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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11. 2020

2020 독서노트 : 장자 에세이

천인츠, 《장자의 말》 (미래문화사, 2020)

(장자의 세계는) 삼라만상을 포괄하는 세계입니다. 그저 사람의 세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지요. 이야말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입니다. 만물이 한데 어우러지면 함께 나고 자라며 저마다 자신의 색채와 소리를 내는 세계지요. 이러한 세계에서 장자는 자신을 펼쳐 보이며, 사방으로 시야를 열고 팔방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하늘과 땅 사이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거닐며 커다란 흐름에 몸을 맡기도 움직이지요. 이는 천지와 더불어 나고 만물과 하나가 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2쪽)     


장자 사상의 주요한 관념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꼽으라면, 저는 ‘혼돈’에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노자로 바꿔 말한다면, ‘물’에 한 표를 던지는 것처럼 말입니다.(122쪽)     


만약에 나에게 장자 사상의 주요한 관념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꼽으라면 ‘붕鵬’에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장자는 자유와 변신의 사상가이기 때문이다. 장자는 막힘이 없고 거침이 없으며 하늘을 지붕으로 땅을 마당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상가이다.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기도 하고, 가장 낮은 똥 속에서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내 평생 과업 중에 하나가 장자에 대해 열 권쯤 쓰는 것이다. 한 권이면 되지 왜 하필 열 권이냐고 묻는다면, 장자는 읽을 때마다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 내가 변해서일 수도 있고. 세상이 변해서일 수도 있으며, 장자 자체가 무궁무진하여 내가 다 엿볼 수 없어서일 수도 있다. 이번에 읽은 천인츠(陳引馳)의 《장자의 말》 (미래문화사, 2020)은 《장자》에서 뽑은 88편의 쪽 글을 저자의 에세이를 붙인 형식으로 쓴 가벼운 장자 읽기 책이다. 내가 장자에 대해 쓰고 싶은 책 중 머릿속에 《장자의 맛》이라는 제목의 책이 있었는데, 한 끝 차이로 비켜갔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저자에 대해 살펴보니 푸단대학교 중문과 교수로 도가, 불교와 중국 고전문학 전문가로 소개되고 있다. 그의 저서 중 이 책이 유일한 국내 소개 저술이다. 중국 고전에 능통한 저자라서 그런지 장자의 문구를 편하게 소개한 글 속에 다양한 중국 고전 작품들이 종종 등장한다. 설명이 억지가 없고, 교양인으로서의 풍모가 드러난다. 전문적인 교양을 펼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 사람인데, 전문성에 기대기보다는 생활 속에서 장자를 읽으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장자 관련된 많은 책이 학술적인 책이라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에게 이 책은 기꺼이 소개할 수 있는 장자 에세이라 할 수 있다. 문체를 쉽지만 일상어 속에서 깊이를 느낄 수 있어 어느덧 장자에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장자식 에세이의 모델을 보는 듯 반가웠다.

장자는 이야기꾼이다. 장자 자체가 재미있다. 하지만 장자의 이야기 속에는 현실을 뒤집어보고, 달리 보고, 넓게 보고, 깊게 보는 다양한 표현들이 있어 읽는 이의 수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다. 이 책은 그 높이와 깊이와 넓이와 다르게 보기의 세계로 현기증이 일어나지 않도록 차분히 인도한다. 장자가 이야기꾼이라면 저자 역시 이야기꾼임에 분명하다.     

나는 장자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교양서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장자는 인간 문명에 대해 근원적으로 통찰하고, 인간 언어와 인식의 한계를 지적하며, 가난하지만 소박한 삶을 통해 자유를 추구하며, 하늘과 땅 사이에 살아가는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살아갈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자는 ‘오래된 미래’라 할 수 있다. 장자가 어려워 엄두를 못 내던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추신> 내가 쓴 청소년 소설 《장자, 아파트 경비원이 되다》와 전국시대 사상가들을 비교한 청소년 교양서 《장자에게 놀고 먹는 법을 배우다》라는 책도 장자 관련 책이라는 사실을 살짝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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