을 사랑하며 함께 성장하는 ‘완전한 우정’인가?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우리 둘만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가, 아니면 세상을 향해 따뜻한 창을 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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