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김경윤 58 : 철학자와 인터뷰 12

제12장. 한나 아렌트 : 악과 전체주의에 맞선 사유

by 김경윤

제12장. 한나 아렌트 : 악과 전체주의에 맞선 사유

- "생각하지 않는 죄, 악은 평범하다"


1. 뉴욕의 한 아파트, 담배 연기 자욱한 서재에서


선생님, 안녕하세요.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시간을 내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서재에 들어서는 순간, 뭐랄까, 지성의 무게와 열정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벽을 가득 채운 책들과, 선생님 손에 들린 담배, 그리고 깊은 생각에 잠긴 눈빛까지. 선생님께서는 스스로를 ‘철학자’가 아니라 ‘정치이론가’라고 부르신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조금 낯선 이름인데요. 어떤 차이가 있는 건가요?


(깊게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인 후, 짙은 독일어 억양이 섞인 영어로)

반가워요, 젊은 친구. 철학자라… 글쎄, 나는 저 플라톤처럼 영원하고 불변하는 진리를 탐구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그런 건 전문 철학자들의 몫이지. 나는 내 두 발이 딛고 있는 이 땅, 바로 우리 인간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이 구체적인 ‘세상’에 관심이 있소.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말하고 행동하며 만들어가는 정치의 공간, ‘폴리스(Polis)’ 말이에요. 나는 그저 내 삶의 경험 속에서, 우리 시대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생각’했을 뿐이오. 그래서 나는 ‘철학자’라는 거창한 이름 대신, 그저 ‘정치에 대해 이론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하는 편이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우리 시대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이라면, 역시 나치와 홀로코스트를 의미하시는 거겠지요? 선생님께서는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셨고, 히틀러가 권력을 잡자 조국을 떠나 프랑스로 망명하셨다가, 결국 이곳 미국까지 오게 되셨습니다. 그 끔찍했던 시절의 경험이 선생님의 모든 사유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출발점이라… 그래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단순히 ‘피해자’로서의 경험만은 아니었소. 물론 나도 수용소에 갇히기도 했고, 모든 것을 잃은 채 무국적 난민으로 유럽을 떠돌아야 했지. 내 어머니를 포함한 수많은 가족과 친구들이 가스실에서 죽어갔소. 그 고통과 상실감은 평생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나를 정말 ‘생각’하게 만든 것은, 단순히 ‘우리가 얼마나 고통받았는가’가 아니었어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들이었지. “어떻게 이런 일이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었는가?”, “어떻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갈 수 있었는가?”, “어떻게 어제까지 우리의 평범한 이웃이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괴물 같은 학살자가 될 수 있었는가?”

이 질문들은 한 개인의 불행을 넘어선, 인간 조건 자체에 대한 질문이었소. 나는 이 질문들에 답을 찾기 위해, 이 전례 없는 악(惡)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소. 나의 모든 작업은 바로 그 어두운 시대에 대한 증언이자, 그 어둠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처절한 사유의 기록이라 할 수 있소.


2. 전체주의, 세상을 파괴하는 거대한 악


그 처절한 사유의 첫 번째 결실이 바로 역작 『전체주의의 기원』이었군요. 선생님께서는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를 ‘전체주의(Totalitarianism)’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묶어 분석하셨습니다. 기존의 독재나 참주정과는 완전히 다른,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악이라고 하셨는데, 무엇이 그렇게 달랐던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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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장자, 예수, 부처, 디오게네스를 좋아하는 인문학 작가입니다 . 인문학적 소재로 30여권의 책을 썼습니다. 현재 가파도 매표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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