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의 철학 : 들어가며
일상화된 위험을 받아들이자
인류는 역사적 연도의 표헌하는 방식으로 BC와 AD를 사용한다 . 기독교에서 숭배하는 예수의 탄생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BC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 이전(Before Christ)’의 약어이고, AD는 라틴어인 ‘Anno Domini(주님의 해)’의 약어이다. 물론 이러한 기준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재앙 이후 After Disaster
그런데 코로나 19 사태 이후, 일부에서 이런 약어를 다르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BC는 ‘코로나 이전(Before Corona)’로, AD는 ‘재앙 이후(After Disaster)’로 표현했다. 그럴듯하다. 종교가 지구를 지배했던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는 종교가 아니라 돈이 지배하는 사회, 경제를 중시하는 역사가 지속되었다. 세계화는 무엇보다도 경제의 세계화를 뜻하는 것이었다. 선진국과 중진국, 후진국을 나누는 기준도 경제적 지표였다. 경제를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상식처럼 여겨졌다. 사람이 아니라 돈이 역사의 기준이 되는 역사, 그것이 현대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대적 작동방식이 일거에 멈춰서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펜더믹(pandemic)이라 말하는 지구적 재앙, 대역병(大疫病)인 코로나 19 사태가 진행 중이다.
코로나 19 사태는 언젠가 마무리되겠지만, 사스나 메르스처럼 이러한 역병이 발생하는 시기는 점점 좁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전염병이 한 지역이나 나라에서만 발생하는 일은 – 전 세계가 봉쇄정책을 펴지 않는 한 - 앞으로는 기대하기 힘들다. 게다가 이러한 역병은 단순히 질병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위기를 초래하고 국가적 지배의 위험성으로 증폭될 수밖에 없다. 벼룩이 한 마리 잡으려고 집 전체를 불태울 수는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확산은 국가 전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세계의 코로나 19의 확진 현황(2020년 4월 20일 기준)은 2백4십만 명을 넘어섰고, 그중 사망자는 이미 16만 5천 명에 달한다. 이 숫자는 더 증가할 추세다.
위험의 일상화
한나 아렌트는 나치에 전쟁범죄를 취재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진행되었던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하면서 기사를 썼는데, 이후에 이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출간하면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악한 사람이 악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도 악을 실행할 수 있다”는 아렌트의 통찰은 이후에 많은 지식인들에 의해 확인되는 진실이 되었다.
나는 이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을 오늘날 코로나 사태에 접목시켜 ‘위험의 평범성(banality of danger)’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위험의 평범성을 입증하는 사례는 코로나 19 만이 아니다. 교통사고 사망률, 암 발생률, 자살률, 실업률 등은 매우 높은 상태이고, 비정규직이 직장인의 50%가 넘고, 청년실업이 심각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러한 위험은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조류독감 등 동물성 독감이 발생하면 닭이나 돼지, 소 등이 살처분되고 있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생명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러한 사태는 인간의 식문화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변화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수 있는 사태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주변의 동물들도 인간이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위험의 일상화, 위험의 평범성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코로나 이후의 세계’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인간의 기술과 정치 질서가 새로 쓰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가 염려하는 것은 생체 데이터에 대한 기술 등 다양한 빅데이터 처리기술을 정부가 전체주의적인 감시 방식으로 악용하여 개인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과 각 나라가 국제적 연대를 포기하고 민족주의적 고립이나 봉쇄를 선택하게 될 경우이다. 일상화의 측면에서 표현해보자면, 통제의 일상화를 통해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언제든지 침해될 수 있는 위험성과 민족주의나 자국 이기주의라는 고립의 일상화를 통해 국제적 연대가 약화되어 국제적 분쟁이나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갖게 되었다.
위험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
이 말인 즉, 이제 인류에게 위험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작동한다는 말이다. 인류가 현재와 같은 삶의 방식이나 경제 정책을 유지하는 한, 위험의 가속화는 피할 수 없는 사태가 되었다는 말이다. 당장은 사회적 거리두기, 확진자에 대한 정확한 의료조치, 백신 개발 등을 통해 코로나 19 사태는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손톱만치도 없게 되었다. 코로나 19사태를 겪으면서 우리의 삶이 크게 변화했지만, 코로나 이후의 우리의 삶은 더욱더 근본적으로 변화해야만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코로나 19는 질병적 비극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피해도 막심하다. 게다가 그로 인해 직장을 잃거나 생계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국민들의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상가가 문을 닫고, 공장이 폐쇄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실업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우리나라의 생활지표는 V자 곡선을 그리며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L자 곡선을 그리며 장기침체의 어두운 길로 갈 것이다. 국가나 지방자치체들은 재난 기본소득이나 세금 혜택, 부가세 면제 등을 통해 이러한 사태를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기간의 처방일 뿐 장기적인 우리의 삶의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
이대로 안 된다
코로나 사태가 주는 교훈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제영역뿐만 아니라 교육, 보건, 정치, 문화, 과학, 국제관계 등 다양한 분야의 근본적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무엇보다 인간의 삶 그 자체에 대한 충분한 성찰이 필요하다. 앞으로 연재될 글은 이러한 성찰을 각 분야에 걸쳐서 10회 정도 나누어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고갱은 자신의 작품에 이렇게 긴 제목을 붙인 적이 있다. 이 질문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이다. 자,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코로나 19 사태만 지나면 이대로 괜찮은가?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